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진주 (1)
청주, 구미, 대구, 경주, 순천, 속초, 서울, 대전, 제주, 인천, 광주, 부산을 거쳐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을 도시로 진주를 선택했다. 진주를 선택하자 고민할 새도 없이 한 사람이 바로 떠올랐다. 조방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소책방 책방지기, 조경국 씨가. 항상 마주칠 때마다 웃음을 잃지 않고 쾌활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이야기가 이제껏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어느 오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는 힘차게 소소책방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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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3년 11월 11일부터 소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조경국입니다.”
오전에 진행되는 인터뷰라 피곤할 텐데도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의 모습을 보자 나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막상 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책방을 열게 된 이유가 있으세요? 그것도 새 책 서점이 아닌 헌책방을요.”
“고등학생 때 컴퓨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어요. 학생이다 보니 새 걸 사기에는 돈이 부족해서, 용돈을 모아 헌책방에 가서 과월호 컴퓨터 잡지를 사서 모으는 게 취미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진주에 헌책방이 8군데가 있었어요. 용돈을 받으면 자전거를 타고 그 8군데 헌책방을 다 돌았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자주 갔던 서점이 중앙서점이었고요. 그다음이 문화서점이라는 곳이었는데요. 그 시절에 헌책방을 갔던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있어서, 그래서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헌책방을 한다는 건 저의 오랜 꿈과도 같은 일이었어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머릿속에 자동으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컴퓨터 잡지를 사기 위해 헌책방들을 다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원하는 잡지들을 손에 넣었을 때 소년은 참 많이 설레었을 테다. 그 순간들이 모여 바로 지금의 그가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소책방하면 부엉이가 바로 떠오릅니다. 부엉이를 책방의 시그니처로 삼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책과 관련된 간판을 만드려고 생각하다 보니 부엉이가 떠올랐어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도 부엉이를 항상 데리고 다니니, 지식들이 담겨있는 책과 어울린다 싶었고요. 그래서 책 읽는 부엉이를 로고로 만들기 위해 큰딸에게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죠.”
“따님에게 로고를 부탁한 이유가 있나요?”
“서툴러도 딸이 그려주면 더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안 그리겠다고 한 걸 타로카드를 사주고 꼬드겨서 그리게 했어요. 수십 마리의 부엉이들을 그렸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뽑아서 예전에 같이 일하던 곳의 디자인 팀장님께 맡기고 최종 디자인으로 완성시켰어요.”
소소책방의 로고에는 책 읽는 부엉이가 있다. 부엉이가 로고에 들어있다 보니, 책방의 곳곳에도 숨은 부엉이들이 눈에 띈다. 이제까지 부엉이 로고를 누가 그려준 건지 궁금했는데, 딸이 그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의 말처럼 딸의 손길이 녹아있기에 소소책방의 로고는 단순한 로고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느낌이다.
“소소문고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만들어 <손바닥에 쓰다>를 시작으로 <소소책방 책방 일지>, <숨>, <환자의 나날>,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들을 펴내셨는데요. 직접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펴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소설 쓰기 모임인 ‘손바닥에 쓰다’라는 모임을 하고 있어서 활자로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서 두 권의 소설집을 만든 게 출판사의 시작이에요. 그 이후에 100명 정도 정기구독자를 모집해서 4만 원을 받고 책을 네 권 보내드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원래부터 책방 일지를 만들고 싶었기에 책방 일지를 시작으로 네 권의 책들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누군가에게 원고를 받아서 책을 만든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서 제가 쓴 글로 책들을 만들려고 했어요. 책방 일지를 내고, 오토바이 타고 일본 여행 다녀온 걸 그다음에 내고, 소설 쓴 걸 내고, 그 외에 다른 한 권을 내려고 했죠. 책방 일지를 내고, 다음 책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우연히 박성진 씨를 만나게 됐어요. 근데 그분이 시를 쓰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고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원고를 보니 시가 너무 좋은 거예요. 아, 이렇게 좋은 원고가 있는데 굳이 내 글로 책을 만들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어요. 나머지 분들의 책도 마찬가지예요. 원고가 너무 좋았어요.”
소소문고에서 나온 책들을 읽어 보았는데, 전부 매력적이었다. 원고도 좋지만, 디자인도 우수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책을 만들었는지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와 닿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눈길이 갔던 건 역시 책방 일지였다. 책방 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담긴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책방 일지를 지금 들여다보면 나중에 출간되는 책들의 미리 보기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책방 일지에 나온 필사에 대한 이야기, 서재에 대한 이야기, <아폴로 책방>에도 실린 카니아쿠마리같은 소설들요.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책방 일지를 쓰셨는지 궁금해요.”
