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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r 20. 2024

2023. 11. 10

2부 3화

 

 오늘은 어제보다 잠을 더 못 잤다. 1시간 40분 정도를 잤다. 다이소에 들러서 무릎 보호대를 사 오느라 못 잤는데, 그게 무색하게도 집에서 나올 때 무릎 보호대를 차고 나온다는 걸 깜빡해버렸다. 첫날에 일하면서 기둥에 무릎이 부딪혀서 멍이 세게 들었던지라, 다치지 않기 위해 샀는데 깜빡할 줄이야. 그나마 파스를 붙이고 나오는 건 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4시 40분에 통근 버스가 출발하고, 6시 40분쯤에 옥천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대전통영고속도로에서 대전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에 화물차끼리 추돌하는 사고가 크게 일어나서 정체가 생긴 것이다. 함양을 지난 무렵부터 한 3시간 정도를 오도 가도 못하고 고속도로 위에서 갇혀 있어야만 했다.     


 겨우 정체가 풀린 후, 기사 아저씨가 버스가 많이 흔들릴 거라며 안전벨트를 꽉 메라는 안내방송을 하고는 세차게 옥천을 향해 달렸다. 9시 30분쯤에 옥천에 도착해, 회색 안전모를 썼다. 노란색이 아닌 이유는 첫날만 노란색 안전모를 쓰고, 두 번째부터는 회색 안전모를 착용해서 처음 온 사람과 처음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9시 50분이었다. 어제와 같은 하차 분류 자리에 배정받았는데 하차를 하시는 분이 대신 분류를 하고 있었다. 그분은 나를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 탓으로 늦은 것도 아니고,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일어나서 늦은 건데 그런 표정을 지으니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진주에서 5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왔는데 말이다.     


 아무튼 바톤 터치해서 하차 분류를 곧장 시작하고, 그분은 하차하는 자리로 가서 하차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해봐서 그런지 오늘은 송장이 약간은 눈에 익었다. 그래도 여전히 소형은 헷갈렸다. 너무 빠른 속도로 물건이 내려오니, 정말 작은 크기가 아니고서야 이게 A4 정도의 크기가 맞는지 아닌지 헷갈려서 3층으로 올려 보내지 못한 상품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그분이 화를 냈다. 어제 해봤다면서 소형 구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냐고.     


 오늘 하루도 쉽지 않을 모양이었다. 이곳의 고인물들은 하나 같이 다들 화로 가득 차있다. 신입이라고 자비는 없었다. 오늘도 울고 싶지는 않아서 대신 나도 분노파워를 채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버텨야지. 당분간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데, 자꾸 약해지면 안 된다.     


 여전히 컨베이어를 멈추라는 말은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신 옆 레일을 틈틈이 곁눈질하며 옆 레일들이 다 멈출 때 나도 같이 멈추었다. 멈췄다가 다시 다 함께 돌려야 해서 곁눈질을 하면서 눈치껏 상황을 살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더 추워서 몸이 꽁꽁 어는 것 같았다. 오늘 새벽 옥천의 온도는 영하 5도였다. 영하 5도에서 야외나 다름없는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내내 일하다 보니 쓰고 있던 마스크는 금방 젖어버렸고, 트럭이 잠시 빠질 때마다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지로 습기로 가득 찬 마스크의 물방울들을 닦아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더 직접적으로 얼굴에 찬바람이 오기 때문에 축축해도 도저히 안 쓸 수 없는 노릇이었다.

    

 6시 30분이 되자 어제처럼 포대에 담긴 소형 분류 작업이 시작됐고, 7시가 다 되어가자 청소를 했다. 청소가 끝난 후에 종례를 위해 모여서 7시 30분에 퇴근 방송을 듣고 퇴근했다. 연달아 삼일을 일 해본 결과, 이곳은 정말 지옥이다. 그것도 불지옥. 왜 옥천이 ‘지옥천’이라고 불리는지를 몸소 경험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이 지옥을 당분간은 경험해야 할 텐데, 잘 버틸 수 있을지 무섭기만 하다. 일도 힘들고, 날씨도 춥지만 그것보다 더 춥고 힘든 건 고인물들의 텃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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