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의 공간, 소소책방 下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진주 (2)

by 석류


“자칭 불량한 책방지기로 본인을 표현하시곤 하는데,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책방을 자주 비우고, 아는 분들에게 책방을 맡기는 일도 잦거든요. 가만히 책방에 앉아있는다고 해서 책방이 유지되지도 않기 때문에, 여러 일들을 하느라 자주 책방을 비우게 되더라고요. 주로 밖에서 작업하는 일이 많다 보니 책방에 붙어있는 시간이 많이 없어요.”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서 책방 밖의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러나, 그 사실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게 들린 건 책방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하는 그의 강한 의지 때문이리라.



“진주에서 여러 소모임을 많이 하셨어요. 소설, 사진전 관람, 그림, 온라인 필사 모임 등등. 그중에서도 소설 모임인 손바닥 모임이 결과물로 친다면 가장 뚜렷할 것 같아요. 소소문고에서 <손바닥에 쓰다>도 내셨고, <아폴로 책방>도 내셨으니까요. 손바닥 모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소설은 쓸 때 재밌고 치유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책방에서 모임을 하는 것도 하나 필요하겠다 싶기도 했고요. 혼자 쓰는 거 보단 같이 모여서 낭독도 하고 각자 쓴 걸 읽고 하면 재밌겠다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소설에 관심 있는 다섯 명으로 모임을 시작했는데, 더 늘어나서 여덟 명을 넘겼죠. 연달아 창작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3개월 단위로 하고 방학처럼 쉬는 텀을 가졌어요. 이 년 넘게 모임을 진행했는데요. 중간중간 쉬지 않았다면 모임이 오래가지 못했을 거예요. 쉬는 기간들이 소설을 쓰기 위한 충전의 시간들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다들 바쁘고 해서 모임이 따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아요.”



나도 한때 그와 함께 소설 모임을 했었다. 그때 단편들을 꽤나 많이 썼었는데, 내 글을 낭독해가며 누군가와 나눈다는 사실이 참 재밌었다. 다시 또 기회가 된다면 함께 모여 소설을 쓰고 싶다.



IMG_1194.JPG 책방에 걸려있는 세계지도. 지도위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의 모습이 겹쳐진다.
58B57789-EFFA-4082-BF8A-B46EF77EFE49.jpeg 유라시아 여행을 위해 직접 제작한, 스티커. 책 읽는 라이더의 모습이 그와 찰떡이다.



“소소책방을 오픈하시면서 굵직한 버킷리스트들을 정하셨어요. 콧수염 기르기, 오토바이 면허증 따기, 책방 찾아 세계 여행하기. 콧수염도 기르셨고 오토바이도 타시니 이제 마지막만 남았네요. 곧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로 여행을 떠나신다고 들었어요. 유라시아 여행의 목표가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유라시아 여행 계획에 대해서도 살짝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버킷리스트는 마흔이 되면서부터 일 년에 세 개씩 정해왔어요. 마흔 되던 해의 버킷리스트가 콧수염 기르기, 오토바이 면허증 따기, 책방 여행이었어요. 버킷리스트를 정할 때 두 가지는 소소한 것들로 하고 나머지 한 가지는 조금 어려운 것들로 정하는데요. 대부분의 버킷리스트를 이뤘고, 이제 남은 건 유라시아예요. 여행 계획은 따로 세우진 않았고요. 일단 렐루 서점을 반환점으로 삼아서 거기까진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돌아오는 것까지 오토바이를 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돌아올 때는 오토바이를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저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올 생각이에요. 가서 현지에서 숙소를 잡고 숙소에서 책방들을 추천받고, 추천받은 책방에서 또 다른 책방을 추천받고 그런 식으로 즉흥여행을 할 계획이에요.”



원래대로라면 이미 다녀왔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유라시아 여행은 늦추어진 상태다. 그러나 꽃 피는 봄이 오면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새로운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포르투갈까지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다 벅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IMG_1190.JPG 소소책방의 카운터. 책방지기가 없을때는 종을 치라고 올려놓은 게 인상적이다.



“소소책방만의 색깔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음, 색깔이라기보다 책방 지기가 자리를 자주 비우다 보니 방문하는 손님들이 다 직접 셀프로 하셔야 하는 것이 다른 점이 아닐까 싶어요.”



