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속초 (1)
다시 한번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처음에 인터뷰를 거절당했을 땐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우왕좌왕한 느낌이 컸다면, 그래도 이번에는 좀 덤덤했다. 앞으로도 거절 당할일은 많을 테니, 낙담하지 말자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래서 거절을 당한 김에 바다가 있는 도시로 떠나기로 했다. 속초로. 내가 사는 진주에서 차가 밀리지 않으면 편도로 6시간이 걸려야 닿는 도시, 속초. 진주에서는 직통으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서울을 거쳐서 가야 했지만, 속초로 향하는 마음만큼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먼 거리를 달려오느라 엉덩이는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것보다 더 나를 달아오르게 만든 건 속초를 닮은 아름다운 북스테이 서점 ‘완벽한 날들’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마저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어느 날, 그렇게 나는 속초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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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완벽한 날들에서 일하고 있는 최윤복이라고 합니다.”
완벽한 날들의 최윤복 대표의 첫인상은 동글동글 하다였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날카로운 느낌이 다소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선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메리 올리버의 책 제목에서 ‘완벽한 날들’을 따왔다고 들었어요. ‘완벽한 날들’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름을 짓기 위해 오래 고민을 하지는 않았어요. 순간 딱 떠오르는 말이었어요. 완벽한 날들은. 이곳에 오는 손님들에게 쉼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다양한 활동들을 통한 시간들이 의미 있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 <완벽한 날들>에 보면 저희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겹쳐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이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름에 여러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거네요?”
“네, 그렇죠.”
그의 말처럼 완벽한 날들은 쉼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여러 손님들이 차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짧은 휴식을 취하고 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일반 서점의 형태가 아닌, 게스트하우스가 접목된 북스테이 형식을 택한 게 흥미로워요. 북스테이를 하려고 마음먹으신 계기가 있으세요?”
“일반 서점의 형태는 제가 관심 있던 부분은 아니었어요. 다른 서점들을 다녀보니 우리와 정말 다른 업종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중형 서점 같은 경우는 납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더라고요. 저는 납품에 대한 정보도 하나도 없었고, 제대로 몰랐어요. 제가 하고 싶은 방식은 문화공간의 느낌이어서 책을 매개로 저자나 독자의 만남의 장소라던지,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며 속초의 문화공간으로써 완벽한 날들을 이끌어가고 싶었어요. 어디로 장소를 할까 고민하며 찾다가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 이런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터미널과 가까이 있기에 여행자들에게도 접근성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자리에 자리를 잡기로 했죠. 북스테이 같은 경우는 저희외에도 먼저 북스테이를 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고, 그 공간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서점에 게스트하우스를 접목시키게 되었죠.”
“그럼 처음부터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만드려고 하신 거군요?”
“네.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이끌어가려고 했어요. 모임이나 행사를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형태를 벗어나, 서점에서 숙박까지 해결할 수 있는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의 북스테이 시스템은 그런 최윤복 대표의 고민이 담긴 흔적들이 아닐까. 책과 쉼이란 단어에 북스테이만큼 잘 어울리는 건 없을 테니.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다 보니 인테리어에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완벽한 날들의 인테리어는 어떻게 준비되고 만들어졌을까요?”
“인테리어는 제 스타일과 다르게 하자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만들었어요. 제가 시민단체에서 일했는데, 제 스타일로 하면 그런 색깔이 많이 묻어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런 운동성을 띈 색깔들이 대중들에게 다이렉트로 전달되지도 않고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들을 좀 더 편하고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인테리어에 녹아내며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한정된 예산안에서도,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게 하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래도 아직까지 아쉬운 부분들은 많네요.”
완벽한 날들을 둘러보며 모던하면서도 깔끔한 인테리어에 감탄했다. 이보다 더 멋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갖추었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니. 그가 얼마나 세심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대답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총 수용인원이 9명이고, 가족이나 연인 외에는 여성 손님만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여성 손님 위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단순한 이유예요. 저희가 이 공간을 구했을 때 1층은 철물점이었고, 2층은 철물점 주인분이 사시던 집이었어요. 그래서 외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리모델링을 진행했어요.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두 개가 2층에 있었는데 그 큰방을 도미토리로 하고, 나머지 방을 1인 실과 2인실로 꾸몄어요. 위치가 터미널쪽이다 보니 주로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차가 없는 뚜벅이 손님이 많았고, 책 구입은 어느 연령대가 많은지, 어떤 성별을 가진 분들이 여행을 많이 와서 묵는지를 다방면으로 고려해서 지금의 게스트하우스가 만들어졌어요. 아예 여성전용으로만 하려고도 했는데 그러면 가족이나 연인끼리 오시는 분들이 못 묵게 되니까 지금의 형태로 운영을 하게 됐어요.”
그는 단순한 이유라곤 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전혀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보다 복합적인 이유로 느껴졌다. 여성 손님 위주의 게스트하우스 운영이어서, 사실 나는 관리상의 이유인 줄로만 알았다. 뚜벅이와 책 손님, 성별 모두를 데이터 화해서 정한 이리도 섬세한 운영방침이라니. 감탄스러웠다.
“책 큐레이션은 어떤 식으로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인문사회과학 위주로 책을 많이 가져다 놓았었는데, 그런 쪽이 아무래도 가볍고 쉽게 읽기는 힘들잖아요. 여행객들도 많이 오시고 하다 보니까 지금은 여행서도 많이 가져다 놓고, 쉽고 편하게 접하실 수 있는 책들 위주로 큐레이션하고 있어요. 여행 와서 굳이 어려운 책 읽으려는 분들도 없으시기도 하고요.”
그의 말이 맞다. 가뜩이나 책 읽는 인구도 줄어들었는데, 어느 누가 여행까지 와서 어려운 책을 머리 아파가며 읽으려 할까. 쉽고 편한 책이라면 여행객들도 부담 없이 집어 들 수 있을 테니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큐레이션 사이에 그림책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림책 전문서점도 아닌데 그림책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까 제가 살펴보니 그림책이 서가 곳곳에 꽤 많더라고요. 그림책을 많이 가져다 두신 이유가 있나요?”
“아, 그림책은 지난여름부터 확 늘렸어요. 그림책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저희는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데, 여행자들에게는 그림책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궁금증이 컸거든요. 근데 이제는 다시 줄이려는 추세예요. 일종의 실험 형식으로 그림책의 비중을 높게 배치했었는데, 이제는 그 실험이 끝났거든요. 다른 책들과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고요.”
“그렇군요. 제가 돌아다니며 서가를 보니 한 달에 한 출판사씩 선정해서 진열하는 서가가 있던데요. 이 서가는 어떻게 꾸며나가고 있나요?”
“저희가 작은 서점이다 보니, 작은 출판사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지금 진열되어 있는 유유 출판사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책들도 많았고, 개인적으로 제가 관심이 많기도 해서 하게 됐어요. 물론, 좋은 책도 많이 나오고요.”
나도 개인적으로 유유 출판사를 좋아한다. 매력적인 책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러나, 책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따로 찾아보지 않는 이상 이름도 알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서가에 따로 출판사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놓은 건 참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를 만나는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작은 서점과 작은 출판사가 함께 상생하는 길로 작용할 수도 있고. 조근조근 서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최윤복 대표의 눈빛에서 나는 무언의 따뜻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