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영화관 - 서울 (16)
KU시네마테크에서 <남매의 여름밤>을 관람했다. <남매의 여름밤>은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와 동주, 그리고 고모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외갓집에서의 기억들이 스크린을 응시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천천히 나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인물들은 유독 면을 많이 먹는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메뉴인 콩국수를 비롯해 비빔국수, 라면까지. 왜 하필 면일까 생각해보았는데, 한국인의 주식인 밥과 달리 면은 매일 먹는 건 아니기에 방학 같았다. 밥이 학기 중이라면, 면은 방학처럼 쉬어가는 의미랄까.
영화 속에서 옥주의 할아버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할까 싶었다. 표정과 행동으로도 충분한 대화가 되니까. 마당에서 옥주와 눈이 마주치자 희미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짓는 옥주. 말이 없는 할아버지지만, 얼마나 손녀를 사랑하는지가 눈빛에서 느껴져서 따스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항상 앉아있던 소파를 보며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화산처럼 폭발시키는 옥주. 옥주가 자신의 감정을 터트리는 걸 보며,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떠올렸다. 텅 빈 할머니 집의 냉장고처럼, 텅 비어버린 자리. 누군가가 떠난 자리는 언제나 강한 슬픔으로 달려와 꽂힌다. 우는 옥주의 얼굴 위로 그 날의 기억이 겹쳐져서 나도 울컥하고 말았다.
영화는 옥주의 시선으로 주로 진행되지만, 다른 인물들도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 투닥투닥거리면서도 누나를 챙기는 귀여운 동생 동주, 내면에 아픔을 간직한 고모, 가장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아빠, 무뚝뚝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하는 할아버지까지. 어느 하나 소외되는 인물 없이 골고루 따뜻하게 카메라는 그들을 비춘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누군가와 마주 앉아 콩국수가 먹고 싶었다. 그 상대가 할아버지라면 더더욱 좋을 것 같았다. 유년의 기억들이 스크린을 통해 넘실거리던 순간, 그렇게 나는 스크린 속 옥주와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