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심겨진 책방, 심다 上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순천 (1)

by 석류


이제까지 성공적으로 인터뷰 허락을 받았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허락을 받아서 나는 잔뜩 자신만만해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을 한풀 꺾어놔야 할 일이 생겼다. 경주에서 추천받은 통영에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아쉽게도 인터뷰가 어렵다는 대답이 왔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탓일까. 거절의 순간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무룩해졌다. 마치 항로를 잃은 배처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머릿속에 책방 하나가 떠올랐다. 부부가 운영하는 순천의 책방 심다. 심다를 떠올리자마자 바로 순천에 가고 싶어 안달 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터뷰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다는 것.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 요청을 보내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환영하겠다는 긍정의 대답.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셔서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의 다섯 번째 책방은 그렇게 순천으로 결정되었다. 겨울의 끝자락, 나는 순천으로 간다. 주말의 햇볕을 모두 빨아들이며.



*



어느각도에서 보아도 잘 보이는 심다의 간판.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순천에서 책방 심다를 운영하고 있는 홍승용입니다.” (승용)

“김주은입니다. 얘는 홍유화예요. 얘도 저희 책방 홍보팀이라 소개를 해줘야 해요.” (주은)



주은님이 웃으며 홍보팀이라 소개를 해줘야 한다며 유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어린 유화는 아빠인 승용님의 품에 안겨 자신이 책방의 마스코트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맑은 두 눈동자로 방긋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유화의 눈빛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심다가 유화만큼이나 참 맑은 공간이구나라는 것을.



“순천에 심다를 오픈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 순천에 살고 있어서이기도 하구요. 저희가 결혼하면서 순천에 정착을 하게 됐어요. 원래 신랑은 순천에 살았고, 저는 원래 고향은 부산이었는데 결혼하면서 거주하는 지역을 바꾸고 싶어서 제주도 쪽을 살펴봤어요. 그런데 제주에 내려가 살려고 찾아보니 저희가 꿈꾸는 삶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주로 내려가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부분에서 제주도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어느 지역으로 갈까 다시 고민을 했어요. 한창 고민하던 차에 신랑 때문에 순천에 오게 됐는데 순천이라는 도시가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신랑에게 나는 순천에서 계속 살아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순천에 살게 되었어요. 저희 둘 다 사진을 전공하다 보니 집에 작업실이 같이 있었는데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우리 공간에 사람들이 좀 오면 좋겠다 싶어서 서점을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도 서점들을 좋아했던지라 순천에 우리 작업실 겸 서점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싶어서 심다를 오픈했어요. 저희가 오픈할 당시만 해도 순천에 자그마한 독립서점이 없기도 해서, 독립서점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래서 순천에 심다가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주은)



심다의 탄생 스토리를 들려주는 주은님의 목소리에서 발랄함이 묻어 나왔다. 그 발랄함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심다의 뜻이 궁금한데요. 무슨 뜻인가요?”

“심다는 나무를 심다할 때 심다에요. 결혼하며 순천에 살게 되면서 아기꽃사과나무가 꽃핀걸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 꽃핀 게 너무 이쁘더라고요. 그 나무의 영향인지, 땅도 없는데 나무가 심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래서 신랑한테 한창 나무 심자고 말하곤 했어요. 그때 나무 심기에 꽂힌 덕에 심다로 짓게 되었어요.” (주은)

“나무 심다 말고도 여러 의미가 있어요. 책에는 많은 생각들이 담겨있잖아요. 책이 생각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방으로 그런 생각들을 심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있고요. 그리고, 끼워 맞춘 건 아니지만 실제로 저희가 나무를 심어요. 책의 수익금 일부를 가지고 나무를 심고 있어요.” (승용)

“첫 해는 수익이 별로 안 나서 나무를 못 심었고요, 작년에 사실 한 그루를 심었어요. 나무 묘목이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올해는 좀 더 많은 나무를 심으려고 생각 중이에요. 귀촌한 친구가 있는데, 안 쓰는 땅을 빌려준다고 그래서 그 땅에 나무를 많이 심어보려고요.” (주은)



책은 나무로부터 시작되고 만들어진다. 실제로도 나무를 심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처럼 이름과 잘 어울리는 책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책방이다. 나무를 심는 책방, 심다.



