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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Feb 19. 2024

2023. 05. 22

1부 55화

 

 자진해서 분류장에 갔다. 오늘 출근한 단기는 102명.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출근 한 날에는 백 퍼센트 분류장에서 호출이 오기 때문에, 어차피 내려가게 될 거 그냥 처음부터 부딪히자는 마음으로 자진했다.    

 

 자진해서 분류장에 가긴 했지만, 분류장에 가서는 왜 자진해서 이 힘든 공정에 제 발로 내가 걸어 들어온 걸까 싶어서 후회가 됐다. 오늘의 분류장을 두 글자로 표현한다면 ‘개판’이었다.     


 송장 뒤집기를 하던 사람은 갑자기 조퇴를 하겠다며 도망가 버리고, 그래서 누군가는 뒤집기를 해야 하기에 급하게 지역별 분류를 하던 내가 그 자리에 가서 임시로 뒤집기를 했다. 내가 빠지니 지역별 분류 자리는 물건이 쌓일 대로 쌓였는데, 하필이면 간선 자리에서 간선을 빼는 사람이 간선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해서 분류대의 물건 쌓임은 더 가속화되었다.     


 다행히도 뒤집을 사람을 금방 붙여줘서 다시 지역별 분류 자리로 돌아갔지만, 걸러내지 못하고 내려온 간선까지 같이 처리하려니 곤욕스러웠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내가 간선 자리로 가기로 했다. 이제 좀 상황이 안정되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오산이었다.     


 뒤집기를 하러 새로 들어온 사람이 손이 느려서 뒤집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간선을 빼는 내가 대부분 뒤집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간선을 완벽하게 빼내지 못해서 간선장이 아닌 일반 분류대로 흘러간 간선들이 많았다.     


 엉망인 상황에서 뒤집기와 간선을 빼기란 무리여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캡틴에게 말했더니 최초로 뒤집기를 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붙여주었다. 캡틴이 봐도 답답하긴 했던 모양이다. 원래 한 명만 뒤집는데, 한 명을 더 붙여준 걸 보니.     


 그러나 인원이 한 명 더 늘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두 명이서 뒤집는데도 송장이 보이지 않게 내려오는 물건들이 꽤 많았다. 둘이 합쳐서 1인분 몫도 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덕분에 나만 바빠졌다.     


*     


 어떻게 쳐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간선이 많이 쏟아지는 간선 타임을 끝내고, 지역별 분류로 돌아가 물건을 토트에 담는데, 이번에는 지역별로 나눠서 던져주는 게 엉망이었다. 지난주부터 주간에서 구슬이 달린 테이블을 사용해서 그게 컨베이어 끝에 배치되었는데, 그 구슬 테이블 때문에 일이 더 많아졌다.      


 원래는 한 명은 컨베이어 끝에서 지역별로 나눠서 1차 분류대로 던져주고, 1차 분류대에서 2차 분류대로 다시 던져주는 릴레이 식으로 던져주기가 진행됐는데 구슬 테이블이 있으니 1차 분류대가 사라졌다.    

 

 그래서 지역별로 나눠서 던져주는 사람이 컨베이어 끝에서 많은 힘을 써야만 했다. 지역별 테이블로 정확하게 물건을 던지기란 무리여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건이 부지기수인 데다, 구슬 테이블에 걸려서 물건이 분류대로 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기도 해서 대체 이 테이블이 왜 있는 건가 싶었다.     


 주간에서는 마감 건을 쳐내야 하는 야간에 비해서 분류해야 할 물건의 양이 작아서 적은 인원으로 커버하기 위해서 이 테이블을 사용한다는데, 야간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가 않는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상황을 보고도 캡틴들이 구슬 테이블을 빼지 못하게 해서, 더 골치가 아팠다. 구슬 테이블이 있는 한 앞으로도 ‘개판’인 상황은 이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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