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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Oct 14. 2023

흐트러진 구름

기억의 단상 2020년 9월호

 

 몇 주째 비가 내렸다. 이젠 그만 내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야속하게도 하늘은 계속 비를 쏟아내고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노곤노곤한 상태로 나는 가만히 방바닥에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계속 듣고 있다 보니 빗소리가 밖이 아닌 내 귓속에서 나는 느낌이다. 비가 공중에서 바닥으로 수직낙하 하듯이 내 몸도 점점 더 바닥과 더 달라붙는다. 이러다가 바닥과 아예 하나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며 그날을 회상한다. 비 오는 날의 시네마테크를.     


*     


 오늘처럼 그날도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방바닥이 아닌 이불 속이었다는 것. 이불속에서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으로 시네마테크의 상영일정을 살폈다.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이 한창 상영 중이다. 갈까 말까. 평소에 시네마테크 나들이를 정말 좋아하고, 그곳에서 보는 고전영화를 사랑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영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러나 날씨와는 상관없이 막상 테크에 가서 영화를 보면 더없이 행복해질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누워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심을 굳혔다. 그래, 가야겠다. 영화 제목이랑 오늘의 날씨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어서 테크에 가기로 했다.    

 

*     


 비가 와서일까. 테크의 로비가 무척이나 한산하다. 오늘 내가 볼 작품은 <흐트러진 구름>.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유작이란다. 과연 어떤 작품일까. 궁금증을 안고, 로비에 앉아 상영을 기다리는데 아는 얼굴들을 만났다. 반가움에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들도 나루세 감독의 유작이 궁금했나 보다. 아니면, 나처럼 제목에 이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좋지 않은 날씨에도 영화를 보러 온 그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     


 <흐트러진 구름>은 비 오는 날의 습도 같은 영화였다. 습도처럼 내게 착착 달라붙었다. 이 작품 대체 뭘까. 관람하고 있던 순간보다 관람하고 나온 후에 더 강한 여운으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여전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약간은 멍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눈앞에 영화 속 장면들이 어른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울면서 생각했다. 이 작품을 비 오는 날 보아서 다행이라고. 맑은 날 보았다면 이만큼 아릿하진 않았을 테니까. 영화 속의 우산 아래 유미코와 미지마를 생각하며 나는 우산 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내 마음도 한껏 흐트러진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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