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초록지붕, 인디고 서원 上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부산 (1)

by 석류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무더위를 자랑하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샌가 조금은 썰렁해진 가을 날씨에 인디고 서원을 찾았다. 이제까지 인터뷰를 진행한 서점들의 이야기 모두 듣고 싶고 궁금했지만, 이곳은 더더욱 궁금했다. 부산에서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우직하게 지켜온 인디고 서원. 인터뷰 허락을 받고 꿈만 같고 믿기질 않아서 답장을 계속 들여다보았는데, 지금 이 순간 드디어 꿈이 아닌 현실의 시간 앞에 서 있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제 나는 인디고 서원의 문을 연다.



*



E06CC99B-5464-46F0-85A1-0B8203C670AC.jpeg 부산 남천동에 위치한, 인디고 서원.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고 서원의 이윤영 실장이라고 합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정식으로 일한 지는 5년째지만, 이곳에서 활동한지는 15년 차입니다.”



차분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이윤영 실장님의 목소리에서 무언의 내공이 느껴졌다.



“인디고 서원의 뜻이 궁금합니다. 인디고 서원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인디고 서원은 부제가 있어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는 부제요. 인디고 서원을 만드신 허아람 대표님께서 인디고 서원을 만들기 전부터 인문학 수업을 하셨어요. 인문학 수업을 하실 때 가르쳤던 학생들을 인디고 아이들이라고 칭하시곤 했어요. 그리고, 청소년들이 책을 읽는 정원이라는 뜻에서 인디고 서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죠.”



인디고 아이들이 책을 읽는 정원, 인디고 서원. 이름의 뜻을 듣자 머릿속에 아이들이 한데 모여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막상 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인디고 서원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청소년기부터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에요.

일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면, 제가 청소년기에 이곳에 오게 된 이유부터 설명을 해야 될 것 같네요. 다들 이곳에 처음 오게 된 이유가 다 달라요.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억지로 보내서 오게 됐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자발적이지 않은 이유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함께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일을 하게 됐어요. 인디고에서는 모든 일이나 행사가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어서, 각자의 파트 일만 하는 게 아닌 모든 부분의 일을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면도 있어요. 인디고 서원안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일을 해나간다는 게 이곳만의 독특한 면이라고 봐요.”



첫 발걸음은 타의적이지만, 어느새 자발적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고 인디고 서원의 주축이 된 실장님.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과 함께 한 걸 보면, 어쩌면 인디고 서원은 실장님에게 운명과도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들이 사유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 책방이라고 들었어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는 슬로건 때문에 청소년만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일단 청소년을 위한다라고 하니까 선입견들이 많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을 수동적으로 보는 편이라, 아이들을 지도하는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청소년 스스로도 그렇고 어른들도 청소년을 주체적으로 보지를 않죠.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청소년들만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고, 유치하고 수준이 낮다고 지레짐작하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그에 반해 청소년들은 청소년들을 위한다는 게 어떤 건지를 잘 모르니까 선뜻 이 공간에 발걸음을 하기 어려워하고요. 인디고 서원이 오픈한 지 이제 14년이 되었는데요.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청소년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요.”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깨부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얼마나 많이 기울였을까 싶어서 코끝이 시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2004년에 처음 인디고 서원이 오픈했잖아요.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규모가 훨씬 작았다고 들었어요. 현재 위치한 초록지붕 집으로 2007년에 이사하면서 공간이 확장되었다고요.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수도 있는데 남천동에서 계속 책방을 이어가는 이유가 있나요?”

