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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Dec 24. 2023

혜언니 上

기억의 단상 2020년 10월호

 

 혜언니를 처음 만났던 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였다. 그날 나는 <샬라!>를 보았고, 혜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샬라!>를 보았다. <샬라!>가 상영된 하늘연극장 앞에서 내가 친근하게 이태리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혜언니는 지켜보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원래부터 그들과 알던 사이냐고. 나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혜언니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곧장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마지막 영화 상영이 10시쯤에 끝나니,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     


 마지막 타임의 영화를 보고 나와 혜언니와 나는 해운대에 위치한 어느 일식당에 마주 앉았다. 오늘 보았던 <샬라!>를 비롯해 각자 보았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나 혼자였으면 아무리 좋은 작품을 보았어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을 텐데, 혜언니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언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혼자였으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하고도 나누지 못하고 돌아갔을 거라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는 지속되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다음날의 일정을 물었다. 당시 나는 하루에 4편씩 영화를 매일 보았던지라 스케줄이 빡빡했고, 혜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전주에서 온 혜언니는 영화제 기간 동안 나 못지않게 많은 작품들을 보았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영화가 끝난 후 다음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짧은 텀과 오늘처럼 마지막 상영까지 다 끝난 후뿐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기에 혜언니와 나는 다음날도 영화가 다 끝난 후 만나기로 했다.     


*     


 영화가 다 끝나고 어스름한 달빛이 아름다운 밤, 어제처럼 해운대에서 혜언니와 다시 만났다. 혜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오늘 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빨리 꺼내고 싶은 눈치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치킨집에 앉아 치맥을 하며, 혜언니가 오늘 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본 작품이 너무 좋았는지, 이야기를 하는 혜언니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나도 오늘 본 작품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했다. 혜언니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가방에서 영화제 시간표가 적힌 프로그램북을 꺼내 들더니 그 영화가 어느 타임에 상영이 남아 있는지를 체크했다. 미리 한 번에 다 볼 영화를 결정하고 발권까지 끝마친 나와 달리, 혜언니는 매일매일 조금은 즉흥적인 시간표로 영화를 보았다.     

 

 혜언니는 자신도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어 졌다며, 내가 이렇게 극찬을 할 정도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며 보고 난 후에 다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혜언니는 숙소로 이동하고, 나는 집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내일 볼 영화도 기대되지만, 내일의 혜언니와의 만남도 기대가 됐다. 내일의 우리는 어떤 작품을 사이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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