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시민들의 약속의 장소, 신영 下

내가 사랑한 영화관 - 강릉 (3)

by 석류


“신영은 강원도 유일의 독립예술영화관인데요. 강원도에서 유일하다는 타이틀로 인해 부담감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 타이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타이틀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저희는 그저 강릉이라는 도시에서 자리를 잡고, 존재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타이틀이 붙어 있기 때문에, 강원도의 다른 지역에 작은 영화관이 생긴다면 저희가 하나의 롤모델로서 작용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건 있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는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도 때로는 힘이 드니까. 강원도에서 신영이 존재하기에, 또 다른 영화관이 탄생할 수 있는 씨앗이 뿌려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강릉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신영에도 관광객들의 방문이 많을 것 같은데요. 타지에서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중 인상적인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상적인 방문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관광을 왔다가 겸사겸사 신영을 들르시는 분들이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멀다 보니 영화만 보러 강릉까지 일부러 발걸음 하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오히려 관광객보다 타지에서 오신 씨네필들이 강릉에 새로운 터전을 잡게 되면서 신영에 오시고, 저희가 진행하는 모임에도 함께 참여하시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신영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나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들을 상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듯 좋은 공간은 개인의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상영을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재개관을 하면서 DCP 기계를 처음 도입했는데요. DCP 도입 전에는 영화 파일을 받아서 컴퓨터로 틀거나, 테이프로 영화를 틀었기 때문에 항상 조마조마했어요. 영사 사고가 날까 봐서요. DCP 기계는 상대적으로 그런 시스템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에요. 그럼에도 영사 사고가 있었던 적이 있어요. 저희가 재재관 후에 <런던 프라이드>라는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요. 영화를 상영하고, 김조광수 감독님과의 GV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가 계속 특정 시간대에 멈추는 거예요. 몇 번이나 영화를 틀었다 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상영을 취소하고 토크로 시간을 채우고, 그날 참석하신 분들에게 전부 환불을 해드렸어요. 죄송한 마음에 다음번에 다시 상영을 진행하기로 하고 초대권을 드렸죠. 정말 고맙게도 다음번 상영을 진행할 때 김조광수 감독님이 다시 또 신영에 와주셨어요. 바쁘셨을 텐데,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아찔해요. 사전 테스트를 했을 때는 이상이 없었는데, 본 상영에서 이렇게 기계적 실수가 이어지니까 진땀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악몽을 꾸면 항상 영사 사고가 나는 꿈을 꾸곤 해요.”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에 그 날의 아찔함이 스쳐 지났다. 그는 분명 아찔했을 테지만, 어쩌면 관객에게는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GV는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상영관 안을 자신의 공기로 휘어잡는 김조광수 감독님의 GV라면 더 매력적인 시간이었을 테니까. 다시 함께 할 수 있어서 분명히 행복했을 거라 믿는다.



“신영을 운영하며 제일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들이 있을까요?”

“안정적인 운영에 대한 부분이 역시나 가장 힘들죠. 게다가 요새 코로나 때문에 더 걱정이 깊어요. 극장은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이다 보니 관리에 대한 부담감이 커요. 시간이 더 지나고 코로나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다 같이 단체로 영화를 보는 분위기가 아닌 개인적으로 따로 앉아보는 분위기로 바뀔 테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을 해나가야 할까 계속 고민 중이에요.”



영화관에서 다 함께 영화를 보는 재미를, 코로나가 많이 앗아가 버렸다. 앞으로의 관람문화는 그의 말대로 개인적인 분위기로 더 깊숙이 변화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 극장은 어떻게 대처하고, 나아가야 할까. 너무도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 조금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하려 좋았던 기억에 대해서 물었다.


IMG_1768.JPG 관객이 바로 주인인 영화관, 신영.



