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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Feb 12. 2024

2023. 05. 11

1부 52화

 

 어김없이 분류를 했다. 처음에는 토트에 지역별로 상품을 집어넣는 걸 하다가, 컨베이어 끝에 있던 분이 S김을 따로 빼는 걸 너무 못해서 그 자리로 가게 됐다. 베테랑 두 명을 제외하고는 오늘의 분류장은 전부 단기로만 채워져서 그런지 손발이 맞을 수가 없었다. 단기라도 나처럼 자주 분류를 해본 사람이면 나은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손발이 맞는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지역별로 물건을 나누어서 던져주는 위치에 있던 분이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분류를 할 때 보니 안 그래도 힘들어하던데, 그분은 조퇴를 한 걸까. 아니면 위로 올라가서 집품을 한 걸까. 어느 쪽이든 일단 분류장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간지라, 인원이 한 명 모자라게 됐다. 그래서 급하게 지역별 분류를 하고 있던 분을 그 자리에 세웠는데, 원래 하던 분보다 훨씬 손이 빨라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상황이 되었다.     


 분류장에서 분류를 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을 한두 명 본 것도 아니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나도 분류장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매일 굴뚝같은데, 시키는 업무를 제대로 이행해내지 않으면 근무 확정에 애로사항이 생길까 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다.     


 물량도 많고, 분류장은 손발도 잘 맞지 않는 아비규환의 상태라 기가 쭉쭉 빨렸다. 내가 있던 A열에서 간선을 빼는 걸 맡았던 분이 오죽하면 “오늘 A열은 버린 건가 보네.”라고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단기직들이 A열에만 몰려있었으니까. B열은 그래도 분류를 해본 계약직들이 있어서 상황이 약간은 나았는데, A열은 엉망진창이었다. A열 분류 라인이 터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더니 쉬는 시간이 될 무렵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친한 계약직 언니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서 쉬는 시간 내내 말도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성이 함락되지 않게 끝까지 싸워서 지킨 병사처럼 일했던지라,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고 퇴근을 할 때가 되자 어떻게든 오늘 하루도 버텼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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