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0년 11월호
마지막으로 옥 언니가 생각난다. 옥 언니는 1학년 때 전공 교수님이 짜주신 이태리어 튜터링팀의 튜터였다. 요새도 그런 튜터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선배들이 튜터링을 많이 해주곤 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서 본인의 외국어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니 마냥 귀찮기만 한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동기들에 비해 나는 딱히 이태리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앞 뒤 단어들로 문장을 끼워 맞추는 것만큼은 잘했다. 옥 언니도 나를 보며 항상 신기하게 뜻들을 다 알아맞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장난꾸러기 같았던 나를 옥 언니는 다른 애들보다 유독 더 예뻐했다. 다 같이 모여 있을 때는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별달리 예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튜터링이 끝나고 나면 나를 따로 불러 맛있는 것도 자주 사주곤 했다.
학년이 높아져서도 여전히 옥 언니는 나를 아껴주었다. 나만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한구석에 꿈틀거리던 시기에 옥 언니는 아무런 포트폴리오도 없던 나에게 감독이라고 부르며 너는 잘할 거라며 네가 만든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나중에 성공하고 난 뒤에 자길 잊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 말에 화답하듯 나는 절대 옥 언니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노스탤지어처럼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듯 때때로 그리워는 하겠지만, 일부러 수소문해서 서로를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가며 서로를 찾을 만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친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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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언니 모두 싸이월드 시절에 가장 친했고, 싸이월드가 쇠퇴하고 난 뒤에 점점 멀어졌다. 스무 살의 석류는 어느새 서른하나가 되었고, 스물셋의 언니들은 서른넷이 되었다.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바로 눈앞에서 맨 얼굴로 마주해도 기억 속 모습과 다르다면 모른 체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데, 심지어 팬데믹으로 인해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겠지. 비록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도 좋으니, 언니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희소식 같은 행복을 안으며 매일을 살고 있기를. 언니들이 내게 나눠주었던 애정만큼, 누군가에게 그러한 애정을 받는 삶을 살고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