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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15. 2024

그 많던 06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中

기억의 단상 2020년 11월호


 다음 날 아침, 어제의 여파 때문인지 술병이 났다. 술병이 나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데, 장기자랑 시상식이 열린다고 했다. 하필이면 야외에 서서 열리는 시상식이었다. 잠시 서 있다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벤치에 창백한 안색으로 앉았다. 내가 정말 아파 보였는지, 사람들도 억지로 서 있지 말라며 편히 앉아 있으라고 말해주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다 서 있는데 혼자만 앉아 있는 싸가지 없는 애가 될 뻔했으니까.     


 장기자랑 시상식에서 우리 조는 일등을 했다. 심지어 나에게는 행복이라는 뜻의 ‘펠리체’ 상이 주어졌다. 많은 사람들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해 줘서 주는 특별상이라고 했다. 상을 주거나 말거나 나는 빨리 엠티가 파하기만을 바랐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눕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속이 너무 메슥거려서 아침 식사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며 건너뛰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머리 감기였다. 하루만 안 감아도 머리가 금세 떡져 버려서 안감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움직일 힘도 없는데 머리는 어떻게 감아야 하나 막막했는데, 그때 진 언니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내 머리를 대신 감겨준 것이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릴 때 엄마가 감겨주었던 걸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감겨주는 경험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하게 될 줄이야. 뭉클했다. 사람들은 그런 진 언니를 보며 마치 엄마 같다고 말했는데, 그날 이후 정말 진 언니는 내게 엄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엄마, 애기가 되었고. 진 언니는 그때 왜 내 머리를 감겨주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친하지도 않았는데. 별달리 친하지도 않은 후배의 머리를 감겨주는 건 어떤 용기가 필요한 일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     


 지 언니는 진 언니와 친해서 매일 함께 다녔다. 진 언니와 친해진 나는 지 언니도 자연스레 자주 보게 되었고, 계속 마주하다 보니 지 언니와도 금세 친해졌다. 재미있는 점은 엄마같이 느껴지는 진 언니와 달리 지 언니는 애기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지 언니의 첫인상은 청순가련 미소녀였는데, 알면 알수록 첫인상과는 달리 허당미가 넘쳐서 후배인 내가 도리어 지 언니를 챙겨야만 했다. 지 언니는 잠이 정말 많았다. 잠이 너무 많아서 수업에 지각도 잦았던 지 언니를 깨우기 위해 모닝콜을 대신해준 적도 있고, 어떻게 하면 아침에 효과적으로 일어날까 싶어서 맥모닝 약속을 일부러 잡기도 했다. 지 언니나 나나 둘 다 맥모닝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약속이었다.      


 다른 동네 맥도날드로 하면 지 언니가 멀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안 일어날까 봐 일부러 지 언니가 사는 광안리 맥도날드로 약속을 잡는 것도 잊지 않고. 잠이 눈에 붙은 채로 지 언니는 비몽사몽 상태로 아침의 맥도날드에 나타나곤 했고, 때때로 푹 잠들어 버려 나오지 않은 지 언니 대신 나 혼자서 맥모닝을 먹을 때도 있었다.    


 나 홀로 맥모닝을 먹고 난 날이면 통과의례라도 되는 듯이 광안리 바다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으면 마음속에 담긴 고민들이 잠시나마 환기되는 것 같았다.   

   

 아침의 광안리를 주로 나 혼자 보았다면 지 언니와는 오후의 광안리를 종종 산책하곤 했었다. 같이 바닷가를 거닐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농담처럼 던지는 나를 보며 한 박자 느리게 빵 터지곤 했던 지 언니. 우리는 선후배가 바뀐 거 같다며 내게 말하던 지 언니. 지 언니는 아직도 애기 같을까. 우리가 함께 했던 맥도날드와 광안리는 기억할까. 나는 아직도 문득문득 떠올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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