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 이듬해 봄 上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제주 (1)

by 석류


제주로 출발하는 날,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왜 하필 다른 날도 아니고 내가 제주에 가는 날에 태풍 소식이 있는 건가 싶어서 몹시 걱정스러웠다. 혹시나 비행기가 뜨지 않을까 봐. 제발 결항만 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며 게이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아차린 건지 출발할 무렵의 날씨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무사히 비행기가 떴다. 하늘 위를 나는 순간,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수없이 많이 간 제주지만, 오늘은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이기에. 마음속에 설렘을 가득 품고, 그렇게 나는 하늘을 날아 이듬해 봄으로 향했다.



*



IMG_1304.JPG 비오는 제주에서 만난 이듬해 봄.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정읍 하모리에서 이듬해 봄이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희라고 합니다.”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유쾌함이 묻어 나왔다. SNS를 통해 교류했을 때도 유쾌한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녀는 내 생각보다 더 유쾌한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제주에서 이듬해 봄을 오픈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덕에 어릴 적부터 서점 주인을 꿈꿔왔고, 대학에서의 전공도 국문과를 꿈꿀 정도로 책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가지며 살려고 했어요. 그러나 살다 보니 현실 때문에 조금씩 꿈이 희미해지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만 지내고 있었는데요. 언젠가 때가 되면 꿈을 이뤄야겠다는 마음은 항상 품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 동네에 누군가는 작은 서점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쉽사리 실현되지 않더라고요. 계속 책방이 생기기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제가 직접 하자 싶었고, 그게 작년에 드디어 실현이 됐어요. 타이밍이 좋게도 운명처럼 공간이 먼저 제게 찾아왔고, 그 공간에 이듬해 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운명처럼 공간이 먼저 찾아오고, 그 공간에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꿈을 펼쳤다는 게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 낭만이 제주와 썩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제주는 낭만의 섬이니까.



IMG_1313.JPG 이듬해 봄에도 다시 이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의미가 담긴, 이듬해 봄.



“이듬해 봄의 뜻이 궁금합니다. 이듬해의 봄이란 뜻인가요? 아니면 다른 의미도 담겨 있나요?”

“이듬해 봄은 손님들께 제가 인사를 드릴 때 쓰곤 하는 말이에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 이듬해 봄에도 꼭 다시 만나요.”라고요. 이듬해 봄이 다음 해의 봄이라는 뜻이잖아요. 내년 봄에 찾아와도 제가 늘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게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면서, 손님들과의 약속도 담겨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이듬해의 봄이라는 뜻만을 내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훨씬 더 매력적인 뜻이 담겨져 있었다. 이듬해 봄에도 책방을 운영하며, 책방을 방문해주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이름이라니. 괜히 뭉클해졌다.



“인테리어가 참 매력적이에요. 딱 봐도 제주스럽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요. 다른 장소도 아닌 제주의 전통 가옥을 책방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제주는 시골이잖아요. 시골스러운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과하지 않게 딱 시골스러움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죠. 그리고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이 책과 잘 어울리기도 해서 약간의 손질을 거쳐서 서점으로 꾸몄어요.”



이듬해 봄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아, 이곳이 제주가 맞구나라는 생각을 안겨줄 정도로 제주스러움이 가득했다. 제주의 전통 가옥을 책방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책방의 분위기도 제주를 닮았기에.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다. 이곳의 리모델링을 그녀가 직접 했다는 것. 그래서 궁금해졌다. 왜 직접 리모델링 작업까지 하게 된 건지.



IMG_1321.JPG 서가 곳곳에도 그녀의 손길이 묻어나있다.



“리모델링 작업을 직접 하셨다고 들었어요.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직접 리모델링까지 하시게 된 이유도 궁금해요.”

“네. 직접 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어디 업체에 맡겨서 하기보다 공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직접 하게 됐는데요. 리모델링을 하던 시기까지만 해도 남편이 육지에 있던 때라서 주말만 공사를 하며 공간을 준비했죠. 워낙 작업할 시간이 적다 보니, 리모델링에만 6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됐어요.”



빨리 책방을 오픈하려면, 직접 하는 것보다 업체에 맡기는 게 공사는 빠르게 진행됐을 테지만 그건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거다. 최대한 시골스러움을 살리며, 책과 공간의 호흡에 초점을 맞추며 한 땀 한 땀 직접 손을 본 책방. 곳곳에 묻어나는 따스한 손길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러나 포근함도 잠시, 직접 리모델링 작업까지 할 정도로 공간에 애정을 가지는 그녀에게 있어 책방을 운영하며 가장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졌다.



“육지가 아닌 섬인 제주에서 다른 업종도 아닌 서점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일단 책을 팔아 남기는 마진율의 부분이 고된 것 같아요. 워낙 책의 마진율이 낮기도 하고, 제가 다른 걸 겸하지 않고 책만으로 만 승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저희 책방에는 음료를 판매하지 않거든요. 책을 팔아 남기는 마진만으로는 재정적으로 넉넉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 부분이 고민이 커요. 폭발적으로 책을 많이 판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항상 안고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하는 것도 생각하기 어려워서, 저 혼자 운영을 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운영해나가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혼자 한다는 게 지금으로써는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책의 마진율이 다른 상품에 비해서 낮은 편에 속하기에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곳들이 많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기도 했고. 월세도 빠듯한데 인건비를 남기기는 더더욱 힘들기에 지치는 책방 지기들이 많은데, 제주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했다.



“총판과 출판사들이 육지에 몰려있잖아요. 육지가 아닌 섬이기에, 책을 입고하는데 배송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에 대한 불편함은 없으신가요?”

“작년에 작은 책방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맞는 서점들이 모여서 워크샵을 했어요. 방금 말씀하신 입고나 배송에 대한 문제도 어떻게 하면 해결을 할 수 있을지 의논을 했죠. 모여서 얘기 나눈 걸 총판 측에 전달을 했는데요. 기존에는 저희 같은 작은 서점이 총판과 거래를 하려면, 예치금을 미리 넣지 않고는 힘든 실정이었는데 저희의 움직임을 보고 총판의 반응이 달라졌어요. 20권 이상 주문만 하면 택배로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고, 12시 이전에 책을 주문하면 이틀이나 삼일 안에는 책이 도착할 수 있게 해줬어요. 처음에 서점을 오픈할 때는 책을 입고하려면 일일이 출판사에 연락을 취해서 거래를 다 트고 그랬는데, 지금은 훨씬 수월해진 편이죠.”



나는 섬이어서 배송이 더 많이 걸릴 줄 알았는데, 지방과 같은 속도로 배송이 된다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서울,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육지에서도 지방은 기본 2~3일의 배송시간이 걸리곤 한다. 그렇기에 제주에서도 육지와 같은 속도로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반대로 묻고 싶은데요. 육지가 아닌 제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가장 좋은 점은 어떤 거라 생각하세요?”

“저는 제주에서 책방을 해서 좋은 점이라기 보단 대정읍에서 하면서 좋은 점을 말하고 싶어요. 책방을 시작할 때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을 넘어서서, 동네분들이 언제든 편히 올 수 있는 문턱이 낮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형태의 책방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동네분들이 많이 찾아주시고 있거든요. 동네 사람들과 책으로 함께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책으로 함께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따스하게 번졌다. 대정에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동네에 이렇게 사랑방 같은 책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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