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제주 (2)
“전국적으로 많은 소규모 서점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서울을 제외하고는 제주가 가장 빠른 속도로 많은 서점들이 짧은 시간 동안 생겼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기간에 많이 생긴만큼, 단기간에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운영난으로 인해 책방을 접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운영난으로 인해 책방을 접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목소리에서 책방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 나왔다. 나 또한 바란다. 책방들이 오래오래 지속 가능할 수 있기를.
“제주에 많은 책방이 생겼지만, 현재 모슬포 쪽에서는 이듬해 봄외엔 책방이 없는데요. 모슬포의 유일한 책방으로써 부담감은 없으신가요?”
“부담감이 있긴 하죠. 모슬포의 유일한 서점이라서 가지는 부담감이라기 보단, 서점엔 책이 빽빽하게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에 대한 부담감인 것 같아요. 저희 책방엔 그렇게 많은 책이 있지는 않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양을 늘리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양으로 승부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책방만의 셀렉으로 승부하고 싶거든요. 굿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굿즈 입점문의도 오곤 하는데, 많은 굿즈를 들여놓기보단 적지만 책방과 어울리는 굿즈들 위주로 들여놓아요. 하나를 소개하더라도 제대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하나를 소개해도 제대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일까. 이듬해 봄은 그렇게 많은 책을 취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소 헐렁해 보일 수 있는 서가지만, 이곳만의 색으로 천천히 채워나가는 기쁨을 지금 그녀는 누리고 있다.
“제주도는 관광으로 유명한 섬이기에 관광차 왔다가 서점에 들르시는 분도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영업을 하지 않고 평일만 하신다고 들었어요. 평일 영업만 하다 보니 매출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많을 것 같은데요. 평일 영업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이 부분은 제가 계속 고민을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주말에 문을 열지 않다 보니 매출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긴 해요. 처음에는 주말에도 열었어요. 남편이 아이를 봐주고, 저는 주말에 책방에 나와있는 거죠. 그런데 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고요. 책방 지기와 엄마로서의 역할에 있어서요. 고민 끝에 주말에 문을 닫기로 했는데, 닫고 나니 선명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어요. 단지 매출 때문에 주말에도 영업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잊혀질까 두려웠던 거예요. 이듬해 봄이 주말에 열지 않아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거요. 근데 막상 공지를 띄우고 나니, 사람들도 ‘아 이듬해 봄은 빨간 날엔 문을 닫는 곳이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 두려움은 덜해졌어요. 장점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거고요. 단점은 역시 매출, 홍보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선택한 것이기에 단점에 대한 리스크는 안고 가고 있어요.”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다. 주말을 껴서 여행을 오는 사람의 수도 적지 않으니,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터. 그러나, 매출도 매출이지만 잊혀질까 두려웠다는 말이 마음에 찡하게 와 닿았다. 잊혀짐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다행히도 지금은 평일 오픈이 자리 잡아 그녀의 마음속 짐은 조금은 덜어졌으리라. 이듬해 봄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책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제주 이주 8년 차가 되셨다 들었는데요. 제주로 이주해 지낸 시간이 짧지 않은 만큼 제주도의 여러 가지 변화들을 직접 몸으로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런 변화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부분 제주도의 변화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자연환경의 파괴라던지 그런 부분에서요. 저는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없어요. 지금의 변화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데 환경이 똑같이 유지되고, 변화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대신, 변화하는 부분들이 급진적인 면이 있기에 우려가 되긴 해요. 우려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내고 있어요.”
제주에 반해 육지의 삶을 포기하고 이주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늘어난 사람만큼 제주도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데 어찌 매일 같은 모습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변화들을 부정적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생각하는 이듬해 봄만의 색은 무엇일까.
“다른 서점과는 차별화된 이듬해 봄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공간의 힘, 인연의 힘을 믿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들이 이듬해 봄 안에서 좋은 방향으로 순환되고 있고,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이듬해 봄이 위치한 곳은 지나가다 들를 수는 없는 곳이에요. 골목 안에 있다 보니 눈에 띄기가 힘들거든요. 일부러 이 공간을 위해 발걸음 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고마움을 느껴요. 그런 1:1의 관계에서 얻는 에너지들이 참 커요. 제가 예전에는 엽서 처방전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각각의 스토리가 담긴 엽서를 처방해드리곤 하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이듬해 봄만이 가지는 하나의 색깔들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요.”
