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류 Jun 07. 2024

작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

기억의 단상 2020년 12월호

 

 언제 후배 하가 내 팔목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언니는 후원하는 게 많아서 바쁘겠어요.”     


 갑작스러운 하의 말에 아니라며 웃으며 손사래 쳤는데, 하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양 팔목에는 마치 부적처럼 항상 후원팔찌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에는 위안부 할머니 후원 팔찌, 오른쪽에는 멸종 위기 동물 후원 팔찌가 있고 가방에는 뱃지가 달려있는데 귀여워서 단 뱃지도 있지만 소녀상 뱃지, 식수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식수를 지원해 주는 캠페인으로 제작된 뱃지도 함께 달고 있다. 칠이 벗겨지거나 프린팅이 지워져서 지금은 달고 다니지 않고 집에 보관해 둔 뱃지나 팔찌들까지 합하면 적지 않은 양이라 그제야 하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일시적 후원이긴 하지만 나는 꽤 자주 후원을 해왔다. 주로 경제적 사각지대에 놓여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나 갑자기 닥친 자연재해 때문에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잃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작은 마음들을 틈틈이 날려 보냈다.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싶지만, 그럴 여유까지는 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하는 게 아쉬웠지만 적은 금액이나마 이렇게 응원하는 이가 있으니 이 세상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희망을 잃지 말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장 최근의 후원은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깔창 생리대를 쓰는 소녀들과 운동에 재능이 있어서 국가대표가 미래의 목표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꾸는 걸 망설이는 아이들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깔창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쓰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몇 년 전 언론을 통해 크게 기사화되었지만 아직도 너무 많은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생리기간을 지난다.

     

 힘든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후원해 주는 후원 단체를 알게 되었고, 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후원금을 결제했다. 비록 내가 보낸 후원금이 많은 생리대를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어도 조금의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운동하는 아이들은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사연을 접했는데, 다른 이들에 비해 현저히 후원액이 낮아서 목표액까지 도달하기 힘들어 보여서 더더욱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후원했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운동선수를 덕질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사명감도 들었고. 내가 애정하는 선수도 과거에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운동을 포기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에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 덕분에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 결국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내 선수처럼, 그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는 결코 재능만으로는 되지 않는 사회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그걸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손길들이 없다면 재능은 시든 꽃처럼 바스러진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서, 미래에 올림픽에서 그 아이들의 이름을 꼭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사람을 참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든다. 의식주처럼 필수적인 것이어도 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기는 힘들기에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털어놓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어려운 이들을 돕고 상생하고 싶다. 나 또한 힘든 시기를 메일링 서비스를 진행하며 구독자들을 통해 버텨나가고 있지 않나. 내가 받은 따스함을 다시 사회에 나누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한 곳이 되어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