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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ug 09. 2023

2022. 09. 27

1부 18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오늘의 내가 딱 그랬다. 이제까지 미집(물건을 개수보다 덜 담는 것), 과집(물건을 개수보다 더 담는 것), 오집(담아야 할 물건이 아닌 다른 물건을 담는 것)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실수를 했다. 과집 실수를.     


 집품 작업을 몇 달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바코드를 스캐닝한 게 패인이었다. 그것도 엄청 화끈하게 자잘한 물건들의 과집이 아닌 박스채로 과집해 버리고 말았다.   


 박스로 통째로 나가는 세제 상품이 많은지라 낱개가 아닌 박스라고 착각하고 L카트에 피킹 했다. 울샴푸 20개를 담고 나면 18개를 더 담으라고 떠서 울샴푸가 든 4개 들이 박스를 땀을 뻘뻘 흘리며 카트에 실었는데, 어쩐지 카트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더라.     


 움직이지 않는 카트의 바퀴를 벽을 밀듯이 억지로 밀어 끌며 스파이더에게 건넸는데, 낱개였을 줄이야. 박스에 낱개 바코드가 있어서 제대로 속았다. 박스에 낱개 바코드가 없었다면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봤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뭐 하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까.     


 과집 실수 때문에 내 바코드 번호(전화번호)를 안내방송으로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메인으로 가자 울샴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아차, 내가 잘못 담았구나.’라는 걸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메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빨간 조끼를 입은 캡틴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프세요? 아프면 조퇴하세요. 이렇게 물건을 담으시면 안 되죠. 처음 일하시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실수를 하세요? 일한 지 몇 달이나 되셨어요?”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한 과집 실수는 여러 가지 마음이 들게 했다. 안내방송 때문에 불안한 기분이 1차적으로 들었고, 아마추어 같이 기본적인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쪽팔리기도 했고, 캡틴의 날이 선 말투에 기분도 제대로 상했다.  


 오늘의 실수로 다음번에는 출근 확정 연락이 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갑갑해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비정규직은 언제나 ‘스페어’ 타이어 같은 존재다. 아파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실수를 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가능한 그러한 존재. 이곳에서 단기직으로 일하는 나 또한 ‘스페어’ 타이어 같은 존재일 테다. 누군가가 펑크를 내서 오지 못하면, 대타로 올 수 있는 필요에 의한 일방적인 관계니까.     


 아무튼, 과집을 통해 포장대에서 다시 올려 보내진 울샴푸를 메인에 계속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로케이션에 재 진열해야 했다. 노란 조끼의 관리자가 세제류라 무거우니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실수한 것이니 때문에 직접 해결해놓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기는 싫었으니까.      


 빈 로케이션을 찾아서 겨우 겨우 울샴푸 박스들을 끙끙거리며 옮겨놓고 나니 그제야 조금 안도가 되었다. 오늘의 일을 교훈 삼아서 앞으로 더 정신 차리고 스캐닝을 할 때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퇴근 무렵에 캡틴이 이름과 바코드번호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울샴푸 과집건을 공개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해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한 번의 실수에도 죽일 듯이 잡아먹으려고 드는구나. 퇴근길 통근버스에서 차고 있던 만보계를 풀자 24,026 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만보계에 찍힌 숫자만큼이나 고단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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