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오늘, 오늘은 책방 下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경주 (2)

by 석류



“책방을 경주에서 운영하게 되면서 힘든 부분들이 있나요?”

“경주에서 운영해서 힘든 건 없는 것 같아요. 서점이어서 짊어져야 할 것들은 있는 것 같지만요. 온라인 서점이 활성화된 시대여서 오프라인에서는 책만으로는 마진율이 남기 힘든 그런 구조가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경주에서 해서 어려운 부분보다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경주는 산책하기 정말 좋은 도시예요. 책과 산책은 정말 잘 어울리거든요. 저희가 책방을 내고 난 뒤에, 경주에 책방도 더 생겨서 다른 책방 지기님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좋구요.” (준화)



책방을 운영하는 모두가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대형 온라인 서점에 맞서 오프라인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 인가하는 것들. 아마,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힘든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점점 더 온라인 서점의 오프라인 진출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IMG_0983.JPG 매대 전체가 모임에 관한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던, 책방 모임 안내 매대.



“다른 서점과는 차별화된 오늘은 책방만의 색깔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희 책방만의 차별화된 점이 뭘까 생각을 좀 해봤었는데요. 부담 없는 모임 참여가 아닐까 싶어요. 숙제 같은 모임이 아닌, 아무런 준비 없이 와도 스스럼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거요. 그리고 어른들만의 모임이 아닌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형태의 모임요. 모임을 한다고 해서 아이를 집에 떼놓고 어른만 오는 게 아닌, 아이도 모임의 한 일원으로써 함께 어울려가면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요.” (지윤)

“어른과 아이를 분리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기꺼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모임이 저희만의 색깔이 아닐까요.” (준화)



기존의 책방 모임들은 어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책방은 어른에만 국한하지 않고, 아이들과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저번에 낭독회를 했는데,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낭독자 분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낭독해주셨는데 아이들이 그걸 듣고 깔깔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어른들도 항상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만 했지, 듣고만 있는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듣는 즐거움도 이러한 기회를 통해 함께 느끼구요.” (지윤)



오늘은 책방이 추구하는 형태인 공생의 철학이 잘 녹아있는 모임의 모습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자, 마치 추운 겨울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스함을 나누는 이미지들이 자동으로 연상되는 느낌이 들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모임 하는 날의 풍경이었는데요. 멀리 경기도에서 여행 오셨던 분이 있는데, 책모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모임 날 맞춰서 일부러 경주에 다시 내려오셨어요. 그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에게 소개를 해주고 싶다고 따님과 함께 책방에 오셨어요. 또 한분은 다섯 살짜리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오셨고, 다른 한 분은 70대 할머니가 오셨어요. 이렇게 각자 오고 싶은 이유가 분명했고, 그 풍경 속에서 모두가 잘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준화)



같은 지역도 아닌, 일부러 먼 지역에서 책모임을 위해 찾아올 정도라니. 놀라웠다. 오늘은 책방의 모임은 서로 다른 지역을 잇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독자들의 징검다리로써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기울인 노력은 감히 말로 설명하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기회가 된다면 나도 책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경주에 발걸음을 해봐야겠다.



IMG_0981.JPG 지윤님의 추천 도서, <천천히, 스미는>. 책방 모임에서도 함께 읽었다고 한다.
IMG_0984.JPG 준화님의 추천 도서, <우리들의 하느님>.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내 인생의 행운 같은 책이 있나요? 두 분이 한 권씩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천천히, 스미는>이요. 영미 산문집이에요. 여러 작가들의 글이 실려 있는데, 삶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 같아요. 책에 실린 글 중에 제임스 에이지의 글이 기억에 남아요. 삶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고, 살아 가는 데는 운율이 있다는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출간된지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지만, 처음 책장을 펼치자마자 이 책을 곁에 두고두고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몇 번을 읽어도 좋았거든요. 이런 괜찮은 한 권의 책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괜찮은 삶이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지윤)

“저는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요.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글대로 사는 삶은 흔치가 않잖아요. 말을 멋지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대로 사는 삶도 흔하지 않구요. 권정생 선생님은 글대로, 말대로 삶을 사셨던 분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이 책을 읽고 먹먹하기도 하고 제 자신에게 부끄러운 감정도 들었어요. 저는 좋은 책은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운 감정을 들게 하거나, 책으로 인해서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하느님>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준화)



두 사람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얘기해주는 두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 두고 싶은 책을 만난다는 건 정말 크나큰 행운이고, 책으로 인해 삶이 변화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울림도 없을 것이다. 이런 책방지기가 있는 오늘은 책방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싶어 왠지 모르게 찡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오늘은 책방에 책을 읽지 않으시는 분이 지나가다 우연히 책방에 들렀어요. 그분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해주고 싶으세요?”

“저는 <우리들의 하느님>이요.” (준화)



준화님이 책 이름을 얘기하자, 너무 편향적인 추천 아니냐며 우리 셋은 다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인생 책을 바로 추천하는 센스라니. 잠시간의 웃음꽃이 피어나고, 웃음이 멎어들 때쯤 지윤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저는 <시의 문장들>이요. 판형도 작고, 가볍고 내용도 흥미롭더라고요.” (지윤)



처음 책에 입문한다면 두껍고 무거운 책보다는 가볍게 언제든 꺼내어 읽을 수 있는 책이 부담 없이 접근하기 좋긴 할 테다. 지윤님의 답변은 그런 부분을 고려한 추천 같았다. 이제 질문이 몇 개 남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어서 아쉬움이 들었다.