“다른 서점과는 달리 올해부터는 주말에만 책방을 운영하신다고 들었어요. 쉽지 않은 결정인데, 주말 책방을 하게 되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장점부터 이야기할게요. 아기 때문에 주말 책방으로 전환하게 돼서, 아무래도 아기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었어요. 서점에 조그마한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계속 운영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방이 너무 춥더라고요. 그래서 아기가 감기도 자주 걸리고 아파서, 아 여기서 아기를 키우면서 책방을 운영하기는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점은 아무래도 매출 부분인 것 같아요. 책방은 열려있는 장소잖아요. 손님들이 오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들를 수 있는 게 서점의 좋은 점인데, 주말에만 하다 보니 그런 부분들이 쉽지 않아져서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주은)



안 그래도 다른 업종보다 돈을 벌기 힘든 게 책방의 구조이자 현실인데, 일주일 중 이틀만 열다 보니 매출이 줄어드는 게 바로 피부로 느껴졌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인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들만의 주말 책방을 해나가는 두 사람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심다의 트레이드 마크, 블라인드 데이트 어 북 코너.



“‘블라인드 데이트 어 북’ 코너가 흥미로운데요. 이 코너에 블라인드로 소개되는 책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네. 있어요. 저희가 생각할 때 좋은 책들을 블라인드로 소개하고 있어요. 저 코너에 들어가는 책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좋은 책, 선물 받았을 때 좋은 책들 위주로 하고 있어요. 가끔은 베스트셀러들도 들어가긴 하는데, 베스트셀러도 마케팅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가 아닌 독자가 직접 선택한 베스트셀러들을 넣고 있어요. 책방을 열기 전에 신랑이 호주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랑이 저한테 블라인드 북을 선물해줬어요. 그때 보고, 어 이거 우리 책방에서도 하면 좋겠다 싶어서 블라인드 북을 시작하게 됐어요. 화이트 데이나 특별한 날에는 그에 어울리는 책들을 블라인드로 소개하기도 하고요. 한 번 만들어놓은 키워드를 바꾸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최대한 자주 바꾸고 있어요.” (주은)



심다에 들어서서 서가를 둘러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코너가 있다면, 바로 블라인드 북 코너일 것이다. 정갈한 모습으로 포장지라는 옷을 입고, 자신이 누구인지 몇 가지 힌트만 준채 독자들을 기다리는 책의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블라인드 북을 포장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그러나 손님들이 블라인드 북을 고를 때의 설렘이 담긴 표정들을 보면 그런 노곤함을 잊어버리고 행복해진다고 얘기하는 주은님의 말에서 나는 무언의 따뜻함을 느꼈다. 다른 곳에도 블라인드 북은 많지만, 심다의 블라인드 북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 책방지기의 책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곱게 포장되어 자신을 데려갈 독자를 기다리니까.



“책방과 함께 독립출판사도 겸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독립출판사도 겸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은 책방 만들기 전에 출판사 등록부터 했어요. 우리만의 책을 하나 만들자 싶어서요. 저희가 독립출판물도 좋아하고, 편집 디자인 쪽 일도 해서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함정은 아직 책이 한 권도 안 나왔어요. 그래도 올해는 책이 나올 것 같아요. 지금 원고를 쓰고 있거든요.” (주은)

“우리 책이 먼저 나올지 다른 분 책이 먼저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저희한테 의뢰를 해주신 분이 있거든요. 그분 책이 먼저 나오게 될지, 저희 책이 먼저 나오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올해는 꼭 책을 내보려고요.” (승용)



웃으며 출판사 심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에서 나는 조만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심다에서 만든 순천만 뱃지 3종 세트. 식물 각각의 특징을 잘 살린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책방에서 뱃지도 직접 만드시던데요. 보통은 납품을 받는데, 직접 뱃지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만의 것을 만들고 싶은 게 컸던 것 같아요. 저희가 사진도 찍고 하니 직접 찍은 사진으로 사진엽서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고,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었어요. 뱃지는 순천을 찾아주시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순천에서 사갈만한 기념품이 이쁜 게 없다고 하셔서 만들게 된 것도 있어요.” (주은)



뱃지 덕후인 내 눈을 사로잡은 심다의 뱃지 3종 세트. 뱃지가 너무 아기자기하고 이뻐서 뱃지를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뱃지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행객들이 손쉽게 구입하고 가져갈 만한 것 중에 뱃지만 한 게 있을까. 크기도 작고 가볍고, 가방에 달기도 좋고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니까. 심다에서 만든 뱃지는 순천의 느낌이 잘 담겨있다. 갈대, 함초, 칠면초의 모습이 알록달록 이쁘게 표현된 뱃지의 모습에서 단순히 책만 구입하러 책방에 오는 게 아닌 순천 여행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기차를 타기 전 심다에 들러 뱃지를 구입하는 발걸음들이 자연스레 상상되었다. 책방 문을 나서는 뒷모습마다 달려있는 뱃지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뭉클할까. 심다는 이렇듯 평범한 책방을 넘어서서 순천의 새로운 여행코스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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