“방문해주시는 분들 중에는 인디고 서원이 분점인 줄 아는 분도 있었어요. 부산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졌던 거죠. 여러 좋은 제안도 많이 받았었어요. 서울로 오라거나, 백화점에 입점하는 건 어떻냐는 제안요. 만약 그랬다면 돈은 훨씬 많이 벌었을 수도 있지만, 인디고 서원의 뿌리는 바로 이곳 남천동이기에 단호하게 대표님이 거절하셨어요. 인디고 서원이 초록지붕 집으로도 불리는데, 초록지붕 집은 빨간 머리 앤에서 모티브를 따왔어요. 앤이 항상 다락에 올라가 상상하고 꿈꾸고 그랬기에, 아이들에게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주변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이 동네를 내려다보면, 저희 인디고 서원만 정원이 있어서 녹색이에요. 다른 곳들은 높은 빌딩만 보이죠. 그러한 이유들도 있고, 허아람 대표님을 비롯해 저희 모두 부산 사람이기에 부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는 게 자연스럽고요. 그렇기에 이전할 이유도, 분점을 낼 이유도 없기에 이곳에서 자연스레 계속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책만 팔아서는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이러한 제안들은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디고 서원은 자본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지켜나가려는 뚝심을 가진 대표님이 있었다. 대표님의 확고한 뚝심은 오랜 시간 인디고 서원을 지탱하는 하나의 힘으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인디고 서원이 위치한 이 곳 남천동은 학원가로 유명한 동네인데요. 학원가로 유명한 동네에 청소년들에게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이런 책방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책방으로 인해 작은 해방감을 맛보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나요?”

“의도를 가지고 만든 건 아니었어요. 일단 여기 주변에 책방이 없었어요. 참고서가 아닌 책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예요. 어떤 의도가 있어서가 아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에요. 아쉬운 점은 이곳의 아이들은 인디고 서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워요.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느라 학원밖의 공간들을 향유할 시간이 없거든요.”



학원 밖의 공간을 향유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집과 학교, 학원만 오가는 반복적인 일상들을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학원 근처에 이렇게 좋은 책방이 있는데도 걸음 하지 못하는 아이들. 언제쯤 아이들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인디고 서원을 이끌어가는 직원들은 모두 허아람 대표님의 제자라고 하셨는데, 대표님은 인디고 서원 식구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저희가 아람샘이라고 대표님을 부르는데요. 아람샘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창조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세요. 초심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꿈꾸고 실천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저희에게 있어 허아람 대표님은 선생님이자 대장님이에요. 우리를 항상 꿈꾸게 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게 이끌어주는 분이거든요.”



선생님이자 대장님인 허아람 대표님. 항상 꿈꾸게 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게 이끌어주는 리더가 있는 공간이라니. 인디고 서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EC67BD48-2C94-4BDF-A4DA-C18DCC804DDF.jpeg 인디고 서원에서 운영중인, 채식식당 에코토피아.



“인디고 서원에서는 에코토피아라는 이름의 채식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식당과 책방이 함께 어우러진 곳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코토피아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에코토피아는 인디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한데 모아져 만들어진 공간이에요. 윌리엄 모리스라는 영국의 사상가가 쓴 에코토피아 뉴스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요. 새롭게 도래할 세상이 있다면 생태 지향적인 곳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에코토피아가 필요한 세상이에요. 환경 문제나, 비윤리적으로 도축되는 가축에 대한 것 등등이 식문화와 관련 있고 많이 집약되어 있다면, 그런 불평등하고 비윤리적인 것들을 음식의 혁명을 통해 바꾸어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 에코토피아에는 슬로건이 있어요. ‘작은 혁명가들을 위한 작은 식당’이에요.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먹는다는 걸 떠나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세계를 형성하느냐도 중요하다고 봐요. 음식을 먹으며 토론의 장도 펼쳐나가는 거죠. 다른 나라를 예로 들자면 채식 식당은 사회 공동체의 출발점과도 같은 곳이에요. 그래서 저는 에코토피아를 통해서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어요.”



단순히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의 기능을 넘어서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에코토피아.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토론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인디고 서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책방 활동에 대한 어려움들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모든 공기관 사업에서 탈락한 거라 할 수 있겠네요. 인디고잉을 발행할 때 지원사업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우수문예지 사업이 사라졌어요. 신청서는 분명히 받았었는데, 당선자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사라짐이 구체화된 거죠. 그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어서, 저희는 왜 당선자를 발표하지 않느냐고 이유를 밝히라고 항의를 했는데 이유를 밝힐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 방송국에 제보도 했는데, 조용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블랙리스트 문건들이 발견되면서 그러한 문제들이 다시 재조명되었죠. 일단 블랙리스트로 인해 지원금이 많이 끊겼는데, 오히려 시민들이 그런 걸 알고 저희를 많이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시기도 했어요. 저는 정부가 블랙리스트는 만들었으나 철두철미하진 않았다고 봐요. 인문문화사업을 융성하겠다는 얘기 때문에 저희 쪽에 접촉해오는 기관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학교 학생들과 직접 만나는 행사가 더 늘어났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사실 경제적인 부분도 부분이지만, 저희는 정신적으로 더 많이 힘들었어요. 밝혀지지 않았던 세월호에 대한 것들도 그렇고요. 그 시기는 정말 사회적으로도 암흑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가 동력을 얻고 활동하기가 어려웠어요.”



