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밤, 밤의서점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서울 (1)

by 석류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를 진행하며, 서울에 가게 된다면 어떤 서점의 이야기를 담아야 될까 고민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발달한 도시답게 서울에는 각양각색의 서점들이 동네별로 분포되어 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 곳을 골랐다. 방문할 때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저절로 공간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그곳, 밤의서점. 연희동 골목에 조용히 숨어있는 밤의서점을 가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의서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금은 감성적인 저녁에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 하는 것도 잊지 않고. 밤이 도시에 사뿐히 내려앉은 저녁, 그렇게 나는 연희동에 왔다.



IMG_1238.JPG 밤이 내려앉은 저녁, 밤의서점에 도착했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부터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연희동 밤의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정이라고 합니다. 친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각자 닉네임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밤의 점장이라 불리구요. 친구는 폭풍의 점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번역일도 하고 있는데요. 프랑스 책 번역도 하며 서점을 운영해나가고 있어요.”



맨 처음 밤의서점에 들렀을 때 밤의 점장님을 보고 잠시지만 정말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다. 따스한 표정과 분위기로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인터뷰 전에 갖고 있던 긴장감이 자연스레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막상 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폭풍의 점장님과 두 분이서 돌아가면서 서점을 지키고 있으신데요. 함께 책방을 오픈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예전에 편집자 일을 했었어요. 책을 좋아해서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하나의 로망처럼 서점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점을 오픈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불가능에 대한 생각을 안고 지내던 차에 어떤 분이 연희동에 서점을 오픈할까 생각 중인데 매니저로 일을 한 번 해보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불가능이 아닌 현실로써 서점을 운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또 재미있는 부분은 그 제안을 받은 시기에 연희동에 거주하는 부부가 일 년 정도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 집이 비는 기간 동안 와서 지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게 일종의 계시같이 느껴졌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연희동이라는 동네와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거든요. 그 제안들로 인해서 서점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고민을 하며 서점 학교 강의도 듣고 하면서 서점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는데, 그 준비 기간 사이에 매니저를 제안해주신 분은 서점을 하기에 힘들 것 같다고 하셔서 함께 하는 건 무산되었고, 시간도 일 년이 지나서 연희동 부부도 다시 집에 돌아왔고요. 저는 그 시간 동안 연희동이라는 동네가 너무 좋아져서, 연희동에 자리를 잡게 됐고요. 처음에는 저 혼자 서점을 운영해 나가려고 했는데, 혼자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어요. 폭풍의 점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데, 그런 제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죠. 제가 서점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하니까 “하고 싶으면 해야지. 네가 하면, 나도 함께 할게.”라고 말해줘서 폭풍의 점장과 함께 밤의서점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서점을 오픈하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상황들이 그녀를 끌어당기고 결국 연희동에 지금의 밤의서점이 만들어졌다는 게 왠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였다면 망설임이 길었을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든든하고 좋은 친구가 있었기에 그 고민이 더 길어지지 않고 오픈이라는 이름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애칭에 대한 부분이 궁금한데요. 각각 밤의 점장과 폭풍의 점장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을 지켜나가고 계시잖아요. 애칭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같이 운영을 하면서 서점 SNS도 하게 됐는데요. 그때 각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보다 닉네임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서점 이름이 밤의서점이니까 밤의 점장이라는 이름이 먼저 정해졌고, 밤은 고요한 밤도 있지만 폭풍 같은 밤도 있으니까 자기는 폭풍의 점장을 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각자의 닉네임이 있다 보니, SNS를 보고 서점에 오시는 손님들이 “밤의 점장님이세요? 아니면 폭풍의 점장님이세요?” 물어보시는 게 재밌게 느껴지기도 해요.”

“폭풍의 점장이라서 폭풍의 언덕과 관련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군요?”

“아, 아니에요. 폭풍의 언덕과는 관련이 없어요. 오히려 성격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랄까요? 폭풍 같은 부분이 있어서요.”



폭풍의 언덕을 좋아해서 폭풍의 점장이라는 닉네임을 정한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러나 설명을 들으니 금세 수긍이 갔다. 밤이라고 다 고요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닉네임에서도 드러나듯 상반된 두 사람의 모습이 서점과 썩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폭풍의 점장님은 호탕한 느낌이 있다면, 밤의 점장님은 잔잔하고 고요한 느낌이랄까.



