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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Dec 17. 2019

삼삼오오 함께 모이는 곳, 오오극장 下

내가 사랑한 영화관 - 대구 (2)



오오극장의 유리면에 적힌 문구들. 



“상영을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쁜 나라>라는 영화를 상영했던 때인데요. 영화를 보신 관객분이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면서 전석 티켓을 구매하시고 티켓을 나눔 하셨어요. 티켓 나눔으로 인해서 극장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고, 많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게 기사화도 되고 하면서, 전국적인 붐으로 번졌어요. 전국에서 <나쁜 나라> 티켓 나눔이 퍼진 거죠. 이 티켓 나눔은 저희가 이제껏 오오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극장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소개한 영화에 관객분이 충분히 공감하고 행동까지 해주셨다는 부분에서 정말 감사했어요. 심지어 티켓 나눔 한 그 관객분은 본인의 이름도 알리지 않으시고 익명으로 하셨어요. 참 멋있으신 분이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티켓 나눔의 순간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오오극장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진 티켓 나눔은 관객이 수동적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이렇듯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 좋은 영화는 관객이 먼저 알아보고 움직인다.



“대구에는 오오극장외에 동성아트홀도 위치해있는데요. 동성아트홀과는 다른 오오극장만이 가지는 색깔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 생각하세요?”

“동성아트홀은 한국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다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인데 반해, 저희는 한국 독립영화 전용관이기에 한국 독립영화만 상영해요. 그래서 동성아트홀 같은 경우는 예술영화를 좋아하시는 관객분이 많이 가시고, 저희는 독립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죠. 간혹 상영 시간표가 겹칠 때가 있긴 하지만, 최대한 겹치지 않게 상영하려 해요. 동성아트홀은 대구에서 역사가 깊고 오래된 곳이고, 저희는 새내기에 가까워요. 그렇기에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앞에서 말씀드린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한 기획전이나 서울독립영화제 순회 상영 전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앞으로도 여러 시도를 하면서 독립영화 전용관만의 색깔을 계속 찾아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이건 딴소리 일수도 있지만 저희 극장에 고양이가 있어요. 오우삼 감독의 이름과 오오극장+삼삼다방을 따서 오우삼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고양이가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어요. GV를 진행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상영관 안에 들어와서 감독님 곁에 있기도 하고 그래요.”



 대구에는 오오극장외에도 동성아트홀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매력적인 공간이 있다. 두 공간이 각자의 자리를 지켜가며 영화를 상영하고 있기에 관객들은 보다 폭넓게 작지만 매력적인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두 공간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가며 좋은 영화들을 많이 상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오극장의 고양이 이름이 오우삼이라는 게 너무 깜찍했다. 마치 고양이가 성냥개비를 물고 <영웅본색> 속의 주윤발처럼 등장할 것 같아서 생각만으로도 귀여웠다.



“오오극장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들이 있을까요?”

“저희가 개관 초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었어요. <다이빙벨> 상영 이후에 지원금이 다 끊겼어요. 그러다 보니 초기에 운영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운영금이 없으니 기획전 같은 것도 쉽사리 할 수가 없고요. 이러한 상황들을 겪다 보니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게 됐어요. 그리고, 좋은 영화에 관객이 들지 않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정말 좋은 영화인데 왜 관객이 들지 않는지 고민도 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홍보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것의 문제인지요. 좋은 영화들이 관객이 들지 않아서 빨리 막을 내릴 때 너무 안타까웠어요.”



 문화계 블랙리스트.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블랙리스트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공간들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금도 마찬가지. 블랙리스트라는 그 단어만 들어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문화를 주무르는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 다양성이 없는 문화예술은 죽음과도 같다.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 발랄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의 인생영화는 무엇일까.



“혜진 님이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웬만한 영화들에 다 좋은 기억이 있어서 고르기가 쉽지가 않은데요. 그래도 꼽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를 꼽고 싶어요.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이 좋았던 영화들을 꼽아본다면 이 영화가 최후에 선택될 것 같아요. 처음 <걸어도 걸어도>를 봤던 시기에 느꼈던 제 개인적인 감정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서 더 공감되더라고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여름의 맑은 느낌도 좋았고요. 그래서 이 작품이 제 이상형 월드컵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나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고레에다의 작품은 꾸며내지 않은 담백함이 있고, 우리의 정서와 잘 어우러지는 면들이 있다. <걸어도 걸어도>가 그의 인생영화라는 이야기를 듣자, 청량한 여름의 빛깔과 매미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1위에 이어, 그가 꼽은 2위는 어떤 영화일까 궁금해져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상형 월드컵에서 2위를 한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2위는 전혀 다른 작품인데요. <비포 선라이즈>에요. 어렸을 적에 로망을 안겨주고 갖게 해 준 작품이어서 2위로 꼽고 싶어요.”



 이럴 수가. 2위가 <비포 선라이즈>라니. 이 영화도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다. 그와 나의 영화적 취향이 겹친다는 사실이 매우 반갑게 다가왔다.



“혜진 님에게 있어서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영화관을 떠올렸을 때 항상 사람이 같이 떠올라요. 내가 영화관을 갔을 때 누구와 함께 가서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가 연결되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게 있어서 영화관은 추억이 떠오르는 곳이에요.”



 공간에서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곱씹게 되는 순간들. 추억이 떠오르는 곳으로써의 영화관이라는 대답이 낭만적이었다.


삼삼다방에는 많은 영화 DVD가 있다.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혜진 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관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 부분은 저희 오오극장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를 본다는 게 특별한 행위가 아닌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삼삼다방도 커피를 마셔야 된다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시고요. 오오극장이 지역 영화인들의 허브가 되었으면 해요. 여러 기획이나 제안도 부담 없이 얘기해주셨으면 좋겠고요. 뭐든 부담 없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미 오오극장이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현재 상영 중인 작품을 보지 않아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친밀감을 느끼고 나중에는 공간 자체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곳. 이 공간에 발걸음을 하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연스레 그러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오오극장의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저희가 올해부터 대구 영상미디어센터 위탁 운영을 받았는데요. 그래서 교육사업을 하게 됐어요. 오오극장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조합에서 극장도 운영하고 영상미디어센터도 하는데요. 이 영상미디어센터로 인해서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 활동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영상교육을 받으신 분들이 영화를 제작한 후에 오오극장에서 상영도 함으로써 지역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처음이라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구조. 아직은 갈길이 멀겠지만,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도 이러한 시스템들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지역 영화인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많은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일 오오극장의 문을 오픈할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문을 여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어떤 관객 분들이 찾아주실지 가장 궁금해하며 열죠. 만약 신작이 개봉하는 날이면 설렘도 있고요. 관객과의 대화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고 열어요. 그리고 고양이 오우삼은 밤 동안 잘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여는 것도 있고요.”



 그렇게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그는 오오극장의 문을 연다. 그의 기대감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게 시민들이 많이 걸음 해주면 좋겠다. 55의 뜻에 ‘55년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들어설 때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오극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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