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문수암 템플스테이
바로 방으로 들어가기 아쉬워서 경내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산의 하늘은 별이 또렷하게 잘 보였다. 경내에 서서 별자리 어플을 켜서 밤하늘에 대고 별자리를 관찰하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곁에서 신기해하며 함께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어두운 곳으로 가서 별을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는 경내에서 가장 어두워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별을 구경했다.
누군가와 함께 별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항상 거의 혼자서 별을 구경하곤 했는데. 퇴근길에 통근버스에서 내려 홀로 밤하늘을 구경하고 들어가던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지금의 이 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더 오래 별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밤의 산은 너무 추웠기에 몸을 녹이기 위해 쉼터에서 차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소등 시간까지는 아직 사십 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간단히 먹을 주전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후다닥 방에 가서 맛밤과 젤리를 챙겨 왔다. 맛밤도 젤리도 함께 나눠먹으니 더 맛있는 느낌이었다. 역시 음식은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다. 따뜻하게 속을 데우는 차와 이런저런 도란도란한 이야기가 오가는 첫날의 시간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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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자리에 누웠으나 생각처럼 빨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 시간 남짓 자고, 세시쯤 잠에서 깨었다. 극도로 피곤하면 잠이 오지 않는데 지금의 내 상태가 딱 그랬다. 밤을 새우고 온 데다가 문수암까지 걸어서 올라왔고, 108배까지 했으니 기절해서 잠드는 게 맞는 건데 그렇지 않은 건 불면증이 심해서일까. 그래도 길지 않은 시간을 잔 것 치고는 생각보다 개운했다. 명상 시간에 짧지만 숙면을 취한 덕일 수도 있고, 맑은 공기 속에서 잠을 청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네 시가 넘은 시각, 방에서 나갈 준비를 천천히 했다. 새벽 별을 보고 싶었다. 새벽 예불도 드리고 싶었고. 방에서 나오자 찬 공기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온몸으로 퍼졌다. 새벽의 산은 너무 추웠지만, 밝게 빛나는 별들의 향연을 보자 이 정도 추위는 감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선암사에서 새벽 예불을 드리기 전에 같이 템플스테이를 했던 겸 언니와 새벽을 빛내는 별들을 바라보았는데. 지금은 오롯이 혼자서 하늘을 보고 있다. 속세로 내려가게 되면 겸 언니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야겠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산사에서의 하늘을 떠올리면서.
얼마나 별구경을 했을까. 기영스님이 나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경내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랐던 풍경이라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을 밝히는 단 하나의 소리, 목탁. 청아하게 새벽을 머금은 목탁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지자 어둠이 다 걷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찰의 아침은 이제 시작되었다.
목탁을 두드리며 걷는 스님의 뒤를 따라서 걷다가 대웅전으로 들어가니 본격적인 새벽 예불이 시작되었다. 새벽 예불의 장점이라면 이른 시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다는 거였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새벽 예불을 통해 나는 조금씩 번뇌를 내려놓았다. 속세에서의 모든 번뇌를 한 번에 잊을 수는 없겠지만,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건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의 새벽 예불도 기대가 됐다. 다른 건 몰라도 새벽 예불만큼은 전부 참석할 계획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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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불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훈훈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꽤 긴 시간 밖에서 찬 공기와 함께 했던지라 약간은 몸이 얼어있었는데, 이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읽던 <라스트 러브>를 집어 들어 마저 읽기 시작했다. 책을 조금 읽다가 다시 나가면 딱이었다. 아침 공양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아침 공양은 음식의 가짓수는 적었지만, 매력적이었다. 직접 만든 수제 바질페스토 잼과 아로니아 잼, 식빵, 토마토와 오이, 과일, 감소스로 버무려진 샐러드, 호박죽까지. 테이블에는 인원수에 맞게 템플 보살님이 직접 내린 커피가 담겨 있었는데 절에서 이렇게 서양식의 아침식사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가장 동양적인 공간에서 먹는 서양식이라니.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을까.
저녁 공양에 비해 가짓수는 단출했지만 맛은 전혀 단출하지 않았다. 직접 만든 잼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고, 빵에 잼을 바르고 야채와 과일을 넣어먹으니 서브웨이 부럽지 않았다. 샐러드는 나를 흠뻑 매료시켰다.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공양을 마친 후 설거지를 하면서 스님에게 여쭈어보니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며 레시피를 흔쾌히 알려주셨는데, 다시마 식초를 같이 넣었다는 것만 기억이 나고 다른 건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기억이 난다고 하더라도 귀찮음이 강한 내가 만들어서 먹는 것보다 다시 문수암에 와서 먹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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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양이 끝난 후, 각자 쉬는 시간을 가지고 8시에 경내에 모이기로 했다. 모여서 산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8시가 되자 사람들이 경내로 모여들었고, 템플 보살님이 산행 전에 귀여운 그림 지도를 보여주며 산행 코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을 마친 후에는 대웅전 앞에 있는 탑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보통의 탑 안에는 경전이 주로 들어있는데, 문수암의 탑 안에는 ‘무구다라니경전’이 들어있다고 했다.
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본격적으로 산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정상에서 마시라며 템플 보살님이 차가 든 보온병과 휴대용 잔을 가방 두 개에 나눠 준비해 주셨다. 가방 하나는 내가 멜까 했는데, 다른 분이 멘다고 하셔서 고개를 끄덕이곤 산으로 출발했다.
햇빛을 막아 줄 밀짚모자를 쓰고, 법복을 입은 채 산으로 걸으니 길을 떠나는 나그네라도 된 느낌이었다. 아침 산행은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맑은 공기를 폐 가득 들이마시니 도심의 매연에 찌든 폐가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상에 도착해 마시는 따뜻한 차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오르는 건 수월하게 올랐지만, 전날 밤샘을 하고 도보로 문수암에 올라온 데다가 108배까지 해서 그런지 내려가는 길에는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얼른 내려가서 방에서 잠시라도 쉬고 싶어서 빠르게 내려갔더니, 사람들은 한참 멀리 뒤에 있었다. 어차피 사람들과는 점심 공양 때 다시 만날 테니 먼저 내려간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문수암으로 돌아와 푹 퍼진 라면 면발처럼 방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