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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Nov 12. 2023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기억의 단상 2020년 10월호

 

 언제 누군가와 대화를 하던 때, 내게 꼭 만나고 싶은 한 명의 작가가 있다면 누가 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아니 에르노라고 답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국 작가가 아니기에 만날 기회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아서 더 만나고 싶었다.      


 그 물음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맴돌았고, 비록 프랑스어를 못하지만 번역기가 있기에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아니 에르노에게 메일을 보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듯이, 구글을 뒤졌고 한참 후에 아니 에르노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냈다. 편지 형식으로 메시지를 남기면 아니 에르노에게 전달되는 사이트였다.     


*     


 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기뻤지만, 과연 여기에 글을 남긴다고 해서 아니 에르노가 읽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을 품으면서 사이트를 훑어보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아니 에르노에게 메시지를 남긴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니 에르노에게 글을 남기니 어쩌면 내 글도 전달될지도 모른다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니 에르노에게 편지를 쓰고 번역기를 돌렸다.      


 번역기를 돌린 후에 검수도 할 겸 다시 번역기를 한국어로 돌려 확인했는데, 이럴 수가. 영웅이라는 단어를 써놓은 부분이 바보로 되어있었다. 확인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좋아하는 작가를 한 순간에 디스 할 뻔했다. 아찔해져서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다시 번역기를 또 돌려보았더니, 이번에는 다행히도 제대로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는 사이트에 글을 등록했다.      


 사이트에 글을 등록하면서 본인의 메일주소를 쓰는 란이 있었는데, 아주 잘하면 아니 에르노가 읽는 것뿐만 아니라 답장을 보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감에 부푸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아니 에르노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답장을 받게 된다면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을 꼭 만나고 싶다고. 당신의 글은 나를 슬럼프의 바다에서 건져낸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오늘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녀의 메일을 기다리며, 메일함을 끝없이 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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