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심겨진 책방, 심다 下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순천 (2)

by 석류



IMG_1013.JPG 책방안을 밝히는 등처럼, 심다는 순천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순천이란 도시에서 심다는 어떠한 역할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우리 동네에도 이런 독립서점이 있네?라는 것. 그래서 좋다고 다들 얘기해주세요. 저희도 심다는 편하게 올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고 있구요. 저희가 큰 의미를 가지고 책방을 시작한 건 아니라서 손님들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책방에서 진행하는 모임 같은 경우도 저희가 자리를 비워도 알아서 모임이 잘 진행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희 둘만 만든 공간이 아닌 모임을 하시는 분들과 들러주시는 손님들이 함께 만드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손님들과 긴밀하게 지내다 보니 손님들이 직접 이러이러한 책을 가져다 놓는 건 어떻겠냐 추천을 해주시기도 하고요. 큐레이션을 손님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 일반 서점에서는 그런 걸 쉽게 할 수가 없잖아요.” (주은)



책방 지기 두 사람의 손길로 공간은 탄생되었지만 공간을 이끌어나가는 건 다름 아닌 방문객들의 발걸음이다. 모임도, 큐레이션도 함께 나누며 순천의 사랑방으로 커나가고 있는 심다의 모습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IMG_1020.JPG 심다의 그림책 코너.
IMG_1024.JPG 그림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책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IMG_1042.JPG 여러 종류의 독립출판물이 가지런히 한 곳에 모여있다.



“다른 서점과는 차별화된 심다만의 특색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어느 연령대의 손님이 오든 한 권의 책은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게 저희의 특색이 아닐까요. 저희가 독립서점치고는 스펙트럼이 폭넓은 편이거든요. 그림책 코너도 책방 규모에 비해 나름 큰 편이고, 독립출판물도 다양하게 구비중이고, 일반 단행본도 갖춰놓고 있구요.” (주은)

“책에 관련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어요. 우쿨렐레 모임도 하고, 와인 클래스도 하고, 프랑스 자수 모임도 하고 조그마한 소모임들을 많이 꾸려 나가고 있어요.” (승용)

“손님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지는 모임도 많은 편이고요. 손님들이 이거 하자! 의견을 내주시면 바로 실행해서 모임이나 자리를 만들기도 해요. 자수 모임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고요.” (주은)



한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심다에는 있었다. 서가를 구경하던 나도 사고 싶은 책이 많아서 행복한 고민을 했을 정도니까.



“책방에서 일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저희가 책방을 연지 1년째 되었을 때 핀란드 여행을 갔어요. 그때 책방 손님들이 책방을 대신 봐줬어요. 우리가 핀란드를 가는데, 혹시 책방을 봐줄 사람이 있나 싶어서 지원자를 받았어요. 저희가 봐달라고 부탁한 분도 있고요. 그때 세 분이 돌아가면서 책방을 봐줬어요. 한 친구는 저희가 핀란드를 간다는 소식을 듣고, 책방 지기를 해보고 싶다고 해주셨고 다른 분은 책방에 자주 오는 선생님이셨는데 그분도 책방 지기를 해보고 싶다고 자원해주셨고요. 다른 친구는 책방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인데, 우리가 핀란드를 가는데 책방 좀 봐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서 한 달 동안 저희 대신 책방을 세분이서 돌아가며 봐줬어요. 근데, 저희가 한 것보다 책방이 훨씬 잘됐어요.” (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을 대신해 책방을 봐준 세 명의 임시 책방 지기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마음 편히 핀란드로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빈자리를 자신만의 색깔로 채워 책방을 지켜준 이름 모를 세 명에게 나 또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정말 행운이라고 느꼈던 책이 있나요? 두 분이서 한 권씩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책방을 하게 되면서 은유 작가님 책을 많이 보게 됐는데요. 나의 언어로, 나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새롭게 느껴졌어요. 읽으면서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가 특히 인상 깊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부분도 생각하게 되고요. 그리고,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도 기억에 남아요. 이건 그림책인데요.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나중에 태어나며 느끼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에요. 제 과거의 경험이나 그런 부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둘 다 책방을 하면서 만난 책들이네요. 이 두 권이 저에게 있어서 인생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은)



책방에서 만난 책이 인생 책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원래부터 인생 책이 아니었던 책들을 책방을 운영하며 발견하고, 곁에 두게 된다는 건 어쩌면 크나큰 행운은 아닐까. 책방지기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 같은 것 말이다. 주은님의 말에 이어 승용님이 자신의 인생 책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셋은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듯 웃음 폭탄이 빵- 하고 터지고 말았다.



“저는 원피스요.” (승용)

“내 동료가 되어달라고 하는 만화네요?”