“오늘은 책방이 경주의 오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책방에 자주 오시는 손님 중에 40대 손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책방이 놀이터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대요. 책방에서 모임도 함께 하고, 가족들도 같이 놀러 와서 지내고 그러세요.” (지윤)

“책모임을 할 때, 모임에 참석하는 분 중에 70대 할머니가 계세요. 책모임 하는 날은 그분의 나들이 날이에요. 옷도 이쁘게 차려입고, 외출 나오는 김에 친구분도 만나고요. 모임에 오시면 항상 간식 같은 것도 챙겨 오시곤 하세요. 저희가 책모임이 있을 때면 문자로 안내를 드리는데, 그 김에 종종 통화도 하면서 서로 안부도 나누곤 해요.” (준화)



경주의 오늘에서 이미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은 오늘은 책방의 발걸음을 보자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지윤님이 처음에 꿈꾸었던 사랑방의 형태는 스며들듯 서서히 책방 안에서 완성형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놀이터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나들이 장소로 말이다. 이쯤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은 무엇인지.



“두 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은 어떤 것일까요?”

“서점이란 공간이 운영을 해보니, 생각보다 문턱이 높더라고요.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은 들어오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문턱을 너무 많이 낮추면 책이 주가 되지 않고 다른 게 주가 되는 공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요. 남녀노소 누구나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편의점 가듯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준화)



편의점이라니. 너무도 참신하고 신선한 대답이었다. 편의점과 가깝게 지내지만, 한 번도 책방을 편의점에 빗대어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정말 편의점 가듯이 누구나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서점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야말로 모든 서점원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 이리라.



“매일 책방 문을 열며 어떤 생각들을 하세요?”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오실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책방에 책을 사러 오는 분들도 있지만, 책 구입 외의 다른 구실로 책방에 드나들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임들을 많이 만들고 진행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거의 매일 다른 류의 모임들이 있어요. 매일 다른 모임이 진행되다 보니, 어떤 분들이 방문하실까에 대한 설렘이 있어요.” (지윤)



책방의 문을 열고, 어떤 손님들이 방문할지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기다림의 순간들. 드문 드문도 아닌 매일 모임을 진행하는 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일 텐데, 이들처럼 밝은 에너지로 문을 열고 책방을 지키는 책방 지기가 있기에 오늘은 책방의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기대가 된다.



“경주에 온 여행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 관련 도서가 있으신가요?”

“생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를 추천하고 싶어요. 밤의 사하라 사막에서의 모습이나 삶과 죽음에 대한 부분도 잘 담겨있어서 여행하면서 읽기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여행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준화)



<어린 왕자>의 작가로 유명한 생떽쥐베리가 비행사를 하며 쓴 <인간의 대지>. 그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며 여행을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여행의 깊이를 더해 줄 동반자로 손색이 없을 테니까.



“경주에서 꼭 가보아야 할 숨겨진 명소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진평왕릉이요. 걸어서 가기는 조금 먼 거리라 자전거나 차를 이용해서 가야 하는 게 단점이지만, 산책하기도 좋고 공간도 넓고 나무도 많아서 봄가을에 나무 밑에 앉아 책 읽기가 좋아요. 특히 가을에 진평왕릉 주변의 황금들녘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면 정말 좋아요.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매력적이고요. 그리고, 그림책 서점 소소밀밀도 추천하고 싶어요. 피노키오가 경주에 있을 때 있던 자리에 들어온 또 다른 그림책 서점이에요.” (준화)



경주에 방문했을 때 숱한 왕릉들을 보았지만, 진평왕릉은 내겐 미지의 이름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왕릉이어서인지 얼른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잘못 들으면 밀면집 이름과 헷갈릴 수도 있는, 그림책 서점 소소밀밀도 궁금하고. 경주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있다는 게 참 좋다. 겨울의 경주를 천천히 음미하고 주말을 흘려보낼 수 있으니까.



*



IMG_0986.JPG 방명록에 오늘의 방문객들의 이야기가 쌓인 것 처럼, 차곡차곡 내일의 이야기도 쌓아가는 공간으로 오늘은 책방이 경주에 자리했으면 하고 바래본다.



첫인사는 다소 어색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는 두 사람이 조금씩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책방을 통해 공생의 가치를 실천하며 사는 두 사람의 삶이 부럽고 멋있게 다가오기도 했고. 글은 걷는 것과 같다던 준화님의 말처럼, 경주라는 도시를 이제껏 빠르게 달린 내게 오늘은 책방은 걸어 다니며 풍경을 보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책방 문을 열며 설렘도 있지만, 분명 두려움도 있을 텐데 그 두려움을 설렘의 힘으로 바꾸어 이겨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나는 경주의 오늘에서 오늘은 책방이 커다란 존재감을 가진 공간으로 계속 자리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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