“그렇지는 않고요. 책방 일지는 제가 책방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을 묶어서 낸 거예요. 뒤에 썼던 글들과 아예 연관이 없을 수는 없지만요. 책방 일지 같은 경우는 무크지 형식으로 일 년에 두 번 정도 꾸준히 묶어서 내고 싶었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내용들이 다 들어갔죠. 그런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책을 파는 것도 힘들어서 시도하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은 일본 여행 갔을 때 쓴 일기들을 정도선 씨가 유유 출판사 대표님에게 소개해주셔서 인연이 되어서 만들게 되었죠. <필사의 기초> 같은 경우는 사실 쓸 계획은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되었던 책이에요. 유유 출판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필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한 번 해보겠다고 말해서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도 <필사의 기초>처럼 우연한 작업이었어요. 이 책은 책방 일지와 관련 있는데, 유유 출판사 대표님이 책방 일지를 읽고 항상 책 정리하는 게 끝이 없어서 부담스러운데, 혹시 책 정리와 서재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기회가 왔으니 흔쾌히 하겠다 했죠.”
출간된 책들이 미리 계획된 것들이 아니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차근차근 원고를 쓰고 낸 책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즉흥성이 있을 줄이야. 새삼 그의 원고 쓰는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방 일지에는 1월부터 5월까지의 이야기만 담겨있잖아요. 만약 시즌2가 나온다면 6월부터 12월까지의 이야기가 실리면 재밌을 것 같아요. 책방 일지 시즌2 출간 계획은 없으신가요?”
“책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어떻게든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치만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만드는 비용도 큰 문제고요.”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그가 쓴 책방 일지를 워낙 재미나게 읽었던지라,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책방 일지 시즌2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 전에도 사진에 관한 책과 페이스북에 관한 책들을 쓰셨지만, <소소책방 책방 일지>가 본격적인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책방 일지 이후로 <필사의 기초>,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아폴로 책방>,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까지 다 다른 느낌의 글을 쓰셨어요. 다 조금씩 다르지만, 책이라는 결은 공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방주님에게 있어서 원고를 쓸 수 있는 동력으로써 책은 어떤 작용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글을 쓰던 지간에 책은 기초자료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어야만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관심사에 대한 책들은 항상 수집을 해요. 수집해서 읽는 것들이 글을 쓸 때 도움이 많이 되죠. 특히 수집하는 것들이 있는데요. 책에 관한 책이나, 서점에 관한 책, 오토바이에 관한 책, 역사에 관한 책, 도구에 관한 책, 그림에 관한 책, 사진에 대한 책들은 빼놓지 않고 모으는 편이에요.”
대답을 들으며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또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글을 쓸 때, 그것에 대한 자료 조사를 주로 책을 통해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 가능한 대답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이 많이 발달한 시대지만,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고 그로 인해 나오는 글들이 있게 마련이니까.
“헌책들의 재고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헌책방 같은 경우는 어떤 책이 팔릴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재고 관리라는 게 모호해요. 언제 어떤 책이 나가게 될지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보니, 함부로 책을 정리할 수도 없고요. 일단 인문, 사회과학, 예술 위주로 책들을 매입해서 가져다 놓는 편이에요. 예전 같은 경우는 헌책을 따로 전문적으로 도매해주는 분도 많이 있어서 훨씬 수월했는데, 지금은 헌책방이 계속 문을 닫으면서 그런 분들도 줄어들어서 더 힘들죠.”
새 책방도 언제 어떤 책이 팔릴지 예측하기 힘든데, 헌책방은 더하겠지. 게다가 헌책방의 특성상 책이 나가고 나면 동일한 책을 다시 들여놓기도 힘들다. 이렇게 예측 불가한 헌책방의 세계에서, 책방에 들어오는 헌책들의 재생 작업을 그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새 책들과 달리 헌책들은 책방에 들어오면 재생작업을 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번거로울 텐데, 조방주님만의 오염된 책을 재생시키는 노하우가 있나요?”
“지우개를 사용해서 지워지는 부분들은 지우거나, 그 외에도 약간의 보수 작업을 거치는 책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지우면 안 되겠다 싶은 책들이 종종 있죠. 메모해놓은 것이 도리어 그 책의 가치를 높이는 책들이 있거든요. 그 메모들로 인해서 더 빛나는 책들요. 노하우는 따로 없고요. 요새는 유튜브가 워낙 발달해서 유튜브 같은데도 망가진 책을 수리하는 법이 잘 올라와요. 그리고 6699press 출판사에서 나온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수리법>이라는 책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책 수리에 대한 내용들이 나와요. 책 수리를 한다면 그런 것들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보통 수리할 때 휘발유, 풀, 지우개, 헤어드라이기처럼 생긴 열풍기 등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에요. 근데 그 정도로 시간을 들여 수리를 하게 되는 책이라면 제가 먼저 소장하고 싶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재생작업을 하면 무조건 다 지우는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메모가 가치를 되려 높이는 책도 있다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점들은 새 책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헌책만이 가지는 하나의 매력포인트가 아닐는지.
“헌책이다 보니 책이 들어올 때 책에 끼어있는 다른 물건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하세요?”
“보통 책갈피가 가장 많이 나오는데, 책갈피 같은 경우는 상자를 하나 두고 그곳에 모아놓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책을 펼쳤더니 책 안에서 합격 부적이 나오기도 했어요.”
상자 속에 차곡차곡 모인 서로 다른 디자인의 책갈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묘하게 몽글몽글해졌다. 버릴 수도 있는데 모아놓는 그의 마음도 따뜻하고. 마치 내가 책갈피가 된 듯이 포근한 기분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