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시민들의 약속의 장소, 신영 上

내가 사랑한 영화관 - 강릉 (1)

by 석류

IMG_17811.jpg 신영빌딩에 위치한 신영극장.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후, 여행을 가지 못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여행은 바로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위해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하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에 내가 떠나고 있구나 라는 걸 느끼자 무척이나 설레었다. 설렘을 안고 창밖을 계속 응시하고 있는데, 어느덧 강릉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신영으로 달려갔는데, 신영빌딩 건물이 눈앞에 보이자 기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오늘 나는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바로, 이 곳 신영에서.



*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릉 시네마테크 사무국원이자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슬기라고 합니다. 주로 영사 위주의 업무를 맡고 있고요, 일한 지는 5년 정도 되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밝아서, 오늘의 인터뷰도 경쾌하게 진행될 것 같아서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신영은 2012년 강릉 시네마테크 회원들의 힘으로 문을 열었는데요. 시네마테크 운동이 개관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신영이 위치한 장소는 예전 강릉의 랜드마크와도 같던 신영극장이 있던 자리여서 더 의미가 깊은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신영의 오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1996년부터 강릉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강릉 시네마테크 활동을 시작하면서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열고, 학교나 단체 같은 곳들을 돌면서 독립영화 순회상영을 했었어요. 본격적인 활동들을 하다 보니 상시 상영을 할 수 있는 극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극장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시점에 강릉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섰는데요.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면서 기존에 있던 중앙극장, 신영극장 등 강릉의 단관극장들이 문을 닫게 됐어요. 신영극장 같은 경우는 지금도 극장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기도 하고, “신영극장 앞에서 몇 시에 만나자.” 라며 약속을 잡던 강릉시민들의 약속의 장소기도 했어요. 그러한 부분들을 주목해서 예전 신영극장이 있던 지금의 이 자리에 2012년 독립예술극장 신영이 개관을 하게 되었죠.”


오랜 시간 강릉에서 단관극장으로 자리를 지켜온 신영극장. 약속의 장소로도 이야기가 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강릉 사람들이 이곳을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신영극장은 지역민들의 사랑방 같은 장소가 아니었을까. 그런 신영극장을 이어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신영이 탄생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약속의 장소로 많은 이들이 신영을 찾고, 기억하기를.



”신영은 지난 2016년 임시휴관 후 2017년에 강릉시와 후원회원의 도움으로 다시 문을 열었는데요. 재개관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재개관까지의 스토리도 궁금하네요."

”순수하게 매표 수입만으로는 영화관의 운영이 힘든 실정이라, 여러 도움들이 필요한데 하필 그 시기에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도 파행되고 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운영난을 겪었어요. 그래서 휴관을 하기로 했어요. 대신 무작정 휴관하는 게 아닌 재개관을 염두에 두고 휴관을 하기로 했죠. 일 년 정도 정동진독립영화제도 기존과 같이 계속 진행하면서, 다른 공간으로의 이전도 생각하면서 다른 공간도 찾아보곤 했어요. 기존의 신영극장은 단관으로 이루어진 형태지만, 자리를 옮기게 된다면 여러 관으로 운영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더라고요. 한 관은 안정적인 극장 운영을 위해 매표 수입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상영하고, 나머지 관은 지역 영화나 독립영화를 상영하려는 계획들이 있었죠. 그런데, 강릉시랑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강릉에서 신영극장이 지금까지 해온 의미들이 있기에 공간을 이전하지 않고 원래의 자리에서 그대로 재개관을 하는 걸로 결정이 났어요. 그리고,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신영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애매하고, 기존에 자주 걸음 해주신 관객분들도 불편을 겪을 테니까요. 그런 것들이 모여 지금의 자리에서 신영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신영의 휴관 소식을 그 당시에 기사로 접했었는데,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잘 해결되어서 이렇게 다시 재개관을 했고, 장소도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여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의 말대로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면 신영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방금도 말씀해주셨지만, 신영은 시네마테크 활동 외에도 정동진독립영화제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활동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것 같아요. 독립영화만 상영하는 것이 아닌 시네마테크 활동과 영화제를 병행하는 것에 대한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네마테크 활동으로 출발해, 정동진독립영화제로 이어졌고 그게 신영으로까지 이어졌는데요. 사실, 신영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한 행사를 따로 하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왔던 사람들이 그 기억을 안고, 신영에 많이 방문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신영이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연결된 거점 장소 같기도 해요. 후원회원들에게 영화제 굿즈를 보내드리기도 하는데, 직접 수령하러 신영에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걸 보고 있자면, 대놓고 크게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상당히 유기적이라는 생각들이 들죠. 공간을 통해 시네마테크와 영화제와 이어질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시네마테크 활동과 영화제가 결합되고,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게 상당히 낭만적이다. 영화관이 영화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집약된 형태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신영에서 만든 굿즈, ‘티켓북’은 영화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굿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티켓북’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정동진독립영화제 같은 경우는 굿즈가 있지만, 극장 자체의 굿즈는 없었던지라 항상 굿즈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영수증 티켓을 주는 곳들이 많은데, 저희는 영수증이 아닌 일반 티켓을 드리기 때문에 티켓북으로 굿즈를 만드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티켓북은 아날로그 적인 느낌도 주고, 기록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봤어요. 신영극장 건물도 워낙 오래돼서 아날로그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영수증 티켓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관람한 영화 티켓을 차곡차곡 모으는데, 영수증 티켓은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날아가서 어떤 영화를 관람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내 기억이 함께 휘발된 기분이 드니까. 만약, 신영이 일반 티켓이 아닌 영수증 티켓을 관객에게 제공했다면 티켓북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게 일반 티켓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은 아닐까 싶어서, 티켓에도 괜히 고마워졌다.