“동료가 되었네요. 아내도 되고요. 원피스는 농담이고요. 저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꼽고 싶어요. 저는 이런 류의 책들이 좋더라고요. 약간 정치적인 것 같으면서도 정치적이지 않고, 친환경적인 것 같으면서도 친환경적이지 않은? 좋은 책은 정말 많지만, 한 권만 꼽으라면 역시 저는 이 책을 꼽고 싶네요. 이 책으로 인해 조금씩 저만의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거든요.” (승용)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이야기하며, 승용님은 나중에 직접 빵을 구워 판매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빵 이름은 자본론으로 하면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책방’에서 ‘책빵’으로 변화해 빵과 함께 하는 베이커리 책방도 두 사람이라면 분명히 잘 해낼 것 같다.



IMG_1036.JPG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들이 일렬로 진열되어 있었다.



“순천 여행을 온 사람 중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책방에 만약 들러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세요?”

“책방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인데요. <수상한 북클럽>이요. 사고를 친 아이들에게 책 읽기에 대한 벌을 내리는 게 주 내용이에요. 책 안에 다른 책에 대한 내용들도 나와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면 다른 책들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읽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책 추천을 원하시는 손님들에게 추천도 많이 해드리고요.” (주은)



<수상한 북클럽>은 책 읽기의 묘미를 이제 막 느끼기 시작한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추천이었다. 다음 책으로 무슨 책을 읽어야 되나 고민할 겨를 없이 자연스레 독서가 끊기지 않고 유지될 수 있게 배려한 추천에서 나는 다시 한번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두 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의 형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과연 이상적인 서점이 존재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형 체인도 필요하고, 저희처럼 작은 책방도 필요한 거 같고요. 사람들의 니즈에 맞는 다양한 서점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승용)

“이상적인 서점의 형태가 딱히 있는 건 아니고, 이런 각각의 서점들이 계속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각자의 색깔과 방식으로 책방 운영을 하면서, 책 판매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주은)



사실 나는 막연히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형 체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편협한 사고를 깨뜨리는 두 사람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형 체인은 대형만의 방식이 있고, 작은 책방은 작은 책방만의 색깔과 운영 방식이 있다. 그런 부분들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며 유지될 수 있다면 정말 그것이야말로 파라다이스 이리라.



“주말마다 책방 문을 열며 하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다른 일을 안 하고 책방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닫힌 책방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청소 후에 차도 한잔 마시고 그러는 시간들이 참 좋아서 계속 책방만 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문을 열 때마다 해요.” (승용)

“전 오늘 어떤 손님이 오실까, 오늘은 어떤 책이 많이 팔릴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주은)



다른 일을 부수적으로 하지 않고, 책방 운영만을 본업으로 삼고 매일을 지낼 수 있는 삶이 두 사람에게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발걸음들이 책방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 두 가지의 질문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순천에서 꼭 가봐야 할 숨겨진 명소나 맛집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릴게요.”

“명소는 심다요. 만약 맛집 투어를 하러 오셨다면, 굳이 고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웬만한 식당이 다 맛있어요. 어딜 들어가도 맛있어서 실패할 확률이 낮달 까요?” (승용)



심다를 추천하는 승용님의 목소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장난기가 묻어 나왔다.



“저는 와온해변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해질 때 가면 멋있어요. 와온해변에 가면 칠면초라는 습지 식물이 있는데, 여름이 되면 그 식물이 보랏빛으로 펴요. 칠면초의 그런 모습이 해질 때의 풍경과 겹쳐지면 정말 이뻐요. 순천의 시간을 느리게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와온 해변을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주은)



와온해변을 추천받고 시간을 슬쩍 확인하니 아직 해가 지기에는 시간이 남았다. 책방에서 와온해변까지 거리가 얼마쯤 되냐고 물어보니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면 오래 걸려서 아마 지금 가기는 힘들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칠면초의 모습은 다음에 와서 보기로 하고 우선은 뱃지로만 간직해야겠다.



“역하고 가깝다 보니 여행객들이 많이 올 텐데,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송은정 작가의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이라는 책이요. 얼핏 보면 여행기인 것 같으면서도, 일반적인 여행기를 벗어나 삶의 모습에 대한 부분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실제로도 여행 오신 분들에게 많이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최혜진 작가의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도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도 여행 책 같으면서도, 삶의 여러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서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거든요.” (주은)



조근조근하게 책에 대해 설명하는 주은님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나도 이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순천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이렇게 진심을 다해 책을 추천해주는 책방 지기가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



IMG_1025.JPG 고민이 있다면 동전을 넣고 돌려보자.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줄 문구와 달달한 하리보가 경쾌하게 굴러 나온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며 참 많이 버벅거렸다. 그런 나를 위해 긴장을 풀어주려 애써준 두 사람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언제나 책방에 가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들을 즐기러 오는 손님들이 있어서 심다 또한 오늘도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득 심다에서 뽑기 한 고민해결 볼이 떠오른다. 고민 해결 볼에는 새로운 것에 집중하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내 맘대로 해석해보자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책방 지기들의 이야기를 담으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책방 문을 열고 나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느껴졌다. 이제 겨울이 가고, 순천에도 따스한 봄이 오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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