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0년 10월호
어릴 적 외동이었던 나는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스케치북에 그림을 자주 그리곤 했다. 새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새에 졸음이 몰려와 크레파스를 쥐고 잠들기가 일쑤였다.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면 크레파스는 내 손이 아닌 크레파스 통에 들어 가있고, 크레파스가 묻은 손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말끔한 상태로 변해있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마법같이 느껴졌다.
항상 크레파스가 다음날이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손에 묻은 크레파스 흔적도 엄마가 다 닦아주었기 때문임을 어린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자주 마법 같은 기분을 느끼려 일부러 크레파스를 쥐고 잠든 적도 많았다. 나는 그 마법을 내가 잠을 자면서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잠든 동안 마법을 부려 다시 통 안에 크레파스를 넣어 놓는 것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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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크레파스를 쥐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따라 잠이 얕게 들었는지 엄마가 내 손을 펴서 크레파스를 빼내는 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내가 깨기라도 할까 봐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엄마는 조심조심 크레파스를 빼내고 크레파스가 엉망으로 묻은 내 손을 물티슈로 천천히 닦아냈다. 그제야 나는 이제까지 내가 부린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아닌 엄마가 부린 마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부린 마법이 아닌 엄마의 마법이지만, 마치 눈을 떠버리면 마법의 기운이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새라 나는 눈을 뜨지 않고 계속 잠든 척을 했고, 그러다가 진짜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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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엄마는 어린 내 손을 닦으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그 시절 엄마와 내가 살던 집은 어느 주택에 위치한 반지하였다. 지상보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의 특성상 비가 오는 날은 정말 습하고 최악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빗물이 천장에서 새어 내 스케치북보다 커다란 양동이를 빗물을 받기 위해 방 곳곳에 놓았다.
뚝뚝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방울씩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내 모습이 선명하다. 비록 빗물은 샐지라도, 나는 그곳에 사는 게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볼일을 보기 위해서는 집밖으로 나가 세면대도 없는 좌변기만 설치된 푸세식에 가까운 화장실을 써야 했는데도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도 엄마는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다. 빚쟁이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찾으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우리 집 문을 강하게 두들겨대도 엄마는 고사리 같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꿋꿋이 그 시간을 버텨냈다. 어쩌면 그 시절 엄마가 내게 부린 가장 큰 마법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때 불어를 배웠던 엄마는 매일 오~ 샹젤리제와 쁘띠 쁘띠 피노키오라는 가사로 유명한 다니엘 비달의 노래들이 담긴 샹송 테이프를 넣고 카세트의 재생 버튼을 눌렀고, 나는 그런 엄마 덕분에 반지하의 어둠 속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반지하에서도 낭만적일 수 있다는 걸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환기를 해도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것 같은 그 공간 속에서 마치 영화처럼 울려 퍼지던 샹송을 듣던 시간은 내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피노키오를 들으며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소녀 같은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샹송 테이프 속지에 나와 있는 신비한 파란 눈의 다니엘 비달보다 엄마에게 그 노래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엄마는 다니엘 비달의 노래보다 영탁의 노래를 더 자주 듣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들었던 그녀의 노래를 반지하가 아닌 프랑스를 여행하며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여전히 엄마는 불어를 잊지 않고 기억하니까. 아직 가보지 못한 파리의 거리를 엄마와 거닐며 피노키오를 흥얼거리는 상상을 하며 나는 유튜브에서 다니엘 비달의 노래를 카세트를 틀 듯 재생해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