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경주 (1)
겨울 같지 않게 조금은 포근해진 날씨, 올해의 첫 인터뷰를 위해 경주를 찾았다. 다른 계절에는 많이 왔지만 겨울의 경주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책방에 도착해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데, 책방 문에 환영의 메시지가 붙었다. ‘석류님 어서 오세요:)’라고 쓰인 글자를 보자 나는 아직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두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따뜻함에 용기 내어 책방의 문을 열었다. 책방의 문이 열리자 웃으며 반겨주는 얼굴. 나는 그 미소에서 오늘의 인터뷰가 정말 따스하게 진행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준화입니다.”
“공간을 돌보고 있는 원지윤입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오늘은 책방. 인사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분위기가 두 사람과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책방 이름이 오늘은 책방이 아닌 공생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더라고요. 공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에 운영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공생은 책방을 오픈하기 전에 저희가 생각했던 가치였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책방에서 실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생으로 하려고 했는데, 그런 가치를 드러내고 하는 것보다는 은은하게 녹여내며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 있어서 공생에서 이름이 바뀌었어요.” (지윤)
“남녀노소에게 편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공생이라는 말이 한글을 잘 모르는 할머니나 어린아이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도 있어서 이름을 오늘은 책방으로 바꾸게 되었어요. 기차를 타고 여행하며, 책방 이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구도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루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장 고귀한 예술이다.’라는 대목이 문득 떠올라서, 오늘을 잘 보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책방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어요. 사람들이 오늘은 책방 가자!라고 말하면서 책방에 놀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오늘은 책방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준화)
공생이란 이름도 나쁘지 않지만, 오늘은 책방으로 이름을 바꾼 게 개인적으로는 더 좋게 느껴졌다. 훨씬 책방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름이기도 하고, 준화님의 말처럼 오늘을 잘 보낼 수 있는 곳으로써 책방은 안성맞춤인 공간일 테니까.
“보통 서점을 오픈하면, 새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꾸리는데 두 분의 공간은 새 책보단 헌책이 중심이 된 공간이라 오래된 도시인 경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 책 서점도 아닌 헌책을 중심으로 하는 책방을 열게 된 이유가 있으세요?”
“원래는 헌책방을 하려고 했다가, 헌책은 한 번 팔리면 다시 구하기가 힘들어서 새 책도 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헌책방을 저희가 생각했던 이유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부분이에요. 이미 존재하는 책들을 잘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두 번째로는 헌책은 이미 누군가가 읽었던 책이기에 다음에 읽게 될 사람과 교감이 이어지는 느낌이 좋게 느껴졌어요.” (준화)
보통 책방을 새로 오픈하면 새 책 위주의 큐레이션으로 서가들을 채워가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책방은 달랐다. 새 책도 취급하지만, 헌책도 함께 취급하며 책들 간의 공생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헌책과 새책을 함께 판매하는 공간으로써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새 책은 저희가 원하는 인문학이나 문학 부분의 서적을 구비할 수 있는 게 장점이구요. 헌책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 어쩌면 버려질 수도 있었던 책이 책방으로 건너와서,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좋은 것 같아요.” (준화)
“저희가 헌책을 겸하고 있기에, 저희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시는 분들이 책을 기증해주신다거나 하면서 일부러 책방을 한 번 더 방문해주시는 부분들도 장점인 것 같아요. 또 새 책은 마음 편하게 책장을 넘기기가 조심스러워지는 반면에, 헌책은 아무런 부담감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지윤)
단순한 책 구입을 넘어서서, 헌책을 같이 취급하기에 그것으로 인해 책방에 발걸음이 늘어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 것 같다. 책방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발걸음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지윤님은 원래 경주분이신가요? 책방 준비과정 글을 보니 준화님은 원래 경주분은 아니시던데 두 분이서 경주라는 지역에 자리를 잡고 책방을 열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아니요. 저도 경주 출신은 아니에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부모님이 경주로 내려오셨어요. 그래서 저도 부모님을 뵈러 종종 경주에 오곤 했었는데, 그때 마주했던 경주의 느낌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책방을 하면 경주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준화 씨를 꼬드겨서 경주에 책방을 열게 됐어요.” (지윤)
둘 중 한 명은 경주 출신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었다. 두 사람 모두 경주에 연고를 두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가 경주에 발걸음 할 때마다 정말 아름답고 좋다고 느꼈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느껴서 이 도시에 자리를 잡게 되었나 보다. 이렇게 타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걸 보면 경주는 블랙홀 같은 도시가 아닌가 싶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막상 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서점을 오픈하게 된 이유도 듣고 싶네요.”
