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시간, 진양호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진주 (3)

by 석류


소싸움경기장에 버스를 내려 위로 걸어 올라가면 가을임을 알리는 색색의 나무들이 반긴다.




진주에서 걷기 제일 좋은 곳은 진양호라고 생각한다. 진양호로 진입하는 입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버스를 타고 소싸움경기장에 내려서 걷는 걸 추천한다. 다른 경로보다 상대적으로 걷는 사람이 적기에, 훨씬 한적하게 거닐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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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임을 알리는 알리는 낙엽들. 빨간빛의 낙엽을 사각사각 밟으며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늦가을의 진양호는 그 어느 때보다 운치 있었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이 지금이 가을임을 몸소 알리는 풍경들. 나는 진양호를 거닐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으며 갔던 진양호 동물원. 고사리 같은 손에 뻥튀기를 들고 신기한 눈으로 원숭이를 구경하다 우리 밖으로 뻗어 나온 원숭이의 손에 뻥튀기를 통째로 빼앗겨서 엉엉 울었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머리가 조금 더 커진 후, 친구들과 진양호에 와서 진주랜드 놀이기구를 탔던 그때. 진주에는 따로 놀이동산이 없었기에 놀이기구를 탈 곳이라곤 진주랜드뿐이었다. 지금 타라고 하면 절대 타지 않을 것 같은, 허름하고 안전도 보장되지 않을 것만 같은 삐걱거리던 놀이기구를 꽤 재밌게 탔었다. 빙그르르 돌던 다람쥐통을 즐겁게 깔깔거리며 타던 어린 소녀들.


그리고, 제일 최근의 진양호에 대한 기억은 ‘주말 메이트’라 불리던, 한때 주말마다 만났던 사람들과 거닐던 시간들이었다. 쌀쌀해진 지금과 달리, 따스했던 여름의 햇빛을 쬐며 시답잖은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진양호를 한 바퀴 돌았던 그 날. 지금 나는 혼자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내 기억 속의 그들과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였을 때도, 소녀시절에도,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진양호를 찾아와 곳곳에 발걸음을 새긴 것처럼,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늙고 지치는 순간이 온다 해도 마음만은 언제까지고 변치 않은 상태로 이 길을 걷고 싶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추억을 겹겹이 마음속에 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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