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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Feb 02. 2024

2023. 05. 03

1부 48화

 

 ‘역대급’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고된 날이었다. 집품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다 했다. 그래서일까. 양손을 덜덜 떨면서 퇴근했다. 식사 시간까지만 해도 왼 손만 떨렸는데, 퇴근 전에 포장을 하며 송장을 붙이는데 오른손도 떨리더라.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든 날이었다.     


 출석체크 후에 바로 1층에 포장을 하러 가라고 해서 내려갔더니, 포장에 투입되지 않고 재포장 수거와 문제 토트 가져다주는 걸 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엔 혼자가 아니고 같이 하는 분이 한 명 더 있어서 서로 구역을 나눠서 할 수 있어서 훨씬 나았다.     


 재포장을 수거하러 다니면서, 내가 분류장에 가는 줄 알고 나를 도우려고 자청해서 분류장으로 내려온 언니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 틈틈이 분류장에 가서 조금이나마 언니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분명히 오늘은 분류를 하러 온 게 아님에도, 얼마나 분류를 많이 했던지 내가 분류장에 있는 걸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 묘했다. 심지어 캡틴마저도.     


 수거와 분류장을 번갈아가며 하고 있는데, 포장을 하러 포장대에 들어가라고 해서 포장대에 들어갔더니 막상 포장할 물건이 많지가 않아서 다시 수거 업무로 복귀하게 됐다. 9시 30분쯤에는 함께 수거 업무를 하던 분과 4층에 올라가게 됐는데, 올라가니 캡틴이 로케이션 별로 숫자가 잘 보이게 붙이는 시각화 작업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라고 했다.     


 시각화 작업은 이미 여러 명이 하고 있었다. 숫자들을 오리고 코팅하는 작업을 다른 사람이 이미 맡고 있어서 붙이는 작업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근데 이게 은근히 생각보다 힘들었다. 로케이션의 최상단 꼭대기에 붙여야 해서 키가 작은 나는 보조를 맡게 됐는데, 양면테이프가 너무 안 떼어져서 커터기가 원망스러웠다. 커터기에서 어떻게든 양면테이프를 뜯어내기 위해 힘을 많이 줬더니 손이 덜덜 떨렸다.     


 그때부터였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던 건. 우리가 시각화 작업을 잘하고 있는지 캡틴이 틈틈이 점검하러 왔는데, 그는 우리가 기포 없이 단정하게 잘 붙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기포가 있으면 다시 붙여야 한다고 했는데, 그놈의 기포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휴대폰 매장에서 액정 필름을 갈아주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포 없이 붙여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1층에서 포장 호출이 와서 다시 내려가야 했다. 퇴근 때까지 포장을 했는데, 송장을 붙이는 양손이 덜덜 떨렸다. 심지어 포장해야 할 물품에는 무거운 세제가 가득해서 손의 떨림은 더 가속화되었다.      


 재포장과 문제 토트 수거, 분류, 시각화, 포장까지. 정말 집품 빼고 모든 업무를 다해서 그런지 손이 남아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긴 했다. 집에 가서 자고 나면 손의 떨림이 가라앉겠지 싶어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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