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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Nov 08. 2023

2023. 03. 01

1부 35-1화

 

 어김없이 공포의 정기배송일은 돌아왔다. 엄청난 물량에 압사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하루 종일 분류를 했다. 이번 주에 한 번도 분류를 가지 않았던 터라, 왠지 오늘은 분류에 가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 이런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캡틴이 나를 보더니 “석류님, 오랜만에 분류 가실까요?”라고 말했다. 지난주에도 분류를 했으니 전혀 오랜만은 아니었지만, 가자는 그 말에는 권유가 아닌 가야 한다는 뉘앙스가 명확히 담겨 있었던지라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분류장으로 내려갔다.     


 정기 배송일답게 시작부터 미친 듯이 물건들이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를 빼곡하게 메우며 내려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나는 컨베이어 끝에 서서 지역별로 분류해서 던져주면서, S김을 뺐다. S김을 빼면서 간선에서 놓쳐 버려서 빼지 못한 것들도 함께 빼고 있었는데 갑자기 캡틴이 2차 분류 자리에 있는 사람과 자리를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자리를 바꿨는데, 도대체 왜 자리를 바꾸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일이 엉망으로 돌아갔다. 내 자리에 들어간 사람이 S김도, 간선도 제대로 빼내지 못해서 내가 2차 분류하는 쪽으로 물건들이 죄다 밀려왔으니까. 지역별로 분류 토트에 물건을 담으면서, 간선과 S김도 분류해서 빼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간선만 분류해서 담은 토트를 옮기다가 바닥에 접혀져 있던 토트 세 개를 발견하지 못하고 걸려서 무릎을 세게 부딪힌 것. 무릎을 부딪히면서 들고 있던 토트에 팔을 부딪혀서 팔꿈치 윗부분을 다쳤다. 바닥에 있던 토트에 부딪힌 무릎 쪽도 다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넘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넘어졌더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부딪힌 부분의 피부가 다 까져서 피가 났지만, 눈앞에 계속 물건이 쌓이고 있어서 도저히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암담했다. 쌓인 물건을 보고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메인으로 갔더니 내 팔과 다리를 보고 놀란 기색이었다.     


 임시방편으로 면봉에 마데카솔을 묻히고, 대일밴드를 받아서 화장실로 가서 핸드 타월에 물을 적셔서 상처가 난 부분을 먼저 닦아냈다. 때마침 화장실이 급해서 온 분이 내 모습을 보고는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걸 도와주었는데,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손이 없어서 한 손으로 소독을 하고 밴드까지 떼서 붙여야 해서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었던지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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