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예술이 만나는 곳, 씨네아트 리좀 上

내가 사랑한 영화관 - 마산 (1)

by 석류

IMG_4552.JPG 리좀으로 들어가는 입구.


작년 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가장 가까운 상영관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되었다. 마산에 위치한 씨네아트 리좀. 처음 리좀에 발걸음 했던 날,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저녁이 내려앉은 창동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1년 만에 다시 리좀을 찾았다. 단순한 영화관이 아닌, 여러 활동들을 진행해나가는 리좀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니 인터뷰 전부터 마음이 쿵쾅쿵쾅 설레었다. 리좀은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기대감과 함께 오늘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씨네아트 리좀이라는 예술영화 전용관을 운영하고 있는 하효선입니다. 씨네아트 리좀은 예술영화관뿐만 아니라 갤러리와 레지던스가 함께 결합된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에요. 대외적으로는 씨네아트 리좀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큰 줄기로 보았을 때는 에스파스 리좀의 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리좀에 대한 설명을 하는 하효선 대표님의 열정 넘치는 눈빛에서 나는 오늘의 인터뷰가 그의 눈빛만큼이나 열정 넘치는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네아트 리좀의 이름 뜻이 궁금합니다.”

“에스파스라 불리는 스페이스의 불어 뜻과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리좀이 결합된 형태의 이름입니다. 리좀은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서 철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데요. 제가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그러한 테마를 많이 공부했던지라, 그 의미를 이곳으로 가져와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리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독특하게 느껴지는 씨네아트 리좀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과연 어떤 뜻일까 궁금했었다.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 철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이름이라니. 이름부터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IMG_4559.JPG 리좀 매표소가 위치한 3층 로비. 아름답게 꾸며진 창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순간이 무척이나 예술적이고 감미로웠다.



“리좀이 위치한 곳은 창동예술촌인데요. 창동예술촌에 자리 잡게 된 이유가 있나요?”

“리좀의 존재 자체가 창동예술촌 때문에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제가 21년 정도를 프랑스에서 지내다가 2009년쯤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프랑스에서 쭉 문화예술기획을 하다가 한국에 온 김에 새롭게 그러한 기획들을 시작하려고 하던 찰나에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창동예술촌 작가 협의회의 회장님과 창동 상인회 회장님이 창동예술촌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레지던스를 끌어올 필요가 있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창동예술촌에 자리를 잡고 시작하게 되었고요. 레지던스를 만들고, 저희가 만든 공간에서의 활동들은 성공적이었지만 원래 이곳에 자리 잡고 계신 분들과의 연계 작업은 결코 쉽지가 않았어요. 그런 부분들이 참 어렵게 느껴졌어요.”



리좀이 위치한 창동예술촌은 예술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어서, 영화도 하나의 예술이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줄 알았다. 그러나 리좀의 첫 시작은 의외로 영화관이 아닌 레지던스였다. 레지던스로 시작해 여러 활동들을 이어가며 뿌듯함을 느낀 부분도 많았겠지만, 리좀보다 먼저 창동예술촌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과의 콜라보는 그의 말처럼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 부분은 리좀이 계속 고민해야 할 하나의 과제일 수도 있다. 다른 곳이 아닌 창동예술촌에 위치하고 있는 이상.



