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0년 10월호
어스름한 새벽녘 잠에서 깼다. 습한 날씨 때문에 안 그래도 얕게 자는데, 더 수면이 얕아졌다. 방안을 감도는 여름 향기가 나를 새벽의 루앙프라방으로 불렀다. 새벽의 루앙프라방으로 그렇게 나는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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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땃새폭포와 탁발이었다. 땃새는 아쉽게도 물이 많지가 않다고 해서, 계획에서 빼버렸지만 탁발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루앙에서 탁발은 빠질 수 없는 하이라이트였기에 무조건 해야 했다. 이른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사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늦잠을 자는 순간 탁발의 기회가 날아간다는 생각에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탁발을 함께 가기로 했던 홍과 강은 인기척이 없다. 아직도 자고 있나 보다. 나는 옆방의 문을 두드려 두 사람을 깨웠다. 강은 너무 피곤해서 내일로 탁발을 미루겠다며, 나와 홍만 가라고 했다. 그래서 홍과 함께 탁발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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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과 숙소를 나서 탁발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전부리와 바나나를 든 라오스 아주머니가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바구니를 내밀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우리가 바가지를 당할 거라는 것을. 그러나 어리숙한 여행자인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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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이 시작되고 맨발의 스님들이 끝없이 바구니를 들고 일렬로 걸으며 우리의 앞을 지나갔다. 스님이 지나갈 때마다 주전부리와 과일을 꺼내어 스님이 앞에 메고 있던 커다란 바구니에 하나씩 넣었다. 바구니 속 주전부리가 줄어들 때마다 마치 무한리필 고깃집이라도 온 것 마냥 라오스 아주머니는 계속 새 주전부리가 든 바구니로 바꾸어주었다.
이제 그만 바꿔줘도 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탁발이 끝날 때까지 계속 줘야 하는 줄 알고 우리는 스님들의 행렬이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의 손을 쳐내지 못했다. 그 결과로 일인당 7만 5천 낍의 거금을 지출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낍을 요구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마주하자 졸음이 확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7만 5천 낍이면 비어라오가 대체 몇 병이던가. 홍과 나는 마치 모든 걸 다 털린 듯한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상태로 앉아있었고, 다른 탁발 지점에서 탁발을 하고 온 이들이 우리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우리는 다 털렸다고 말했고, 그들은 우리가 도합 15만 낍의 거금을 들여 탁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쓰러움이 섞인 눈빛을 지었다. 낍을 잔뜩 챙기고는 유유히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우리 앞을 지나가던 라오스 아주머니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아주머니는 그날 며칠치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날 탁발 때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엄청나게 빠른 손으로 바구니가 빌 때마다 꽉 찬 바구니로 바꾸어주던 아주머니의 손이 선명하다. 그날의 바가지 이후 다시 한 탁발에서 우리는 미리 전날 구입한 주전부리를 사서 임했고, 더 이상 탁발 바가지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다 털렸다는 생각에 너무 허탈했지만, 지나고 난 뒤엔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천천히 해가 뜨던 루앙프라방의 골목길에서 만났던 스님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여전히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새벽을 열며 그 길을 걷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