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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Dec 01. 2023

2023. 03. 03

1부 37화

 

 이틀 연속 분류를 했으니 오늘은 1층에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1층에 갈 일이 생겼다. 시작부터 포장을 하러 내려가게 된 것. 분류가 아닌 포장이라 다행이었다. 포장을 하라고 이름이 불린 두 명의 사람들과 함께 1층에 내려가니 캡틴이 말했다.     


“포장 가능 명단에 이름 한 분만 적으셨던데, 나머지 분들은 왜 안 적으셨어요?”     


 명단을 뒤늦게 발견해서 나중에 적었다니까 캡틴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관리자가 적으라고 해서 그제야 적은 거 아니냐고.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빨리빨리 이름을 안 적으면 사실관계확인서를 작성해야 하고, HR(센터 사무실)에도 이야기할 거라고 했다.     


 아니, 업무를 하다가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고작 포장 가능 명단에 이름을 늦게 적었을 뿐인데 대놓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게 너무 황당했다. 화도 났지만, 단기직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으랴. 그저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 밖에는.     


 좋지 않은 기분으로 포장대에서 포장을 하고 있는데, 11시 30분쯤에 캡틴이 뜬금없이 사람을 한 명 내 쪽으로 데리고 왔다.      


“포장 교육 좀 시켜주세요. 이십 분 정도 가르칠 시간 드릴게요.”     


 고작 20분 가르치고 업무 투입을 하란 말인가. 뭐, 나 역시도 15분 배우고 포장을 하게 됐으니까 나에 비하면 오 분이라도 더 배우니 나은 걸 수도 있지만. 20분 동안 포장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었다.     


 어제는 4층에서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집품을 하는 방법도 잠시 가르치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포장 교육을 하다니. 계약직도 아닌 단기직에게 자꾸 교육을 떠맡기고 시키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운명을 지녔기에 부담스러워도 묵묵히 해내야 했다.     


 포장 교육이 끝나고 난 뒤에는 아예 그 사람을 내 앞자리로 붙여주었다. 원래 포장하던 사람을 빼고 그분을 붙인 것이다. 처음 포장을 하니 전담 마크를 하며 신경 쓰라는 의미 같았다. 그래서 그분이 포장을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돕다 보니, 막상 내가 해야 할 할당량의 포장은 별로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교육을 시켰고, 자리도 내 앞자리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1시 40분부터는 3층으로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가서 잡일을 했다. 정확하게는 뒷정리. 컨베이어 벨트 옆면도 닦고, 쓰레기도 주우러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포장할 때 중량물 포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팔목이 쓰라리다. 뒷정리로 남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팔목이 더 아파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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