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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ug 27. 2023

2022. 10. 21

1부 21화

 

 집품용 PDA 어플의 인터페이스가 바뀌었다. 바뀐 인터페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의 버전보다 더 불편해졌다. 글자도 훨씬 작고, 긴급 피킹도 일반 피킹과 별반 차이가 없이 떠서 급한 마감 건인지 티도 잘 안 나고, 얼마나 피킹을 했는지 무게도 바로 나오지 않아서 화면 상단에 표시된 토트 무늬를 눌러야만 몇 퍼센트가 피킹이 되었고 무게가 얼마나 실렸는지가 그제야 나왔다. 다음에 집품을 해야 할 물건의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불편했다.     


 어제 퇴근 전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캡틴이 바뀐 인터페이스에 대해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의견을 내달라고 해서 내가 느꼈던 부분을 솔직하게 다 전달했는데, 과연 제대로 반영이 될지는 모르겠다.


*     


 한창 집품을 하고 있는데, 7시 50분쯤에 갑자기 화재 경보벨이 울려서 놀랐는데 다행히도 소방 훈련이었다. 전 층의 모든 사람들이 1층의 흡연장 근처의 주차장 쪽에 모였는데, 싱겁게도 인원체크만 하고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움직인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빠르게 소방 훈련이 끝나버려서 정말 무늬뿐인 소방 훈련이구나 싶었다. 아니, 훈련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인원체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 와중에 실제 불이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불이 난다면 센터 건물은 순식간에 전소되고 말 테니까. 불이 나기 좋은 재질에다가, 박스도 많아서 불씨가 옮겨 붙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으니까. 몇 년 전 화재로 인해 다른 지역의 물류센터가 통째로 전소된 걸 떠올리니 등골이 서늘했다.   

  

 인원체크를 마치고 다시 3층으로 돌아와 집품을 하다가 하루가 끝났다. 오늘은 처음으로 4일 연속 출근을 했다. 3일 연속으로 하는 게 내 체력의 한계일 줄 알았는데 이제는 4일까지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온몸이 곱절로 아프고 뻐근하긴 하지만.     


 처음에는 하루도 힘들게 버텼던 내가 4일을 버티게 되다니. 더 시간이 흐르면 5일 연속 일하게 되는 날도 올까. 아마 그때가 온다면 또다시 새롭게 한계를 깨부수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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