사회적으로도 암흑기였던 그 시기를 벗어나 다시 빛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들 속에 서 있는 인디고 서원.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도 블랙리스트 문제로 큰 타격을 받았었기에, 더 와 닿았다. 빛나는 사람들과 공간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지 않게 다시는 이처럼 시대를 역행하는 블랙리스트 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FEE0A78-25B3-4C79-8E31-97E482A2058F.jpeg 건물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은행나무. 이 나무로 인해 인디고 서원의 창들은 바람이 통하는 '바람의 길'이 된다.



“건물의 1층에서 2층으로 이동할 때 외부 통로를 활용하잖아요. 그 통로의 이름이 ‘바람의 길’이라고 불리는데, 어떤 뜻으로 붙여진 건가요?”

“건물을 보시면 중간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어요. 은행나무는 가장 오래 사는 나무 중에 하나예요. 항상 공부하는 사람들 곁에는 은행나무가 있기도 했고요. 만약 은행나무가 없었다면 건물 전체를 더 넓게 쓸 수 있었겠지만, 은행나무를 두고 바람의 길을 뚫게 된 이유는 바람이 통하는 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식물이 함께 있고, 바람이 통하고, 햇빛이 통하는 순환의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디고 서원에서는 지난 십 년간 에어컨이 없었어요. 지금은 너무 더워져서 에어컨이 없이는 견디기가 어려워서 달긴 했지만요. 그 전에는 에어컨이 없이도 통하는 바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자연의 힘으로도 이젠 견디기 힘들어지는 걸 보면서 지구에 대한 위기감도 느껴지고 생각하게 됐어요.”



왜 ‘바람의 길’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자연적인 햇빛과 바람이 순환되는 바람의 길. 이제는 바람의 길의 힘으로도 버틸 수 없게 온난화가 심해진 걸 보며, 지구가 정말 많이 병들긴 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63F8917C-7C22-48EE-A618-87569A8B28CB.jpeg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는 잡지, 인디고잉이 한데 모여있다.



“인디고 서원에서는 인디고잉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인디고잉을 발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아람샘이 하는 수업 때 다들 책을 읽고 글을 써오고 토론을 하곤 했었는데요. 그곳에서 시작된 게 인디고잉이에요. 인디고잉은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닌, 공론화되어야 할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종이만이 가지는 평등함도 있고요. 그래서 잡지로 만들게 되었고요. 이 잡지를 만들면서, 아이들이 책을 쉽게 읽기 힘든 사회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세청세’라는 토론 프로그램도 만들게 됐어요. 정세청세는 텍스트를 영상화한 것을 보고 그 내용들을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지금은 전국 20여 곳이 넘는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인디고 서원에서 유일하게 전국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 프로그램이죠. 그리고 ‘주제와 변주’라는 이름으로 저자가 주제, 독자들이 변주가 되는 행사도 98회째 진행하고 있고요. 국내에 정세청세와 주제와 변주가 머무르고 있다면, 인디고 유스 북페어 같은 경우는 좀 더 범위를 확대해서 지구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행사예요. 단순히 책 전시나, 저자 초청의 틀을 벗어나서 참여하는 모두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사로써 2008년부터 진행이 되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유기적으로 다 연결된 형태로 모든 프로그램과 행사가 만들어지고 진행되고 있죠.”



매체가 워낙 다양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여전히 종이는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물성으로 특유의 평등함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꾸준히 지금도 발행되고 있는 인디고잉을 들여다보면 종이와 참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인디고 서원에서 진행되는 많은 행사 중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뜻의 ‘정세청세’ 프로그램은 내가 청소년이었다면 당장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청소년기에 인디고 서원을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왜 나는 이곳을 늦게 알게 된 걸까. 그래도 뒤늦게라도 이곳을 알게 되고, 이렇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크나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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