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속초 (2)
“매주 토요일 밤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 손님들과 함께 ‘아주 사적인 북 토크’를 열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현재도 진행 중이신 건가요?”
“지금은 하지 않고 있어요. 사실 정식으로 한 적은 없고, 처음에 몇 번 시도를 했었어요. 여럿이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닌 1:1 북 토크 식이었는데, 이걸 진행하려면 저희가 밤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희도 퇴근을 해야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업무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일이었네요?”
“네. 그렇죠. 퇴근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퇴근을 제때 못하고 계속 일만 하기에는 에너지도 너무 많이 소진되고요.”
지금은 ‘아주 사적인 북 토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갔다. 근무 외 시간을 투자해가며 투숙객과 함께 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건 여러모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오래 일한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진 않는다. 저녁시간엔 가족과 함께 하며, 더 나은 책방을 위해 잠시간의 쉼표를 가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쿠폰도 특이하던데요. 보통은 로고 모양의 도장을 찍는데 반해 완벽한 날들은 한 잔 두 잔 이런 식으로 잔이라는 글자 도장을 찍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누가 내신 건가요?”
“쿠폰 같은 경우는 저희가 전체 컨셉 회의를 할 때 나왔던 아이디어였어요. 아이디어는 아내가 냈던 아이디어고요.”
아내가 낸 아이디어라고 말하며 싱긋 웃는 그의 모습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엿보였다.
“속초에는 동아서점, 문우당과 같이 오랜 시간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해온 서점들이 있습니다. 그 서점들과는 다른 의미로 완벽한 날들이 존재할 텐데요. 완벽한 날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희는 동아서점이나 문우당과 결이나 규모면에서도 확실히 달라요. 저희는 속초에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 책과 함께 쉼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써 북토크나 강연, 전시, 영화상영등등의 행사를 진행하며 완벽한 날들을 이어가고 싶고요. 이제는 행사 부분도 재정비해서 좀 더 지역민들의 참여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서점에 들어왔을 때 동네 사람들과 교류가 밀접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딱 들 수 있게요.”
이미 속초에는 오랜 기간을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커온 동아서점, 문우당이 있다. 그 서점들과는 다른 형태로 완벽한 날들을 운영하기 위해 고심해온 생각들이 정갈하게 드러나는 그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날들의 색깔이란 무엇일까.
“다른 서점과는 차별화된 완벽한 날들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솔직하신데요?”
“시간이 지나면 색깔들이 차곡차곡 쌓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더 오래 버텨나가다 보면 그런 부분들이 자연스레 생겨나고 정체성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직은 큰 차별성은 없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이 질문을 하면서 이렇게도 솔직한 대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너무 솔직한 대답에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색깔을 억지로 꾸며내어 말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대답해준 그의 모습이 오히려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꾸며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공간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완벽한 날들의 색깔이 아닐까.
“완벽한 날들을 운영하며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으로 나눴을 때, 나쁜 점부터 말씀드리자면 정말 힘들었어요. 내내 이곳에 붙어 있다 보니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더라고요. 지치다 보니 손님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순간이 오더라고요. 한창 지쳐있을 때, 손님께 전화가 온 적이 있어요. 다짜고짜 북카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북카페가 아니고, 서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때부터 뭔가 꼬였는지 전화에 대고 욕을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도 좋지 않은 기억이 여럿 있어요. 좋았던 점은 작가님이 묵으러 오신다거나, 석류님처럼 인터뷰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 있을 때 재미있다고 느껴요. 다른 곳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 많은데 여기가 대체 뭐라고 이렇게들 찾아오는 걸까 싶어서요. 아, 그리고 오상진·김소영 아나운서가 ‘당인리 책 발전소’를 오픈하기 전에 오셨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책방을 운영한다는 건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만 하는 일이다. 책방도 서비스업이기에. 단순히 책만 입고하고 판매하는 게 아닌 손님과의 교류도 중요한 일이기에, 아무리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도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애정을 담아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있기에 좋지 않은 기억을 좋은 기억들로 상쇄해가며 공간을 꾸려나갈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최윤복 대표가 생각하는 행운의 책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정말 행운이라고 느꼈던 책이 있나요?”
“첫 번째로는 얼마 전에 출간된 책인데요. <온다 씨의 강원도> 요. 이 책을 만든 출판사 대표님이 최근에 고성으로 이주를 하셨고, 종종 저희 서점에도 들르시는데요. 오래 출판일을 하셔서 그런지 배울 점도 많고, 알게 된지는 얼마 안됐지만 의지도 많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완벽한 날들도 책 안에 소개돼서 행운이라 느껴지고요. 두 번째로는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이요. 이 책 덕분에 완벽한 날들이라는 이름도 정해졌으니, 행운이다 싶어요. 세 번째로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들이요. 대학 시절, 신영복 선생님의 접하고 책들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이 길러졌거든요.”
