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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ug 23. 2023

2022. 10. 04

1부 19-3화

 

 일을 한지 두 시간 쯤 되었을까. 눈앞이 일시적으로 하얘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 같이 분류를 하던 분에게 물 좀 마셔도 되냐고 물었더니, 천천히 편히 마시라고 했다. 전혀 천천히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목만 축이는 상태로 마셨지만, 물을 마시고 나니 상태가 그나마 조금은 나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상태였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물건이 많이 쌓일 때마다 잠깐씩 와서 분류를 도와주던 캡틴이 물었다.     


“석류씨, 분류 처음 해보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제 얼굴이 괜찮아 보일까요? 죽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죽을 맛이었다. 함께 통근 버스를 타는 이도, 분류를 해보니 어떠냐고 묻길래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대답도 안 나와서 힘없이 웃었더니 내 얼굴이 오늘의 고단함을 다 보여준다고 말했다.     


 컨베이어 벨트가 내 몸 위를 돌면서 구석구석 다 때리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분류할 때 무겁게 왜 안전화를 신나 싶었는데, 오늘 제대로 깨달았다.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니까 몸에 맞거나 바닥에 떨어지는 게 부지기수인데, 중량물이 발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다치게 되니까.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보니 다리가 온통 멍투성이었다. 분류할 때는 숨 고를 틈도 없이 바빠서 물건에 맞아도 아픈 줄도 몰랐는데, 눈으로 확인하니 급격하게 멍든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허리, 어깨, 무릎, 다리, 발, 팔, 손목. 그 어느 곳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이 골고루 온몸이 아팠다. 쉬는 시간이 결코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긴장이 잠시라도 풀리니 온몸의 근육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몸을 갈아서 한 만큼, 일을 못했다면 더 속상했을 테지만 다행인 건 처음으로 풀타임 분류를 뛰었는데 함께 한 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았다는 거다. 다들 손이 어쩜 그리 빠르냐고 처음 하는 게 아닌 거 같다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서 뭉클했다.


 뭉클함과 별개로 분류할 때 물건이 계속 쌓이는 걸 보며 자괴감이 들었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분류할 때 물건이 쌓이는 일은 부지기수고 모두가 그걸 보면서 매일 현타가 온다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싶었으니까.     


 분류를 하는 것도 고된데 하필이면 30분 연장까지 있어서, 기절 직전의 모습으로 통근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정말 단기직으로 나와서 할 수 있는 모든 공정을 다 해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기는 잘 안 시킨다는 분류까지 했으니까. 진열, 집품, 포장, 분류까지 다 경험해보니까 고객이 물건을 주문하면 배송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가게 되는지 물류센터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됐다.    

 

 오늘은 분류를 해서 그런지 움직임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만보계의 숫자는 5,115보였지만 몸은 더 힘들었다. 앞으로도 분류를 하게 되는 순간이 꽤나 있을 텐데, 잘 버틸 수 있을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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