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류 Nov 01. 2023

2023. 02. 20

1부 33화

 

 왠지 오늘은 분류에 불려 갈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출석체크 줄을 서 있을 때 4층에 갈 사람들 나오라길래 뛰듯이 후다닥 나갔는데, 애석하게도 4층에서의 시간은 짧고 굵게 끝나고 분류에 가야만 했다.  

   

 긴급 피킹건을 정신없이 쳐내고 난 후, 9시 30분쯤 PDA에 메인으로 오라는 호출이 들어왔길래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4층에서 온종일 집품하며 하루를 마감하기에는 글렀구나라는 걸.     


 메인에 갔더니 캡틴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1층에 가라고 손짓했다. 포장에 가게 되면, 포장이라고 말해주는데 손짓만 한 걸 보니 백 프로 분류였다. 역시나 1층에 내려가니 분류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체념한 표정으로 안전화와 안전장갑을 착용하고 나니 B열 컨베이어 벨트 끝에 투입됐다. 투입되자마자 카오스란 여기를 뜻하는 단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 앞에서 물건을 뒤집어서 송장이 잘 보이게 해야 하는 사람이 거의 뒤집지를 못하고 있어서 그 뒤에서 간선을 빼야 하는 사람이 대신 뒤집고 있었다. 그래서 미처 빼지 못한 간선들이 컨베이어 끝에 있는 나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지역별로 분류해서 뒤의 분류대로 던져주고, S김도 빼야 하는데 동시에 세 가지를 하기엔 무리여서 S김은 어쩔 수 없이 뒤에서 빼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내가 대신 간선을 빼야만 했으니까. 맨 앞에서 뒤집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다.     


*     


 기진맥진한 상태로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오늘의 메인 반찬이었던 마파두부가 다 떨어져서 먹을만한 반찬이 없어서 김가루에 밥을 비벼먹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분류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서 힘든데, 반찬마저도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난 후에는 B열이 아닌 A열 컨베이어 쪽으로 바꾸어 투입되었다. 아, 진짜 오늘 무슨 날인가. S김이 미친 듯이 몰려 내려왔다.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양으로. 그래서 평소라면 S김이 마감될 시간인데도 마감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마감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B열에 비해서 A열에는 호흡을 꽤 맞춰본 분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뒤집기도, 간선도 잘 흘러가서 나는 충실히 내가 하고 있는 포지션에만 집중하면 됐다.     


*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간선과 S김 모두 마감이 끝났기에 다시 본래의 B열로 돌아가야 했다. 보통 분류하면 같은 라인에서 시작과 끝을 보는데, 오늘은 양쪽 다 오가느라 진이 쭉 빠졌다. 지역별로 분류해서 물건을 던져주는데, 퇴근 무렵에는 너무 힘들어서 손에 힘이 안 들어가더라.     


 퇴근 때 관리자가 이야기하기를 내가 분류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했다. 손도 빠르고 몸놀림도 가볍다고. 칭찬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분류장에서의 칭찬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분류장에 호출될 일이 더 많아진다는 걸 뜻하니까.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많이 분류장에 호출될까. 까마득한 앞날이 나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3. 02.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