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인천 (2)
“제가 찾아보니 처음에는 북극서점만 있고, 북극홀은 없었더라고요. 북극홀에서 행사를 많이 진행하시는데요. 서점 옆에 바로 북극홀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가지게 된 힘은 어떤 부분이라고 보시나요?”
“북극홀이 생기면서 만나게 된 분들이 많아요. 작가님들도 많이 만나게 되고요. 그런데, 다른 책방과 달리 저희 책방은 사랑방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회성으로 전시나 공연을 하긴 했어도, 정기적인 모임의 형태를 가져가지는 못하고 있거든요. 제가 진행하는 모임이 따로 없기도 하고요. 결심이 서게 되면 모임을 진행해볼 생각이 있긴 해요. 창작자들이 모여서 각자의 작업을 보여주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지는 방식으로요. 그게 그림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상관없이요. 서로가 관찰자가 되어 각자의 작품을 보다 보면, 하나의 동기부여로 작용해서 뭐라도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창작자 모임이 진행될 그 날이 기대된다. 모임이 진행되면 좋은 작품들이 많이 세상에 나올 것 같으니까.
“순사장님은 ‘슬로보트’라는 이름으로 앨범도 내셨는데요. 다음 앨범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요새 정말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앨범을 내려면 노래를 만들어야 되는데, 창작욕구가 올라오는 시기라서 아까 말씀드린 그런 창작자 모임 같은 것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새벽 라디오가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틈틈이 즐겨 듣던 영화음악 라디오 방송이 있었다. 그 방송처럼, 심야 시간에 잘 어울리는 보이스 컬러를 가지고 있어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종종 그녀의 노랫소리를 벗 삼아 집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래서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나 궁금했는데, 한창 창작 욕구가 올라오는 시기라니 반가웠다. 1집이 좋았던 만큼 2집도 기대된다.
“지금 자리에는 안 계시지만, 염사장님은 코스모네트라는 여자 우주비행사의 낯설고 요상한 외계 여행을 다룬 만화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요. 만화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살짝 살펴봤는데요. 60살에나 완성이 될 거 같아요. 아직 몇 장 작업이 안됐더라고요. 지금은 아이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작업하기 힘든 환경이라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그래도 얼른 작업이 진행될 수 있게 제가 한 번 쪼아보겠습니다.”
얼른 작업이 진행될 수 있게 쪼아보겠다고 말하며 웃는 모습에서 친구를 넘어서, 한 명의 독자로써 염사장님의 만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묻어났다.
“북극서점은 순사장님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 공간인가요?”
“놀이터이자 거실요. 재미있고 즐거운 곳이거든요. 우리 집 거실처럼 편안한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그 거실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아직도 신기한 마음이 들어요.”
재미있고 즐거운 느낌을 안고 있기 때문에 책방에 오는 발걸음 또한 자연스레 신이 날 수밖에 없으리라. 주인이 신이 나니 공간에 방문하는 사람의 걸음도 덩달아 신이 나는 건 물론이고.
“북극서점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곳은 다른 책방에 비해 정말 작은 공간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걸로는 아마 top 3안에는 들 것 같아요. 이렇게 작은 공간에 온갖 취향들이 다 모여 있어요. 제가 취향이 워낙 잡다하다 보니, 그 취향들이 공간 안에 총망라되어있죠. 취향이 비슷한 분이라면, 마치 친구 방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면서 편안하실 거예요.”
테트리스를 하듯이 물건의 배치를 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정말 작은 공간이지만, 오밀조밀하게 책과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은 취향저격이었다. 잘 살펴보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일까. 이곳에 방문한 손님들은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른다.
