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류 Feb 05. 2024

2023. 05. 05

1부 49화

 

 오늘 하루는 분류로 시작해 포장으로 끝이 났다. 비바람이 치는 날 출근하게 돼서 그런지, 운동화가 흠뻑 젖어 버려서 분류를 위해 안전화로 갈아 신으니 찜찜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양말도 같이 축축하게 젖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분류장은 가관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A열에서 분류했는데, 분류할 사람이 부족해서 1인 3역을 해야만 했다. 뒤집기를 하면서 간선도 빼야 했고, 물건을 지역별로 나눠서 던져주는 사람도 없어서 그것까지 도맡아서 해야 해서 한숨이 나왔다. 어쩌자고 이렇게 사람을 분류장에 안 넣은 걸까. B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베테랑 한 명이 나처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뒤집는 사람도 없고, 지역별로 나눠주는 사람도 없어서 지역별 테이블을 컨베이어 벨트 끝에 붙여버렸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혼자서 1인 3역을 하려니 원활하게 물건이 지역별로 분류될리는 만무했고, 컨베이어 벨트 끝에 물건이 걸려서 나는 음악소리가 수시로 울려 퍼졌다. 결국 분류장에 사람이 한 명 더 투입되긴 했는데, 여전히 뒤집을 사람은 없어서 내가 뒤집으면서 간선을 빼야만 했다.     


 오토백 A열과 B열 모두 뒤집는 사람과 던져주는 사람이 부재해서 인원 부족에 시달렸는데, 8시 30분쯤 네 명의 사람이 더 투입되었다. 이제 좀 안심하고 간선을 빼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포장대에 가라고 했다.     


 새로 투입된 사람들이 간선을 빼는 걸 맡게 될 거라고 했다. 간선 자리는 운송장에 익숙하지 않으면, 따로 분류하기가 어려운데 투입된 사람들은 간선을 다들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었다. 포장할 인원이 없어서 영혼까지 끌어 모은 거라는 말이 들리긴 하던데, 그렇다고 해서 베테랑들을 빼면 분류장은 어떻게 하나.     


 아니나 다를까. 원활하게 분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연신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었고, 1층에는 쉴 새 없이 컨베이어가 멈출 때마다 들리는 음악소리가 내내 울려 퍼졌다. 분류장의 상황이 안타깝긴 했지만, 포장도 정말 인원이 없긴 없었다. 그래서 포장 막바지에는 오토백에서 포장을 하지 못한 상품들이 싱글 포장대로 넘어와서 오토백 몫까지 포장을 해야만 했다.     


 계약직들이 이렇게 대거 쉬는 날은 단기를 더 많이 뽑으면 될 텐데, 인원이 모자라서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 걸 보니 착잡한 마음이었다. 물론, 나도 함께 고생하긴 했지만.      


 빨갛게 익은 얼굴로 쉬는 시간을 맞이했는데, 계약직 한 분이 나를 천막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너무 고생한다고 직접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먹으라며 주었다. 챙겨주는 그 마음이 너무 따스하고 고마웠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내가 이곳에서 고된 업무들을 버티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찡해지는 어린이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3. 05. 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