세 책 다 다른 종류지만, 좋은 글들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행운의 책들을 추천하는 최윤복 대표의 눈빛이 소년처럼 반짝였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은 사람이 속초 여행을 왔다가 완벽한 날들에 들렀어요. 그분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그때그때 다를 것 같아요. 그분의 성별이나 연령대에 따라서도 다를 것 같고요. 어떤 관심분야나 취향을 가지고 계신지도 추천에 영향을 끼치구요. 보통 세세하게 물어보고 추천을 해드려요. 그게 아니라면, 새로 들어온 신간 중에 제가 좋다고 느껴졌던 책들 위주로 추천해드리는 편이에요.”
“그럼 연령대를 다 떠나서 공통적으로 이 책은 정말 추천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책이 있으세요?”
“음,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상황과 취향이 다르니까요. 다른 분들은 콕 집어서 추천을 해주시겠죠?”
“보통은 가독성이 높은 소설류 위주로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소설 중에서라면 장편보다는 단편집 위주로 추천을 해드리곤 해요. 소설류가 아니라면 무난하게 <완벽한 날들>을 추천해드려요. 에세이라서 편하게 읽으실 수 있기도 하고요.”
부정확한 추천보다는 읽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추천을 해주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대답. 최대한 읽는 사람의 실패 확률을 낮추고, 성공적으로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이 전달되는 대답에 내가 책을 잘 읽지 않고 여행객으로 이곳에 들른다 해도 그의 추천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이란 무엇인가요?”
“따로 이상적인 서점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아이들이 많이 오는 서점이었으면 하는 생각은 해요. 와서 그림책을 비롯해서 여러 책들을 보며 놀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요. 그리고 작가, 독자, 출판사, 서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모두 다 힘들지 않게 유기적으로 잘 공존하며 살아가는 거요.”
힘들다는 말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정말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서점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이상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매일 완벽한 날들의 문을 열며 하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곤 해요. 서가에 어떻게 책을 배치할지,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계시다면 게스트하우스 손님에 대한 생각들도 하고요.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들러주실까도 생각해요.”
게스트하우스를 병행해서 운영하기에 투숙객에 대한 생각도 역시 빼놓지 않고 매일 하게 되리라.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매일 안고, 그렇게 그는 이곳의 문을 연다.
“여행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 관련 도서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속초에 여행 오신 분들에게 딱 알맞은 책이 얼마 전에 나왔어요. <온다 씨의 강원도> 요. 속초에 여행을 오시거나, 속초에 이사를 올 예정이신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마치 수학의 정석 같은 느낌이랄까요?”
“강원도의 필독서네요?”
“네. 지금은 속초, 고성, 양양 편만 담겨있지만 곧 강릉을 비롯해 다른 편도 만들어진다고 하니 강원도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기에 좋을 것 같아요.”
그의 강력추천에 홀려 나도 <온다 씨의 강원도>를 읽게 되었는데, 그가 왜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기존의 여행서와는 다르다. 알차고 탄탄한 삶의 내용이 담겼고, 도보 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산책길들도 꼼꼼하게 나와있다.
“속초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희 숙소에서 걸어서 갈만한 곳으로 추천드리자면 영랑호와 동명항 쪽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속초가 한창 개발되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들을 그쪽 동네에 가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해변도 있고, 영금정이라는 정자도 있어서 산책하기 좋고요. 옛 골목을 보는 걸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동명동의 골목은 속초의 옛 느낌을 간직한 곳이거든요. 속초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랄까요.”
내리는 비가 그치고, 아침이 밝아오면 나는 그가 걷던 그 길들을 걸어볼 생각이다. 속초의 어제와 오늘을 만날 수 있는 길들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과 관련된 질문들이 나온 김에 혼밥 하기 좋은 곳도 궁금했다. 혼자 여행 온 여행자가 밥 먹기 좋은 곳은 어디인지 그에게 물었다.
“혼자 온 여행자가 혼밥 하기 좋은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이왕 속초에 오셨으니 해산물류로 먼저 추천드리고 싶어요. 갯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는데, 물회를 하는 가게들이 있어요. 그곳에서 물회를 드셔도 좋구요. 해산물이 취향이 아니시라면 ‘그리운 보리밥’에서 보리밥을 드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식류로 정갈하게 음식들이 잘 나오는 곳이에요.”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을 위해, 정식류도 함께 추천해주는 그의 세심함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완벽한 날들에서 책과 함께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면 정말 그야말로 완벽한 속초여행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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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인터뷰 거절로 인해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속초에 다녀와 거짓말 같게도 나는 큰 힘을 얻었다. 솔직 담백하게 완벽한 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최윤복 대표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도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속초에 오기 전, 이미 완벽한 날들에 들렀던 아는 언니에게 이곳에 대한 느낌을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속초가 메리트가 되어 좋았던 곳이라고. 나는 그녀의 대답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도시 자체가 메리트지만, 완벽한 날들이 자리하기에 속초는 더 큰 메리트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