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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Feb 16. 2024

2023. 05. 18

1부 54화

 

 취소자가 생겨서 땜빵 출근을 했다. 출근도 땜빵으로 했는데, 분류장마저도 땜빵으로 가게 됐다. 분명히 분류장으로 갈 인원을 다 내려 보냈는데, 캡틴이 갑자기 나에게 “석류님, 1층 내려가실게요. 가서 안전화 신으시고요.”라고 말했다.      


 이젠 분류장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는 게 뭔가 웃프게 느껴졌다. 안전화로만 말해도 어느 공정인지 알아들으니까 그런 걸까. 1층에서 안전화를 신는 공정은 분류가 유일하니까.     


 오늘 분류는 손발이 잘 맞아서 그런지 원활하게 흘러갔다. 함께 간식타임을 즐기던 계약직 언니들이 분류하는 날이었는데, 계약직 언니가 “역시 에이스는 다르네. A열에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도 물건이 쌓이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언니의 말처럼 A열을 힐끗 보니, 인원이 내가 있는 B열보다 한 명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물건이 분류대에 계속 쌓이고만 있고 줄지가 않고 있었다. 손발이 잘 맞아서 물건이 쉽사리 분류대에 쌓이지 않는다는 건 좋았지만,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익일자 출고 건까지 내가 있는 라인에서 치게 된 건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래도 며칠 전에 비하면 오늘은 선녀 수준이었다. 한쪽만 쌓이고 있으니까. 며칠 전에는 A열과 B열 모두 물건이 쌓이는 속도가 마치 경주 고분을 연상하게 했다. 아무리 빠르게 분류해서 지역별 토트에 넣어도, 물건이 줄지가 않아서 ‘누가 지금 분류장 테이블 위에 고분을 만들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오늘은 다행히도 숨 돌릴 여유가 있었기에, 같이 B열에서 분류를 하게 된 다른 단기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힘든 분류를 매일 하세요? 대단하세요.”

“자주 하다 보니 이미 몸이 맛이 가버렸어요.”     


 정말이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다. 파스와 근육통 약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 만신창이가 된 몸과는 반대로 분류장에서의 업무가 점점 익숙해지는 게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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