이곳을 발걸음 해주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듬해 봄의 가장 큰 색깔이다. 이런 걸음들이 훨씬 많이 쌓이면, 지금의 색보다 더 입체적인 색깔을 띠는 책방이 되지 않을까.
“이듬해 봄을 운영하며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다녀가신 손님들이 종종 손편지를 보내오곤 하는데요. 그런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이 공간에 혼자 방문하신 손님들이 서로 친구가 되어 다음에 다시 찾을 때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되는 부분들도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처음 보는 타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책방. 새로운 인연을 맺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들어올 때는 혼자지만, 나갈 때는 누군가와 함께일 모습들을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대표님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행운이라고 느꼈던 책이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었던 <작은 아씨들>이요. 살아오면서 큰 시험의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다시금 꺼내보곤 해요. 이 책이 제게 주는 힘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작은 아씨들>은 저의 수호천사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도 그런 힘을 주는 책이고요. 이건 여담이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영향으로 저희 아이의 태명을 제제로 짓기도 했었어요.”
책이 주는 힘은 크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들춰보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만큼 크나큰 행운이 있을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이듬해 봄에 놀러 와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세요?”
“책을 따로 추천하기보다 애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싶어요. 본인이 책을 정말 좋아해서 제 추천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상태라면 억지로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와서 책을 사는 것도 물론 좋지만, 굳이 구매를 하지 않으셔도 전 괜찮거든요. 공간에 머물다가 가기만 해도 좋아요. 실제로도 그렇게 손님들에게 얘길 하고 있어요. 근데, 그런 분들이 다음에 재방문을 해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다시 왔을 때는 책을 좀 좋아하고 싶어서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참 재밌게 느껴져요.”
억지로 권하기보다 흥미가 생길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겠다는 마음이 담긴 대답. 이런 책방지기가 있는 곳이라면 책에 관심이 없어도, 서서히 책에 대한 관심이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을 이듬해 봄으로 대입해보자면, 몇 년 후 임대차 계약이 끝나고 난 뒤에 비록 장소가 바뀌게 된다 해도 이듬해 봄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듬해 봄을 계속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이상적일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고 만약 장소가 바뀌게 된다 해도 이듬해 봄이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이듬해 봄이 그녀의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바라본다.
“매일 이듬해 봄의 문을 열며 하는 생각들이 있으세요?”
“첫 손님에 대한 생각을 해요. 이게 약간 미신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날 그 날의 분위기가 첫 손님으로 인해 결정되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리고, 저는 첫 손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려고 기다려요. 혼자 커피를 마실 수도 있지만, 첫 손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느낌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첫 손님이 이듬해 봄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스하다. 향긋한 커피 향과 종이책 특유의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하는 느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듬해 봄의 첫 손님으로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싶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네요. 제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 관련 도서가 있다면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와 님이 만든 <탐라 일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시와 님이 제주를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로 만든 책이에요. 이 책 안에 담긴 오름이나 공간들을 가보는 것들도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서울 신촌에 있는 책방에 갔을 때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취향저격당해서 샀던 기억이 났다. 직접 핸드메이드로 만든 책인 데다, 넘기는 페이지마다 제주스럽다란 느낌을 받아서 매력적이었다. 일반적인 여행을 넘어서 자신만의 여행을 꾸려가고 싶다면, 이 책에 나오는 곳들을 가봐도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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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책방을 나서는데, 잠시 그쳤던 비가 폭우가 되어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 덕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지만, 어째 그게 나쁘지 만은 않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밝은 기운을 많이 얻어서인가보다. 이번에는 비 오는 날의 이듬해 봄을 마주했으니, 다음에는 맑은 날의 이듬해 봄을 만나고 싶다. 이듬해 봄에도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