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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Dec 29. 2023

2023. 03. 14

1부 40화

 

 이틀 연속 분류장 행. 오늘은 얼떨결에 분류장에 가게 됐다. 같이 일을 하며 친해진 단기직 동생이 분류를 하러 가게 돼서 걱정되는 마음에 함께 내려가게 됐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분류를 하러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 날이긴 했다.     


 오늘은 분류 베테랑들이 출근하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오지 않았으면, 분명히 나중에 간선 마감시간에라도 호출을 할 게 자명했다. 물론, 처음부터 분류를 하는 것과 다른 일을 하다가 분류를 하러 가는 것은 체력적으로 차이가 크긴 하지만.     


*     


 A열에서 던져주기로 오늘의 분류 스타트를 끊었다. 1차 분류대에서 2차 분류대로 지역별로 던져주기를 하다가 식사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컨베이어로 자리를 옮겨서 S김을 빼고, 앞에서 미처 쳐내지 못한 간선을 함께 빼고, 지역별로 나눠서 1차 분류대로 던져주고 나니 어느덧 2시가 되었다. 쉬는 시간이 온 것이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마감 때까지 울산/광주/김해/구미/창원 토트에 지역별 분류를 해서 넣고 오늘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업무가 다 끝나고 난 뒤에 뒷정리를 하다가 얼떨결에 간선 지역들을 배우게 됐다. 오늘은 얼떨결에 하게 되는 게 많은 날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따로 뺀 간선은 간선장으로 옮겨져 지역별 토트로 2차 분류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간선장에서 간선을 분류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제 나도 간선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가 되었다고 했다.     

 

 간선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는 게 늘어날수록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늘어나니까. 그러나 언제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했고, 배워야 했다.     


 일단은 간선은 처음인 데다가 업무가 마무리된 시점이라 ㅇㅅ으로 시작하는 지역들의 토트 위치만 익혔다. ㅇㅅ으로 시작하는 지역만 해도 워낙 많아서 보기만 해도 토트가 헷갈리는 느낌이었다. 인천, 일산, 용인, 안산, 안양, 서초, 송파, 성동 등등의 지역들이 있었는데 ㅇㅅ으로 시작하지 않는 지역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많아서 단시간에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지역의 간선 토트를 보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느낌이라 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지만, 이것 또한 나중에는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자 헛웃음이 났다. 나는 고작 단기직일 뿐인데, 이제는 계약직 못지않게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어버렸으니까.     


*     


 이틀 연속 분류를 한 여파인지 퇴근 시에 반납을 해야 하는 센터 출입증 카드를 깜빡하고 반납하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와버렸다. 깜빡하고 출입증 카드를 가지고 왔는데, 다음 출근 시에 반납하겠다고 출근 신청을 하는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고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이틀 연속 풀타임으로 분류를 했으니까. 나는 미처 반납하지 못한 출입증 카드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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