“이번에는 반대로 신영을 운영하며 제일 좋았던 기억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말 기뻤던 건 역시 재재관이네요. 재개관 날의 장면들이 떠올라요. 오래전부터 신영을 응원해주셨던 분들이 다들 극장에 오셨고,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관객 중에 리뷰단 활동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요. 그분이 재개관 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 분장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오신 거예요. 등 뒤에는 신영 재개관이라고 붙이고요. 그 날 오신 관객들에게 가오나시가 선물을 주듯 사탕들을 나눠주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신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직접 분장을 하고, 심지어 등 뒤에 신영 재개관이라는 글씨를 붙이고 버스를 탔다니. 놀랍고 대단했다. 이러한 일은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 열정적인 관객을 가진 신영이 부러워졌다.


“강릉이라는 지역에서 신영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강릉에서 태어나고, 쭉 살아온 강릉 토박이예요. 강릉시 영상 미디어센터에서 처음 영화를 가깝게 접하게 되었는데, 그런 것들이 이어져서 정동진독립영화제 자원활동가도 했었어요. 자원활동을 할 때 박광수 사무국장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우리는 강릉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하셨거든요. 그 말처럼 신영이 딱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강릉이라는 지역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중간 다리 역할이자 문화적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이라고요.”



신영이 있기에, 강릉시민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접하고 영화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만약 신영이 다리가 되어주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이러한 다리 건너편의 세계를 알지 못한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IMG_1775.JPG 아늑함이 느껴지는 신영의 로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신영의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우선 ‘처음쓰는 영화비평’도 3기가 곧 출범되고요. 그것 외에도 관객 중심의 활동들을 많이 만들고 발전시켜볼 계획이에요. 그리고, 시설 적으로 방음이 좀 취약한 편이라 방음 공사를 새로 할 예정이에요. 영화를 보기 전에 로비에서 대기를 많이 하시니까, 로비 공간도 새로운 콘셉트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고요.”



그는 어떻게 로비를 꾸밀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좋지만, 만약 바뀌게 된다면 바뀌는 로비도 분명히 아름다울 것 같다. 이렇게 공간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이가 꾸미는데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다. 신영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영화일지 궁금해졌다.


“사무국장님이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나요?”

“매년마다 좋아하는 영화들이 계속 생기는데요. 굳이 꼽자면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고스트 스토리>, <우리의 20세기>, <김씨 표류기>를 들고 싶어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언어와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에 대해 다룬 게 너무 흥미로웠고, 특유의 마술적인 분위기가 좋았어요. <고스트 스토리>는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걸 생각하게 해서 좋았어요. <우리의 20세기>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분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 있어서 좋았고요. <김씨 표류기> 같은 경우는 마음이 심란할 때 찾곤 하는 영화예요. 심란할 때마다 이 작품을 보면 마음에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때때로 영화는 말 없는 위로를 화면 밖의 관람객에게 전달하곤 한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영화가 있다. 나에게도 우울할 때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처럼 꺼내먹는 영화가 있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김씨 표류기>는 그러한 위로를 전해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사무국장님에게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영화를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플랫폼이 계속 등장하고, 특히나 요즘에는 왓챠나 넷플릭스가 강세기도 하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플랫폼에서는 영화를 원하는 것만 딱딱 골라보게 돼서 오히려 더 다양하게 보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관은 그런 플랫폼과는 다르게 편견 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넓게 열려있고, GV나 관객 모임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영화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는 의미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점점 더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지만, 영화관이 가진 속성만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공간이 주는 힘과 영화가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하는 체험은 오직 영화관에서만 가능하니까.


“사무국장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관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대중들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금방 묻혀버리는 작품들이 없는 영화관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그런 영화들이 관객과 자주 만나고, 이야깃거리를 많이 던져줄 수 있게 하는 거야 말로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대답에서 느껴져서 뭉클했다. 그의 말처럼 좋은 영화들이 관객과 더 자주 만나고, 다양한 영화적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면 좋겠다.



IMG_17601.jpg 많은 관객들이 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영에게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매일 신영의 문을 오픈할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문을 여시나요?”

“일단 출근을 하면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시길 바라면서 기다려요. 코로나로 인해 아무래도 관객들이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니까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영화관들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신영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 위기도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신영은 앞으로도 계속 이 자리를 지키며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함께 걸어 나갈 테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신영에 작은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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