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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Dec 21. 2019

바람 부는 날, 북성로 공구골목

내가 사랑한 영화관 - 대구 (3)

 

북성로 공구골목.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일요일, 나는 북성로 공구골목을 걸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혼자 걸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함께 걷는 일행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바람은 찼지만, 거리로 울려 퍼지는 우리의 대화 소리만큼은 따스했다.     



공구골목이라는 이름답게 큰 길가 외의 골목 곳곳에도 공구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공구골목이라는 이름답게 북성로는 온갖 기계와 공구를 취급하는 가게들로 넘쳐났다. 일요일에는 쉬는지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지만, 각기 다른 폰트로 적힌 간판들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의 모든 공구가 다 모일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구골목이라는 이름보다 카페거리로 변화해가고 있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 운영된 공구가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곳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여러 공구의 모양처럼 다양하게 담겨져 있지 않을까.     


 한참 공구골목을 미로를 헤매듯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가 우리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한 카페로 들어섰다. 따뜻한 커피를 시키고, 창밖으로 말없이 바람을 맞고 있는 간판들을 잠시 바라보다 나는 지금 함께하는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대가 바뀌면서 공구골목이 카페거리로 변화하듯이, 우리의 관계도 언젠가는 변화할 날이 오겠지만 바스러지지 않기를. 영원이라는 단어를 믿지는 않지만 당신과 함께한 이 순간만큼은 오래도록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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