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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pr 12. 2024

2023. 12. 29

2부 13화

 

 어제 C사에서 일하며 종일 1층에서 버퍼 업무(오토백 포장대 라인을 돌면서 재포장 상품 수거 및 문제 토트를 메인에 가져다주는 것)를 땀 뻘뻘 흘리며 혼자서 계속했더니 평소보다 피로감이 더 강한 느낌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힘들게 일을 해서 그런 걸까. 새벽에 급체를 하고 말았다. 식사시간 전까지 무려 6 트럭을 하차했는데, 보통 식사시간 전에 많이 하차해도 4 트럭 정돈데 엄청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차하는 분들이 정말 미친듯한 속도로 물건을 내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 두 시쯤부터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큰일 났다 싶었다. 교대를 해주는 시간 외에는 화장실을 따로 갈 수 없는지라 일단은 교대 시간까지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아보기로 했다.     


 세시가 넘은 시각에 화장실을 다녀오라며 교대를 해주어서, 겨우 화장실을 갔는데 먹은 걸 전부 게워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 완벽히 개운해지지는 않아서 걱정이었다. 고작 10분의 교대 시간 동안 빠르게 속을 비워내고 자리로 복귀하면서 든 생각은 안 좋은 속을 대체 어떻게 할 것 인가였다.     


 평소에 상비약을 챙겨 다니는데, 하필이면 챙겨 온 상비약에 소화제가 없어서 절망적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느낌이란 이런 것이리라.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혹시 소화제가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해서 내게 남은 방법은 단 하나였다.     


 휴지통을 옆에 가져다 놓고 속을 비워가며 분류를 하는 것. 그것 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휴지통은 봉지를 씌워놓고 사용하는지라, 나중에 청소할 때 봉지만 벗겨서 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았다.      


 트럭을 쳐내고 다음 트럭이 들어오는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휴지통에 머리를 처박고 계속 토를 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인원에 딱 맞게 출근하는지라 내가 빠지면 분류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맡은 자리에 책임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야만 했다.     


*     


 새벽 6시 30분쯤, 드디어 하차를 마무리했다. 11 트럭을 하차했기 때문에, 다른 레일보다 속도가 빨랐던지라 제일 먼저 하차가 마무리되었다. 하차를 마무리하고 퇴근 직전까지 다른 파트에 가서 일을 돕게 됐다. 소분류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걸 도우러 갔는데, 소분류는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물건을 상차 지역번호에 맞게 뽑아내야 해서 눈앞이 핑핑 돌았다.     


 물건을 뽑아내기 쉽게 정리를 하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계속 봐서 그런지 속이 더 뒤집어졌다. 애석하게도 소분류를 하는 곳에는 휴지통이 없어서, 화장실을 이번엔 가야만 했다. 안 그러면 레일에 토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분류를 하던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혹시나 해서 소화제를 가진 사람이 이쪽 파트에는 있지 않을까 물어봤더니 다행히 소화제를 가진 사람이 한 분 있어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소화제도 먹었다. 이미 다 토하고 소화제를 먹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지만, 안 먹으면 진주로 돌아가는 길도 문제였다. 두 시간은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하는데, 버스에서 토하면 안 되니까.     


 퇴근길에 같은 진주 버스를 타는 분이 체한 내 모습을 너무 안쓰러워하면서 체한 기운이 내려가라고 지압을 해주었는데, 그게 너무 고마웠다. 그래도 차가운 이곳에서 따뜻한 사람이 흔치는 않지만 있다는 사실이. 새해부터는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얼굴을 이제는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통근 버스를 타자마자 자기 위해 노력했더니, 진주에 도착해서는 그래도 울렁이던 속이 조금은 멎어 들었다. 통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약국에 가서 마시는 소화제인 베나치오를 사서 마셨다. 일반 알약형 소화제보다 베나치오를 먹으면 언제나 한 방에 효과가 나타났기에 이번에도 그걸 기대하면서.      


 베나치오 효과인지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 안에서는 훨씬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집에 가자마자 소화제를 가장 먼저 옥천에 가져가는 투명가방 안에 챙겨놓았다. 다시는 체하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이 또 생길 때 약이 없어서 더 아프면 안 되니까.     


 문득 C사에서 급체했던 날이 떠올라서 씁쓸해졌다. 옥천도, C사도 개인이 상비약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는 게 너무 슬프다. 말로는 아프면 말하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환경인 것도. 몸을 쓰는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는 아프면 쓸모없는 부품이 되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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