“신영의 홈페이지에 보니 웹진 카테고리가 따로 있더라고요. 씨네토크, DVD 소개, 프리뷰, 리뷰 등의 코너로 이루어진 구성이 알짜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웹진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작년부터 ‘처음쓰는 영화비평’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화양영화’라고 관객 모임도 했었는데요. 이런 프로그램들에 참여해주신 씨네필들의 이야기가 참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극장과 지속적으로 연계해서 계속 활동을 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웹진을 만들게 되었어요. 웹진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미흡한 점도 많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해나 가보려고 해요.”



올해 초부터 웹진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는 않았음에도 오래 해온 것처럼 정갈하고 깔끔한 웹진은 마치 시험기간에 보는 맞춤형 족집게 노트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코너를 품기보다, 필요한 것들을 적절히 잘 취한 게 최대 장점이다. 그렇기에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영의 웹진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IMG_1772.JPG 신영의 로비에서 <나는 보리>의 예고편이 흘러나오고 있다.



“얼마 전 강릉 출신인 김진유 감독의 영화 <나는 보리>가 개봉되었는데요. 개봉과 함께 신영에서 3일간 전회차를 <나는 보리>로 채우는 이벤트를 진행한 게 파격적이면서도 멋지게 다가오더라고요. 이러한 이벤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나는 보리>를 연출하신 김진유 감독님과 시네마테크 활동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어요. 워낙 지역에서 활동을 하시는 분이 드물어서 그런지, 강릉을 배경으로 한 <나는 보리>라는 이 작품이 상당한 성과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기도 했었던지라, 응원하는 차원에서 힘을 주고 싶어서 3일간 전회차를 <나는 보리>로 상영을 진행하게 됐어요. 다행히도 <나는 보리>를 상영하는 기간 동안 관객들도 많이 찾아주셔서, 이벤트를 진행한 저희에게도 정말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3일간 다른 영화의 상영이 없이 전부 <나는 보리>로 채운 거였다.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을 테지만, 그만큼 관객의 호응이 좋아서 다행이다. 상영을 통해 공간은 창작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리고 관객은 방문으로 공간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아닐는지.



“신영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예술영화관의 이야기를 담은 박배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씬>에도 등장하는 장소인데요. 감독들이 신영을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원도가 다른 도시와 달리 동떨어진 느낌이 있어요. 그런 동떨어진 곳에, 그것도 강릉에 작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신영이 있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져서 주목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재개관 전에는 상영관 내부가 옛날 신영극장의 원형을 유지한 형태로 운영되었었거든요. 상영관 의자 같은 경우도 옛날 극장 느낌이 강하고 하니까, 그런 이미지를 찾았던 분들에게 어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라스트 씬> 같은 경우는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고, 또 다른 공간인 저희의 휴관 전의 모습을 담았기에 비슷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면 김민희가 신영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 신영에서 영화를 볼 때 마치 영화 속 장면에 들어온 듯 한 기분이 들어서 두근거렸다. <라스트 씬>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국도예술관의 마지막을 담고 있기도 하고, 신영의 휴관 전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해서 두 번은 꺼내보기 힘들 정도로 아픈 작품이지만 보면서 작은 영화관들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며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굳건해졌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이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적 체험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디스페이스에서 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