“저는 지윤 씨가 하자고 꼬셔서 하게 됐어요.” (준화)
꼬셔서 책방을 하게 됐다고 말하는 그의 만면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와 마주 본 그녀도 웃으며 바통 터치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대학 졸업을 하고 나서 뭘 해야 될지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사랑방처럼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가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태백의 철암 도서관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책에 관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게 됐어요. 그때 딱 느꼈어요. 아,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나 즐겁구나라는 걸요. 그래서 책방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세웠어요. 그래서, 준화 씨한테도 같이 책방을 하자고 꼬드겼구요.” (지윤)
책방은 다른 공간보다 수익률이 나기 힘들다. 그렇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에게는 분명 기분 좋은 꼬드김이었으리라. 그리고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결정이었을 테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넘어서 다음 카페까지 운영하고 계신데, 카페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는 기록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그때그때 보여지고, 소비되는 곳인데 반해서 다음 카페는 메뉴나 카테고리를 세분화해서 기록들을 저장해놓을 수 있어서 카페를 만들게 됐어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나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외부에 다이렉트로 노출하기보다 카페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만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분리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도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준화)
앞서 인터뷰했던 구미의 삼일문고 같은 경우도 기록의 저장을 위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듯이, 오늘은 책방도 시간이 지나면 흘러가버리는 소식이 아닌 차곡차곡 책방에 관한 데이터들을 모아가기 위해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개방적으로 운영되는 SNS에서는 가감 없이 개인에 대한 정보들이 노출되는 반면에 카페는 회원제로 운영되기에 좀 더 개인의 이야기들이 보호받을 수도 있을 테고. 이래저래 관리하기 번거로운 면도 많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같은 학과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전공을 책방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펼치고 계시는지도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책방을 하기에는 아직 책에 대해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책을 잘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이 잘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책방을 통해서 여러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그런 부분들의 하나의 연장선이구요. 그리고 방학마다 동네 아이들과 여름 방학, 겨울 방학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건 책방 운영시간외의 시간에 진행이 되는 활동인데요. 아이들의 자립심과 여러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에요. 지난번엔 아이들과 함께 안동의 권정생 선생님 생가도 다녀왔고, 이번에는 태백으로 기차여행도 다녀올 예정이에요. 단순한 기차 여행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기차표도 예매하고 본인들의 여행 기획서 작성을 통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격려편지나 여행 후원금을 받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직접 그 활동들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준화)
책방 운영 외의 시간에 이런 활동들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쓰고 싶은 욕망도 강렬할 텐데, 아이들과 방학 활동을 진행한다니. 공생이라는 이름을 실현하며 사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나는 감탄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창 감탄하며 듣고 있는데, 이어지는 지윤님의 말에 나는 더더욱 감탄하고 말았다.
“최근에 책방에서 저자와의 대화도 진행했는데요. <신라 탐정 용담>이라는 책이에요. 황룡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소설인데요. 아이들이 읽기 좋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쓴 책이에요. 출판사에서 먼저 저자와의 대화를 제안해주셨는데, 저희가 출판사에 역제안을 드렸어요. 아이들 책이니만큼 기존의 저자와의 대화와는 달리 아이들이 직접 저자를 섭외하고, 저자와의 대화를 준비해나가는 형태로 했으면 좋겠다고요. 흔쾌히 출판사에서 수락해주셔서 아이들이 섭외를 위해 대본도 쓰고, 직접 저자에게 전화도 드리고 그랬어요.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했을 때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모금함 통을 만들었어요. 그 모금함 통에 받은 모금들을 저자와의 대화가 끝나고 아이들의 편지와 함께 작가님에게 전달해드렸는데 작가님도 정말 좋아해 주셨어요. 작가님이 나중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답장 편지도 써주셨고요.” (지윤)
기존의 저자와의 대화의 틀을 깨트린 새로운 형식의 저자와의 대화. 기존의 저자와의 대화는 출판사와 책방이 일대일로 연락을 취하며 준비를 해나가는 반면, 오늘은 책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자와의 대화를 준비해냈다. 아이들이 직접 저자를 섭외했다는 것.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진행 방식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조금은 생경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주체성을 키워나갔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절로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