“북극서점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개성적인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중학생 손님이 한 분 있는데요. 겨울에는 중절모를 꼭 쓰고 오곤 했어요. 그 손님이 저희 서점의 절판본, 희귀본 책들을 다 구입해갔어요. 말투나 행동, 책에 대한 취향이 그 나이 때와는 달라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차에 조예가 깊으신 차 선생님이 있으신데 가끔 다도 세트를 챙겨서 책방에 오실 때가 있어요. 좋은 차가 있으면 항상 나누려고 챙겨 오시더라고요. 아, 한 분이 더 있어요. 박상미 작가님이에요. 아들의 모습을 계속 화폭에 꾸준히 담으신 걸 봤어요. 그래서 저희가 전시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드렸죠. 그래서 북극홀에 전시를 열었는데, 그 전시를 출판사 분이 보신 거예요.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은 책으로도 만들어졌어요. 종종 작가님이 고마움의 의미로 비 오는 날 부침개를 가져다주시기도 하시고, 풀꽃도 꺾어서 갖다 주시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 공간을 통해 생기는 소소한 에피소드나 인연, 일들이 저는 참 좋아요.”
소박하지만 정이 느껴지는 방문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북극을 이끌어가는 큰 힘일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행운이라고 느꼈던 책이 있나요?”
“어린 시절에는 <데미안>이요. 어릴 적부터 죽음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데미안>을 만나고, 저 혼자만의 관심이 아닌 그러한 정서를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춘기 시절의 답을 주는 책이었달까요. 어른이 되어서는 카프카의 초단편들, 알베르 카뮈의 산문들을 읽으며 큰 자극을 받았어요. 자극과 함께 성장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는 자극을 주는 책들. 이런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그런 행운을 누리고 있는 그녀가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북극서점에 들러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세요?”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물어보고, 그에 맞춰서 책을 추천해드릴 것 같아요. 취향 상관없이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고양이 그림일기>예요. 읽다 보면 착해지는 책이에요. 책 안에 담긴 모든 요소가 착해서, 읽고 있으면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힘듬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더 추천해주고 싶어요. 힘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고양이가 들어간다는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평온해지는 느낌이 든다. 에너지가 부족해 힘이 들 때 나도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아야겠다.
“순사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은 어떤 것인가요?”
“제가 만나고 싶은 책방으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오두막이 하나 있고, 그 오두막에 분야별로 처음 만나는 다채로운 책들이 있고, 그 책들로 인해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책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재미난 것도 많고, 고양이도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물과 책과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파티도 열리고요. 계속 컨셉이 다른 형식의 파티가 열린다면 너무너무 재미날 것 같아요. 오두막 옆에 미술관이 있으면 더 좋고요. 책방을 중심으로 마을도 생기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꿈을 펼쳐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 그녀가 말한 책방의 이미지를 상상해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만약 책방이 중심이 되어 마을이 생기는 곳이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면 나도 그 마을에 들어가 살고 싶다. 지금은 이상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매일 책방 문을 열며 하는 생각이 있으세요?”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해요. 저는 출근을 하는 느낌보다, 서재에 오는 느낌으로 책방에 오거든요.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책방 문을 열어요. 책을 읽기 위해 책방을 열었기 때문에, 그 생각들을 1순위로 항상 안고 있어요. 그래서 책방에 오는 게 너무 즐거워요.”
책방에 오는 게 너무 즐겁다는 대답을 하는 그녀의 얼굴 가득 책방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겼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순사장님이 느끼는 인천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세요?”
“인천은 빈티지의 도시예요. 인천의 원도심은 다른 곳의 원도심보다 훨씬 더 날것의 느낌을 풍겨요. 잘 찾아보면 곳곳에 재밌는 요소들이 많아요. 근대 건축물도 있고, 옛 느낌을 가진 가게도 많이 있고요. 빈티지함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빈티지함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인천에 와서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들을 음미하며 거리를 거닐면 딱 좋을 것 같다. 그 산책은 인천만의 매력에 젖어드는 기분 좋은 순간이 될 테니까.
*
순사장님은 본인을 가리켜 걸어 다니는 북극서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오장육부는 바로 책방 공간이고. 이렇게 책방을 마음 깊이 아끼는 책방지기가 있다는 그 자체로 인천은 또 하나의 매력을 가지는 도시가 된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북극서점이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라며 나는 문밖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