책방 지기는 없지만, 소소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그래서 조용히 책방에 들어와 책을 고르고 나면, 책값을 치르기 위해 카운터에 조용히 돈을 두고 가거나 계좌로 보내곤 한다. 책방지기와 일대일로 대면해서 값을 치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좋지만, 이러한 시간들도 충분히 좋다. 마치 책방이 나만의 비밀 공간이 된 기분이 드니까.



“소소책방을 운영하며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사를 세 번이나 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인 것 같아요.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항상 발 벗고 백인식 씨가 도와주셨는데 참 고마웠어요. 항상 책방 일을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시다 보니, 누군가에게 책방을 맡기게 된다면 백인식 씨에게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신뢰감이 있어요. 아, 그리고 이사를 할 때마다 공교롭게도 책방 장소들이 물과 관련이 되더라고요. 싱크대의 수도가 터져 물이 샌다거나 하는 일들요. 책이 물이랑 상극인데, 그런 부분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어요.”



이사를 할 때 항상 가장 힘든 건 책을 옮기는 일이었다. 책마다 부피도 제각각이고, 무게도 만만치 않으니까. 일반 가정집의 이사도 힘든데, 책방은 오죽할까. 그런 책방 이사를 매번 돕다니. 신뢰감이 클 만하다. 그의 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IMG_1195.JPG 소소책방에 들어서면, <무서록>의 문구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조방주님이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행운이라고 느꼈던 책이 있나요?”

“세 권의 책이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독서 습관을 처음 만들어 준 책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망>, 두 번째는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마지막으로는 이태준 선생님의 <무서록>을 꼽을 수 있겠네요. <무서록> 같은 경우는 ‘내가 글을 쓴다면 이태준 선생님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에요.”



<무서록>에 대한 애정은 책방의 칠판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러 번의 책방 이사 동안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칠판의 문구니까. 항상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걸린 채로 <무서록>의 문구는 책방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 소소책방에 와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니까 일단 대화를 나눠보고, 그분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드릴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 추천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네요.”



이제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질문을 했을 때 책방지기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한 후 책을 추천하겠다는 그의 대답 또한 다른 책방지기들과 다르지 않았다.



“조방주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앙서점이 이상적인 서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방이 좁고 길고 천장이 높은 형태여서 동굴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조용히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숨어 들 수도 있고, 서가 배치도 훨씬 효율적이라 책도 많이 꽂을 수 있고요.”



이야기를 들으며 중앙서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 틈 사이에 숨어들어 나만의 자그마한 공간을 만드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따스하다.



“매일 책방 문을 열며 하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방 문을 열면 책 냄새가 오늘도 정말 진하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헌책방이다 보니 오래된 책들이 많아서 종이 냄새가 강하거든요. 그래서 그 책 냄새들을 맡으며 언제 이 책들이 팔려나갈까 그런 생각들을 하곤 해요.”



모든 책에는 주인이 있다고 믿는다. 비록 언제 팔려나갈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도 책들은 자신의 주인을 찾아갈 것이다. 어느덧 인터뷰가 끝나가고, 질문도 마지막 한 가지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여행책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여행을 많이 다니시잖아요. 여행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에 관한 책이 있으신가요?”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과 브루스 채트윈의 <송라인>이 최고의 여행도서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워낙 지도 맵이 잘되어 있어서 길을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게 쉬운 시대예요. 근데, 저는 헤매면서 길을 찾고 여행을 지속하는 그런 것들이 멋지고 부럽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독한 시간도 가질 수 있고요. 이 책들은 일련의 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것들을 사진과 글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본인들이 가진 특유의 에너지를 잘 표현해내서 매력적이에요.”



많은 여행책들이 쏟아져 나와 있지만, 후지와라 신야와 브루스 채트윈의 글은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바이블과도 같다. 시대를 타지 않고, 언제 읽어도 좋으니까. 나도 그들처럼 그런 여행을 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의 마지막 코스가 진주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많은 도시를 돌고 돌아, 비로소 집에 온듯한 느낌이 드니까. 소소책방은 이제 온라인으로 책을 판매하고, 비공개 예약제로 바뀐다고 한다. 항상 열려있던 책방 문을 아무 때나 불쑥불쑥 열고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책방을 더 오랜 시간 이어가기 위해 내린 결정이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책방, 소소. 오래오래 진주에서 소소책방의 이름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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