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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Nov 05. 2023

2023. 02. 24

1부 34화

 

 오늘은 3층에서 오토백으로 스타트를 끊고, 내내 오토백으로 집품을 이어가다가 1시 4분부터 빈토트를 보충하는 일을 했다. 토트 보충은 물건을 집품하기 위해서 토트를 사용하느라 비어있는 자리에 토트를 채워 넣는 작업인데, 이미 여러 번 해봤지만 할 때마다 충분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싱글 카트에 12개 단위로 3세트가 올려져 있는 토트들을 한 세트씩 내릴 때마다 토트에 발을 찧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싱글 카트에 올려져 있는 토트는 내 키보다 높은지라, 카트를 끌고 다닐 때와 내릴 때마다 시야가 가려져서 양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지 신경을 많이 써야만 했다. 자칫 부주의하면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키보다 높이 올려져 있는지라 토트를 내릴 때마다 팔도 아팠다. 토트가 무게감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개당 2.5kg라서 12개면 30kg다. 그러니 팔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퇴근 직전까지 토트 보충을 계속해야 하나 싶었는데, 2시 20분부터는 청소를 하라고 해서 열심히 드넓은 A존과 B존을 돌면서 굴러다니는 먼지와 파지 조각들을 쓸었다. 혼자서 청소를 하라고 했으면 퇴근 때까지 다 하긴 무리였을 테지만, 다행히도 세 명의 사람이 더 있어서 한시름 놨다. 각자 구역을 나누어서 청소할 수 있으니까.     


*      


 깨알같이 소방 훈련도 있었다. 8시부터 시작된 소방훈련은 싱겁게도 1층 야외에 모여 인원체크만 하고 끝이 났다. 10분도 채 진행되지 않고 끝나버린 소방훈련을 보고, 이게 정말 소방훈련이라고 할 수 있나 싶었다. 왕복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간만 해도 거의 10분에 육박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간이랑 별 차이 없이 끝이 나다니. 졸지에 왕복으로 24층을 오르내리느라 다리만 아팠다.     


 그러나, 다리가 아픈 와중에도 이게 훈련이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불이 난다면 이렇게 대피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다.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해서 소방서에 신고도 할 수 없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연락도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인데. 들불처럼 번지는 불을 피하는 게 쉽지 않겠지.    

  

 게다가 박스를 비롯해 물건들도 불에 잘 타는 소재가 많아서 센터 전체가 전소되는 건 시간문제 일 테고. 문득 덕평에서 났던 화재로 그곳의 물류센터가 통째로 전소되었다는 몇 년 전의 뉴스가 떠올라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언제나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다치고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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