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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ug 06. 2023

2022. 09. 21

1부 17-2화

 

 존배치 할당량이 끝도 없이 계속 생겨서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어떤 분이 나를 돕겠다고 존배치 할당을 받았는데, 몇 개만 집품하고 할당량이 바로 사라졌다고 했다. 나머지 할당이 전부 다 나에게로 몰려서 잡혀있었다고.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한 명이 존배치를 할 수 있나 싶어서 한계를 시험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2시 46분에 드디어 존배치가 끝난 후에는 A카트로 일반 집품을 하는 걸 할당받았는데, 일반 집품도 끝이 나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세시가 넘어가니 할당이 줄어들어서 뒷정리를 시작했는데 나만 계속 카트를 끌고 돌아다녔다. 3시 40분에야 진짜 집품이 끝났는데, 집품이 끝나고 나자 온몸의 근육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게 만보계에 측정된 걸 보니 4만 5천보 정도를 움직였더라. 킬로수로 따지면 36킬로를 움직인 셈이었다. 매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 생각하며 일하기는 했지만, 오늘의 움직임을 보니 정말 순례길 못지않았다. 아니,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최소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건을 계속 담고 나르고 컨베이어에 올리는 건 하지 않으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오늘은 쉬는 시간을 10분 더 주었는데, 존배치를 해서인지 추가로 받은 10분의 쉬는 시간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움직였던지 쉬는 시간이 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손도 떨리고. 처음 삼일 연속 일했을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온몸이 아파서, 진주에 도착해 통근 버스에서 내리자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어느새 나는 조금씩 이곳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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