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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Oct 07. 2023

음식백화점

기억의 단상 2020년 9월호

 

 대학 시절, 내 주특기는 동아리방에서 낮잠 자기였다. 주특기가 낮잠 자기 라니까 상당히 없어 보이는 느낌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틈만 나면 동아리방에 가서 누웠다. 동아리방에는 눕기 좋게 베개와 이불과 전기장판이 갖춰져 있었다. 여름을 대비한 선풍기도 있었고.      


 원래 취지는 밤샘 작업을 하다가 피곤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걸 테지만, 나는 그것을 사뿐히 배반하고 공강 시간 이면 언제나 동아리방에 누웠다. 그래서인지 몇몇 후배들은 나를 보고 동아리방 지박령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언제 문을 열고 들어와도 내가 항상 붙박이장처럼 누워있었으니까. 매일 반쯤 감긴 눈으로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나를 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뫼바우 먹자.”였다.      


*     


 뫼바우는 우리 동아리방의 1등 배달 음식이었다. 나는 이곳의 불고기 백반을 엄청 좋아했다. 뫼바우는 재빠르게 항상 불고기 백반을 학생회관으로 실어 날랐는데, 그중 우리 동아리방의 배달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학생회관에서 나오는 뫼바우 아저씨를 마주치면, ‘아 우리 동아리방에 누군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2인분을 시키면 혜자 하게 밥을 한 공기 더 가져다주는 인심까지 갖춘 뫼바우를 나는 사랑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동아리방에 누워있는 나를 후배가 깨웠다. 뫼바우, 직접 가서 먹으면 밥이 무한 리필이래요. 가볼까요?라고. 솔깃했다. 그 당시 무한리필은 마법의 단어와도 같아서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곧장 신나는 발걸음으로 뫼바우로 향했다.     


*     


 뫼바우가 위치한 건물에는 ‘음식백화점’이라는 이름의 빛바랜 간판이 달려 있었다. 음식백화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건물에 진입하자 뫼바우와 다른 한 곳의 가게 외에는 전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푸트코트처럼 구성된 건물에는 군데군데 보이는 빈 주방과 테이블들이 예전에는 이곳에 많은 가게가 있었노라 알리고 있었다. 마치 지나간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후배와 함께 뫼바우 쪽 테이블에 앉았다.

     

 뫼바우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와서 먹는 건 처음이었고, 우리의 방문으로 인해 오늘은 학생회관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한 번은 줄었으니 조금은 편해졌을 것이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선풍기를 틀었다. 업소용 대형 선풍기가 달달 거리는 소음을 내며 바람을 쏟아냈다. 바람을 맞으며, 불고기 백반을 시켰다.     


 뫼바우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한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불고기 백반을 만들어 낸 후 우리 테이블에 불고기가 가득 담긴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밥은 저기에 많이 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퍼서 먹으라고 말하며, 선풍기처럼 커다란 대형 밥솥을 가리켰다. 후배와 나는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날, 우리는 무한리필이라는 취지에 맞게 열심히 밥을 퍼먹었다. 음식백화점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가게에서 먹는 불고기 백반의 맛은 동아리방에서 시켜 먹을 때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이 순간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는 것.      


 이 글을 쓰는 지금 달달거리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번 스러져가는 음식백화점에 가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모두가 철수한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진지를 지키는 장수처럼, 음식백화점을 지키고 있던 뫼바우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오늘 저녁은 불고기 백반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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