IMG_1222.JPG 화사한 조명이 가득한 다른 서점에 비해 밤의서점은 낮에도 밤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밤의서점이라는 이름 때문에 밤에만 여는 곳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이름만 보고 밤에만 운영을 하는 심야 서점인 줄 알았구요. 밤의서점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픈전에 서점 이름을 뭘로 지을까 폭풍의 점장과 둘이서 카페에 앉아 고민을 했어요. 가장 유력한 후보로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 따온 밤의 피크닉이 나왔어요. 낮과는 달리 밤의 느낌은 좀 더 편안하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 해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럼 밤의서점은 어때?라고 말을 했는데 괜찮다는 반응이 나온 거예요. 저도 밤의서점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요. 그리고 SNS에 밤의서점 이름을 올려봤더니,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그래서 밤의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하고, 밤이라는 시간을 공간으로 구현해 지금의 밤의서점이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시간적으로 밤에 열어서 밤의서점이 아닌, 서점에 딱 들어섰을 때 밤의 느낌이 들기를 바라며 공간을 꾸몄어요. 보통 다른 서점들은 밝고 따스한 느낌이 강한데, 저희는 그것과는 반대로 어두침침하지만 책에 집중이 잘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름이 특이한 서점들은 전국에 많지만, 밤의서점은 이름을 듣자마자 밤의 냄새가 바로 풍겨오는 곳이었다. 공간도 이름에 걸맞게 밤처럼 포근하고 나른한 느낌이 가득하고. 이름과 공간이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하고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에서 보여준 정체성을 인테리어까지 가지고 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밤의 점장님은 밤이란 단어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개인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다음 질문을 던져보았다.



“밤의 점장님은 밤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점 이름인 밤의서점도 그렇고,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도 불어의 굿나잇에서 따온 보니더라고요. 점장님에게 있어 밤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단어인가요?”

“저에게 있어서 밤은 편안하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시간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낮에는 의무감이 섞인 활동들이 많다면, 그에 반해 밤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기에 제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고 편안해지거든요.”



그녀의 말처럼 낮에는 의무감에 얽매여서 해야 되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밤은 모든 긴장감을 내려놓고 풀어놓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나는 왜 그녀가 밤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밤의 점장님은 불어 쪽을 공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지금도 프랑스에 관련된 책들을 번역하는 일도 하고 계시고요. 그래서일까요. 맨 처음 밤의서점에 갔을 때 프랑스 작가들의 책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부분은 자신의 전공을 살린 큐레이션이었는지요?”

“처음 책을 들여놓을 때 저와 폭풍의 점장의 취향이 담긴 서적들 위주로 가져다 놓곤 했는데요. 읽었을 때 좋았던 책이나, 저희가 읽고 싶은 책으로요. 서점 운영 초창기에는 저희에게 영향을 많이 준 책들 위주로 입고했는데, 그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희가 읽어온 책들의 역사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딱히 전공을 살려서 큐레이션을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고요.”



불어를 전공했기에 프랑스 책들은 전공과 관련된 큐레이션 일 줄 알았는데, 작은 반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큐레이션을 해도 프랑스 책을 많이 가져다 놓을 것 같긴 하다. 그만큼 프랑스에는 좋은 작가와 책들이 많이 있으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IMG_1220.JPG 책장마다 다양하게 구성한 큐레이션들이 눈에 띈다.
IMG_1235.JPG 밤의 점장님의 설명처럼 고루고루 큐레이션된 정갈한 서가의 모습.


“처음에 서점에 왔을 때만 해도 문학과 인문학의 비중이 높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서가는 어떤 부분에 비중을 두고 구성하고 계시나요?”

“학습, 참고서 외에는 다 고루고루 가져다 놓고 있어요. 처음에 서가를 구성할 때는 심리서 위주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오픈 당시만 해도 심리서의 비중이 높은 서점이 없던 때라서, 심리서 전문 서점으로 시작을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죠. 근데 큐레이션을 하다 보니 심리서만 가져다 놓으면 너무 오시는 분들이 한정적일 것 같은 거예요. 사실, 심리서가 아니어도 다른 책들을 보고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도 하고요. 현재의 큐레이션의 형태는 나온 지 오래된 책이거나, 덜 알려진 책이지만 읽었을 때 자기 안의 마음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위주로 하고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문학과 인문학의 비중이 높지만, 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주제를 가진 책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읽었을 때 마음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책들이라니. 얼마나 공들여 책들을 큐레이션하고 있는지가 대답에서 묻어 나와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IMG_1240.JPG 마치 책의 미로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이 가득한 서가.



“밤의서점의 서가를 보면 지그재그 같기도 하고, 작은 책의 미로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서가 배치와 인테리어는 어떤 식으로 준비하셨는지도 궁금해요.”

“맨 처음에 밤의서점이라는 이름을 짓고, 내부 설계해주시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서점 이름에 꽂히셔서 단번에 작업을 해주시겠다고 오케이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했던 은밀한 분위기로 옹기종기 동굴 속에 모여 앉아 있는 이미지를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 숨을 수 있는 형태의 서가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얘기해주셨어요. 카운터에서 모든 공간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오픈된 모습보다는 지금의 형태처럼 서가 사이사이에 숨어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느낌으로요. 그리고, 저희가 규모가 큰 서점이 아니기에 겹쳐진 형태의 서가를 구현하면 좀 더 공간감도 살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효과도 가져갈 수 있고요. 설계해주시는 분이 저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지게 공간을 만들어주셔서 좋았어요.”



그런 인테리어 효과 때문인지, 밤의서점은 서가 사이사이에 숨어서 책을 보는 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곳이었다. 힘들고 지치는 어느 날, 연희동으로 와서 밤의서점의 서가에 숨어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내가 지방이 아닌 서울에 살았다면 아마 자주 숨으러 이곳에 발걸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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