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문수암 템플스테이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점심 공양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이었다. 마치 오리 훈제의 맛이 나는 고기와 무쌈으로 만든 월남쌈, 달걀 야채 김밥, 피자처럼 예쁘게 자른 파전, 끼니마다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샐러드 등등 맛있고 아름다운 음식이 가득했다.
이번 공양도 두 접시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산행을 해서 그런지 입맛이 더 돌았고, 역시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는 이번 공양에도 두 접시를 먹었다. 작은 체구지만 매 공양마다 두 접시씩 비워내는 나를 보며 같이 템플스테이를 하던 사람들이 너무 복스럽게 맛있게 잘 먹는다며 흐뭇해했다. 속세에서는 이렇게 과식하지 않는데.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알아서 조절하는데 반해 이곳에서의 식사는 달랐다. 기분 나쁘지 않은 포만감이 가득했기에, 많이 먹어도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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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공양이 끝나고 난 후, 쉼터에서 기영스님이 하산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를 내려주었다. 나는 두 접시째 먹고 가느라 제일 늦게 등장했다. 내가 들어서니 다들 이제야 왔다며 반겨주어서 순간 머쓱해졌지만, “주인공은 원래 늦게 등장하는 법이죠.”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커피, 작설차, 국화차 중에 어느 차로 드시겠어요?”
“음... 스님이 주시고 싶으신 걸로 주세요.”
내 대답에 다들 동시에 입을 모아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들 딱딱 원하는 걸 골랐다는데, 스님에게 선택권을 준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했다. 내가 직접 고를 수도 있지만, 스님이 어느 걸 골라서 만들어주실지 궁금했다. 스님의 픽은 작설차. 공교롭게도 잔이 어젯밤 쉼터에서 차를 마실 때 썼던 잔과 똑같아서 신기했다. 내일도 이 잔에 차를 마시게 된다면, 신기를 넘어서 운명처럼 느껴지겠지.
티타임이 마무리되고 난 후, 하산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방에서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 공양 시간이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저녁부터는 함께 한다니 기분이 묘했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다. 너무 아쉬워말고 당연한 순리를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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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공양 후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저녁 예불과 체험 활동을 전부 건너뛰고 내내 방에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체험형에 가깝게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이제 휴식을 하고 싶었다. 아픈 다리 때문에 내일 산행도 가지 못할 것 같아서, 새벽 예불 참석에 대한 의지가 더 커졌다.
새벽 예불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별을 구경하고, 새벽 예불을 알리는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추어 경내를 뒤따라서 돌다가 대웅전에서 예불을 했다. 마지막 예불이었다. 속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예불을 드리는 나를 보며 기영스님이 “이제 불자 다됐네.”라고 말했다. 다들 일어나기 힘들어서 건너뛰는 게 부지기수인 새벽 예불을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방에서 책을 읽다가 아침 공양을 하고 이틀간 머물렀던 방을 정리했다. 방 한편에 놓여있는 템플스테이 종이에 후기를 남기고,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자 정말 떠나는 구나라는 게 실감 났다.
사람들은 다들 산행을 가고, 다리가 아픈 나는 산행은 포기한 채 쉼터에서 혼자서 흰민들레차를 마시면서 책도 읽고 여유도 즐기다가 조금 컨디션이 나아진 것 같아서 간단하게 주변을 산책했다.
이제 문수암에서의 마지막 공양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먹는 공양이라니 괜히 시무룩해졌지만, 다음에 또 올 테니 완전한 마지막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공양을 마쳤다.
마지막 공양을 마치고 공양간을 나서면서 공양주 보살님에게 “2박 3일 동안 맛있고 행복하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셔서 나도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매번 공양 때마다 야무지게 두 접시씩 퍼먹고, 공양을 마치고 나갈 때마다 잊지 않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렸던지라 인상 깊었는지 꼭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화답해 주셨다.
문수암에서의 잊지 못할 이틀간의 시간 동안 나는 다시 바닥에서 발을 구르고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톡톡히 얻었다. 이제 다시금 힘을 내어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거친 풍파가 나를 뒤흔들어도 당분간은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나를 단단하게 버틸 수 있도록 붙잡아 줄 테니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한 행복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