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속의 북극, 북극서점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인천 (1)

by 석류



햇볕이 머리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어느 여름날 오후, 인터뷰를 위해 인천에 왔다. 오늘의 인터뷰 서점은 ‘북극서점’. 날씨와는 다르게 시원한 느낌을 가득 담은 서점 이름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담은 공간일지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렇게 호기심을 안고,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북극의 문을 두드렸다.



*



IMG_1343.JPG 부평구에 위치한 북극서점. 여름에 만나서 그런지 책방 이름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북극서점을 운영하는 순사장이라고 합니다. 서점에 앉아 조용히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방문해주셔서 반갑습니다.”



방문해주어 반갑다고 말하는 순사장님의 얼굴에 옅은 파스텔톤의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의 인터뷰가 매우 따스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인천에서 북극서점을 오픈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북극서점을 오픈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 사이에 둘러싸여 있고 싶어서 열게 되었고요. 오픈은 정말 충동적이었는데요. 4시간 만에 오픈이 결정 됐거든요. 어느 일요일 오후 열두 시에 친구 전화를 받았어요. 월세 15만 원짜리 자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두시에 바로 계약을 했어요. 그리고, 네시에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점을 하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열게 된 과정이 되게 충동적이긴 하지만, 사실 저 혼자서도 책방을 열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동인천 쪽에 책방을 열려고 했었는데, 자리도 없었고 너무 월세도 비싼 거예요. 그래서 책방에 대한 걸 잠시 접고 있던 차에, 친구한테 연락이 온 거죠.”



몇 시간만에 오픈 결정을 내리다니. 놀라웠다. 아무리 월세가 싸다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인데. 추진력이 대단하다. 그 정도로 서점에 대한 애정이 컸었기에 고민 없이 단번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지.



“두 분은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영화라는 접점이 함께 서점을 오픈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영화라는 접점이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고요. 가치관이나 취향이 저와 비슷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접점이 된 거죠. 인생관 게임이라고 제가 만든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에서 하나 빼고 다 같은 거예요.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어요. 당연히 얘랑 같이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북극서점에는 순사장님 외에도 염사장님도 있다. 지금은 육아 때문에 책방에 나오기 힘든 염사장님을 대신해 순사장님 혼자 책방을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 북극의 책방 지기 두 사람이 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영화제에서 만난 친구가 나와 같은 가치관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얼마나 반갑고 신기할까. 그 친구와 함께 도모한 일이 책방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내 흥미를 자극했다.



“염사장님과 같이 단편영화도 찍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작품이었나요?”

“네. 같이 단편영화를 찍었어요. 서로 돌아가며 감독을 하고, 주연을 했어요. 총 3편 정도의 작품을 찍었어요. 아직 따로 공개는 안했구요. 서로 인질처럼 각자의 작품을 잡고 있는 상황이에요. 내꺼 틀면, 나도 니 작품을 틀 거다 이런 식으로요. 최근에도 작품을 하나 찍었는데요. 이건 그 친구와 찍은 건 아니고 저 혼자 지인들을 모아 찍었어요. 제목은 <매력 학원>이에요. 연애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에요. 나의 매력을 발굴해주는 매력 학원이 있는 거죠. 그 학원에서 자신의 매력들을 발견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이야기를 들으며 두 친구가 서로 감독과 주연 배우가 되어 프레임 속에 각자가 구상한 스토리를 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재미나는 느낌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그녀의 영화들을 보고 싶다. 살짝 이야기만 들은 <매력 학원>만큼이나 모두 매력적인 작품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간판에 적힌 북극서점의 글자가 흰색이어서 그런지 묘하게 이글루가 연상되는 느낌이 들어요. 북극서점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북극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일상에서 자주 발음하지는 않는 단어죠. 그래서 북극이라고 정했어요. 북극의 북은 책이라는 뜻의 북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낯설지만 가까운 느낌. 북극은 멀지만, 북극에 담긴 책은 어쩌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IMG_1372.JPG 북극서점의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문장과 그림.



“입구의 칠판이 인상적이에요. 칠판의 그림과 글귀는 고정된 형태인가요? 아니면 괜찮은 문장을 발견하면 바꾸기도 하시나요?”

“제가 카프카를 좋아해요. 그림 그리는 친구한테 카프카를 좀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죠. 다시 또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계속 같은 걸로 가고 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페인트로 할 걸 그랬어요. 그럼 지워지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지워지려 하면 덧칠하듯 다시 새로 그려 넣는 카프카와 문장들. 처음부터 페인트로 할 걸 그랬다며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아이처럼 해맑았다.



IMG_1359.JPG 마치 9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느낌이 드는 소품들.



“북극서점이 위치한 부평구는 원도심인데요. 그래서인지 북극서점엔 원도심의 빈티지함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이런 빈티지한 컨셉으로 서점을 운영해나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일 큰 이유는 좋아해서인 것 같아요. 빈티지한 것들을 옛날부터 좋아했어요. 노래나 문화들도 옛것을 좋아하고요. 그것들이 저한테는 유일하게 느껴지거든요. 독특하고, 개성적이고, 따뜻함도 녹아있고요. 이곳에 있는 물건들도 예전에는 어떠한 풍경의 일부분이었을 텐데, 북극으로 오게 되면서부터 제가 그 물건의 역사를 소유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물건의 역사를 소유하는 느낌이라니. 설레는 대답이다. 만약 말이 아닌 책이었다면,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로맨틱하다.



IMG_1357.JPG 북극서점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빈티지한 잡화들.
IMG_1362.JPG 중고 코너에서는 절판된 도서들을 만나 볼 수도 있다.



“책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빈티지 잡화들도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요. 여행을 다니며 물건들을 공수한다고 들었습니다. 물건을 공수해오는 기준이 따로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여행을 하며 오래된 문방구에 가는 걸 즐기는데요. 그 오래된 문방구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구요. 벼룩시장에 가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 곳에서 구해오는 물건들도 있어요. 북극서점을 하기 전에도 이미 수집된 것들이 많은 편이었어요. 원래부터 수집하는 걸 워낙 좋아하거든요.”



빈티지한 컨셉으로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책 외에도 빈티지한 소품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물론, 책도 빈티지한 것들이 있다. 중고서적 코너가 있기 때문. 지금은 절판돼서 구하기 힘든 책들이 가지런히 서가에 꽂혀 저마다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IMG_1356.JPG 독립출판물이 모여있는 매대. 독립출판물을 입고할때도, 고심해서 들여놓는다고 했다.



“책 큐레이션은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하시나요?”

“신간 나오는 것 중에는 제가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들여놓고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좋아했던 책들도 들여놓고, 그 외에는 독립출판물들도 들여놓아요. 제가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들 위주로 최대한 큐레이션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인기가 많은 도서들도 입고하곤 하지만, 선뜻 추천하기는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들로 최대한 서가를 채워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는 책방 지기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양질의 숨겨진 좋은 책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책방을 운영하는 동력 중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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