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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Oct 18. 2023

2023. 01. 29

1부 29화

 

 오늘은 3.5 오토백으로 시작해서, 9시 2분부터 10분 정도 존배치를 하고 그 후에는 일반 오토백 집품을 했다. 거기까지는 딱 좋았다.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캡틴이 나를 호출했다.     


“석류님, 컨디션이 안 좋으세요? 새로 온 단기보다 느려요.”     


 새로 온 단기보다 느리다는 말을 듣자 당황스러움이 휘몰아쳤다. 이곳의 속도 측정 시스템은 가장 빠른 사람을 기준점으로 잡고 하기 때문에, 아마도 오늘 집품 속도가 가장 빠른 사람이 새로 온 단기 중에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평소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을 텐데. 그 사람의 속도가 얼마나 빠르단 말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느리다고 말해 놓고 그 뒤에 자주 나오는데 왜 계약직은 하지 않냐고 물어서 황당했다. 뭔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황당한 마음을 누르고 집품을 이어가고 있는데, 12시쯤에 1층에서 호출이 들어왔다. 분류를 하라는 호출이었다. 한 시간 정도 분류를 하다가 쏟아지는 간선이 끝나고 나자 분류에서 나와서 파지를 정리하라고 했다.

     

 1층 한 구석에 무더기처럼 쌓인 파지를 혼자 정리할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는데, 다행히도 한 명이 더 투입되었다. 함께 파지를 정리하게 된 분은 나처럼 분류에 중간 투입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계약직이었는데, 이제 이곳에서 햇수로 2년 차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1년을 버티기도 힘든 물류센터에서 긴 시간을 버텼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말은 그만큼 결근 없이 근무를 했다는 뜻이기에 더 존경스러웠다.     


 한창 같이 파지를 정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PDA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집품을 할 때 사용하는 PDA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수는 있어도 외부로 사진을 송출할 수는 없다. 센터 자체의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외부의 통신망과 접속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와 연결이 가능하면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실태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테니,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 때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누르는 어플에 대한 이야기도 그분에게 들을 수 있었는데, 퇴근 시에 1분이라도 체크아웃을 먼저 누르면 근무 수당이 깎여서 들어온다고 했다. 언제 1분 먼저 체크아웃을 눌렀더니 190원이 깎인 채 돈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정말 지독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분 먼저 퇴근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돈도 칼같이 깎을 거라면, 가끔 식사시간이 시작된 후 식사하러 이동하라고 안내 방송을 할 때도 식사 시간을 그만큼 보장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늦게 방송을 해도 똑같이 식사 시간을 마무리 지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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