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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r 18. 2024

2023. 11. 09

2부 2-2화


 나름 C사에서 ‘분류의 신’ 소리를 들었는데, 이곳에 오니 나는 ‘분류 병아리’에 불과했다. 각기 다른 무게의 물건들이 담긴 박스를 실시간으로 분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컨베이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그대로 1층으로 흘려보낸 상품도 많았고, 헷갈려서 다른 층으로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고인물로 보이는 아저씨가 엄청 짜증과 화를 냈다. 윽박지르면서 말하는데, 나중에는 그가 근처에 오기만 해도 긴장이 되어서 온몸이 움찔거렸다.      


 컨베이어 벨트를 전체 멈췄다가 다시 돌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주변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서 멈추라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멈추는 버튼을 늦게 눌렀더니 “혹시 귀가 안 들리세요?” 라며 아니꼬운 표정으로 면박을 주었다.      


 기분도 너무 나쁘고 모욕적이었다. 그는 업무가 끝날 때까지 계속 짜증을 냈다. 모르는 게 생겨서 뭐라도 물어보려고 하면, 짜증부터 냈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걸 물어보지 않으면 분명히 모르는 게 있는데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화를 낼 게 자명했다. 그를 겪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나는 그의 특성을 단 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짜증 투성이인 건 마찬가지였다. 매일 힘든 일을 해서 예민한 건 알겠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누가 이곳에서 오래 일하고 싶을까. 하루만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태반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텃세가 너무 심했다.     


 서러워서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도 눈물을 꾹 눌러 담으며 묵묵히 일하고 있는데,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갑자기 다른 고인물이 난데없이 안전교육실에 가서 혈압검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의아했지만, 가라고 하니 혈압검사를 하러 갔다.     


 혈압검사를 하러 가니 먼저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해서 작성한 후 내밀었더니, 혈압 검사를 담당하는 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하셨는데, 왜 오셨어요? 명단에도 없는데.”

“아, 하러 가라고 해서요. 매일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 매일 그렇게 혈압 체크하면서 괴롭히는 사람들 아니에요. 자주 나오시는 분들 중에 위험군에 있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재고, 보통은 한 달에 한 번씩만 재요.”

“그럼 다시 돌아가면 되나요?”

“네. 가시면 됩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그 사람은 나에게 혈압검사를 하러 가라고 했을까? 붉어진 내 눈시울이 혈압이 높아진 것처럼 보였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에게 질문할 수 없었으니까. 그 또한 면박을 준 사람처럼, 나에게 충분히 못되게 굴고 있었기 때문에 물어보면 짜증을 낼 것 같았다.     


*     


 6시 30분쯤에 마지막 트럭에서 하차 분류 업무를 마치고, 주변에 잔뜩 쌓인 포대 자루를 풀어서 분류하는 걸 도왔다. 포대 자루에는 소형 상품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이게 트럭 하차 업무를 마치고 난 후 하는 퇴근 전 최종 분류인 것 같았다.     


 최종 분류까지 마치고 나자 7시가 되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일했던 레일 근처를 청소하고 나니 종례를 위해 모이라고 했다. 7시 30분이 되자 퇴근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퇴근을 위해 움직였다. 드디어 퇴근이다.     


 청소를 하면서 참았던 눈물이 터졌었는데, 퇴근길 버스에서도 눈물이 계속 났다. 신입에게 완벽을 바라는 행태가 너무 괴로웠다. 처음부터 잘하면, 숙련자지 신입이겠냐고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오늘은 하차 업무를 하시는 분이 교대라도 두 번 정도 해줘서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분이 퇴근할 때 “수고했어요.”라고 인사를 건네길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나한테 말도 안 걸고 텃세만 부리는데, 그 분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었으니까. 내일의 근무 신청도 했는데, 이틀 만에 몸도 멘탈도 다 갈린 상태에서 잘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해야겠지. 굶어 죽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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