“리좀은 디지털 상영 장비가 없어 휴관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요. 시에서 장비 지원을 해줘서 다행히도 위기를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위기를 겪으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네. 그로 인해 달라진 부분들이 있죠. 사실 영화관 자체로는 운영 수익이 나오지 않아요. 요새는 주로 멀티플렉스를 많이 가니까요. 2014년도에 거제 아트시네마가 문을 닫았어요. 그러고 나서, 저희가 15년에 문을 열게 되었는데 그 일 년이라는 텀 동안 경상남도에서는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다시피 했죠. 저희가 공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2013년도에 창원시에서 리모델링 지원을 해주었는데, 그게 전체 지원이 아닌 부분 지원이었기에 사비가 상당 부분 들어갔어요. 레지던스를 하라고 해서 왔더니, 공간 자체만 존재하고 아무것도 활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엄청 애를 먹었어요. 전체를 다 고쳐야 하는 거죠. 심지어 현재 상영관으로 활용 중인 지하 같은 경우에는 불도 들어오지 않아서 정말 막막했어요. 아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하려고 했더니,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는데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온다 하더라고요. 진행을 하지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일단 저희 사비를 들여서 레지던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운영을 하다 보니 시에서도 생각보다 괜찮게 느껴졌는지 그다음 해부터는 지하 공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죠. 저희는 지하까지는 손을 댈 수 있는 여유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구조가 좀 달라졌지만, 처음에는 공연 연습 겸 소극장의 용도로 출발된 공간이어서 조명도 빽빽이 달려있었고 의자도 벤치 형태로 있었어요. 그런데 그 후에 지원사업에서 탈락을 하게 된 거예요. 지어진 공간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죠. 저희는 이 공간을 사수하기 위해서 매달 또 적지 않은 사비를 들여 임대료를 내면서 공간을 유지하려고 애썼죠. 사비를 들여서 운영을 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서, 공간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게 결코 개인에게 오롯이 다 맡기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떼려고도 했어요. 근데 우리가 손을 떼고 나오면, 이 지하 공간 리모델링한 것들을 전부 철거를 하고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거예요. 공공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건물주가 그걸 활용해서 세를 놓거나 해서, 개인이 이득을 취하면 안 되는 복잡한 구조였던 거죠. 힘들여 공사한걸 다시 다 뜯어버린다니 너무 말이 안 된다 싶어서, 영화관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영사 시스템도 들이고, 의자도 기존의 벤치형에서 좌석형으로 바꾸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상영 공간이 탄생되었어요. 안 그래도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영화를 상영하는 디지털 영사기가 너무 비싼 거예요. 1억 5천이나 하는 거죠. 일단은 거제 아트시네마에서 쓰던 장비를 중고로 구입해서 시작을 했는데, 저희가 사용한 영사기가 영화 배급사에서 영화를 배급하려면 카세트테이프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서 줘야 하는지라 돈이 많이 드는 형태였어요. 저희가 상영하는 영화 대부분이 상영 수익이 높은 작품이 드물어요. 수익도 별로 안 나는데, 본인들이 돈을 들여서 테이프 형식으로 만들어서 주는 게 배급사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거죠. 그래서 점점 더 저희에게 영화를 주지 않으려고 하더라고요. 영화 자체의 공급받는 비율이 줄어드니까 상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안 그래도 상영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인데, 영화 공급마저도 제대로 못 받으니 이건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싶었어요. 하필 그 타이밍에 <옥자>가 개봉을 했어요. <옥자>를 보러 저희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었는데요. 사람들이 다들 전국의 다른 극장들은 <옥자>를 상영하는데, 왜 리좀에서는 하지 않느냐는 말들을 하더라고요. 디지털 영사기가 없으니 요청이 많이 들어와도 <옥자>를 상영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참 많이 답답하고 화도 났어요. <옥자> 상영으로 다른 곳들에서는 적자들을 많이 메우는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적자를 메우기는커녕 상영조차도 불가한 상황이니 갑갑했어요. 그렇게 <옥자> 상영이 도화선이 돼서,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폐관을 하겠다 했죠. 그 폐관 얘기도 폐관을 하겠다! 해서 한 것이 아닌, 라디오에서 <옥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왜 우리는 상영을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폐관에 대한 얘길 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여러 매체로 크게 퍼져서 리좀 운영에 대한 어려움이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컸는데요. 그 목소리들로 인해서 결국 시에서 디지털 영사기를 임대해주는 형식으로 지원받게 됐어요.”



사실 이 질문은 가장 궁금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큼 제일 조심스러운 질문이기도 했다. 혹여나 내가 슬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닌가 했으니까. 전국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열풍이 이어졌던 2017년. 다른 극장에서는 <옥자>의 상영 수입으로 힘든 시기를 버틸 정도였는데, 리좀에서는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상영 자체도 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많은 영화들이 디지털로 만들어지고 상영되는 시대에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상영을 한다는 건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랬기에 리좀은 참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다행히 비록 임대 형식이라도 디지털 영사기가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디지털 영사기로 인해 리좀은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을 테니까.



IMG_4564.JPG 매표소 입구 문에 붙어있는 상영시간표와 영화 소개. 상영시간표만 보아도 얼마나 작품 선정에 공을 들이는지가 보인다.



“리좀에서는 하루에 6편씩, 매주 42편가량의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는데요. 상영작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영진위에 들어가면 상영스케줄이 나오는데요. 그곳에 들어가서 상영예정작을 살펴보고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우리 극장 성격과 맞고 대중과 만나면 좋을 것 같은 영화들 리스트를 뽑아요. 그 리스트를 토대로 우리만의 리스트를 새롭게 만들죠. 만든 리스트 안에서 검토를 다시 하고, 최종적으로 영화를 추린 후에 배급사에 연락을 취해서 영화를 받고 구체적인 상영시간표를 만들어요. 주말 같은 경우에는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를 주로 배치하고요. 평일은 골고루 섞어서 시간대를 맞춰요.”



하루에 6편의 영화를 다양하게 상영하며, 지역민들에게 더 많은 영화를 접하게 해 주려는 리좀의 시도는 상영시간표만 보아도 느낄 수 있다. 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공을 들인다는 게 보일 정도로 상영되는 영화들의 매력이나 퀄리티가 상당하다.



“상영을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디지털 영사기를 도입하기 전에는 항상 영화를 상영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상영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지키고 있었어요. 혹시나 상영이 끊기거나 할 수도 있어서 누구 한 사람은 꼭 지켜보고 있어야 했거든요. 디지털 영사기 같은 경우는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자동으로 상영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남네요.”



디지털 상영으로 인해 누군가가 지키고 서서 상영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없어져서 편리해졌지만, 한 번씩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아날로그적인 낭만도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모든 게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가끔 아날로그의 불편함이 그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종종 그 불편함을 느끼기 위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곤 하는데, 영사기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지금도 어느 누군가는 디지털이 아닌 카세트테이프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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